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가을 초입의 부부 여행 2

korman 2017. 10. 13. 19:38




가을 초입의 부부여행 2


섬진강변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였을 때는 어두움이 내리고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재첩국을 샀다. 일반 바지락탕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의 토석적인 맛이 가미된듯한 차이를 느끼면서 자동차 트렁크에 실고 온 아이스박스 속 소주와 맥주를 꺼냈다. 그리고 바람 때문에 버티지 못해 배낭에 넣어 두었던 카메라 다리를 꺼내 무풍의 방안에서 자동셔터를 눌렀다. 새벽 섬진강가의 여명은 짙은 회색 구름사이로 찾아왔다. 어디 가나 공기 좋은 곳에서의 이른 아침산책은 전날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난 여행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벽 산책을 즐긴다. 섬진강변의 산책로에는 굵은 밤이 밤새 바람을 타고 떨어져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이 외지인에게 특별한 가을 선물을 선사하였다. 강가 산책로에 뒹구는 밤은 산책하는 사람이 주워도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좀 생각해보기는 하였지만 밤 줍는 즐거움에 그 생각은 길지 못하였다.



부지런을 떠니 밤이 생겼다. 그래서 최참판댁에도 입장료 없이 들어갔다. 입장료를 받는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이니 그냥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내 예상대로 그리 되었다. 다 돌아보고 나오는 시간에야 그들은 출근을 하였다. 혹 나올 때 달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하던 일행의 염려는 기우일 뿐이었다. 멀리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시원하게 트인 평사리 악양들판은 진한 노란색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그 한 가운데의 부부소나무는 멀리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어 들른 화개장터는 최근의 화재로 모두 새로 만들어진 시장 골목이었지만 새로운 건물들에서는 예전 시골 장터의 정겨움은 살아지고 장터 사람들이나 상품이나 초가지붕이나 일률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상가와 다를 게 없었다. 수년 전과의 느낌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화개장터를 우리나라 일급 관광지로 만든, 그러나 지금은 잘못된 그림 때문에 큰 건물을 드나들며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이의 동상이 거기서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증명사진을 위하여 신체적 고생을 하고 있었다.



서둘러 쌍계사를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붉은 ‘꽃무릇’이 만개하였다. 꽃이 져야 잎이 나고 꽃과 잎이 결코 만날 수 없다하여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졌다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사화’라는 꽃과 헷갈린다고 한다. 상사화는 꽃무릇과는 반대로 잎이 져야 꽃이 핀다고 한다. 그러니 그 역시도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가졌다. 내가 이들에 대한 무슨 사전 지식이 있었겠나만 궁금한 것은 어디에서건 얼른 알려주는 인터넷 덕분이지만 한몸이면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연, 그러나 그 사연으로 하여 꽃이니 예쁘다는 말로만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예정지인 해인사 가는 길을 내비게이션에 물었다.



참 깊숙하고 좋은 곳에 자리하였다고 생각되었다. 입장료와 주차료를 동시에 징수하는 입구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현금만 받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쌍계사에서는 카드 받던데요?” “여기는 깊은 산속이라 카드 단말기가 작동이 안 돼 못 받습니다.” 이 궁색한 대답에 우리는 그냥 웃으면서 현금을 내밀었다. 어느 절에선 안 그럴까만 구름이 걷히는 계곡의 가람들이 이루어내는 지붕곡선과 바람에 살살 흔들리며 크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풍경소리는 매료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며 사진의 프로들은 이런 곳에선 어떤 구도를 만들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인사엔 누구나 다 아는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이 있다. 그 보물이 보관된 건물에 붙여진 ‘스틱으로 찍지 마시오.’라는 방(榜)이 현대인들의 인성을 말해주는 듯하여 조상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팔을 뻗으면 창살 사이로 손이 들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철사로 된 그물망을 붙여 놓았다. 언젠가 ‘관람객들이 팔만대장경판을 만지려고 창살 사이로 손을 넣는다’라는 뉴스의 여파 때문인 모양이었다. 세계 최고의 고등교육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더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이산 탑사’를 들리려 하였지만 해인사에서 소비한 시간 관계로 그리하지 못하고 서운한 마음을 휴게소에서의 우동으로 달래며 밥 10시경에 아쉬운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일행 모두가 피로감 없이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였다지만, 그리고 나야 어느 절에서나 입장료 공짜인생이지만. 사찰 입장료와 주차료가 왜 그리 비싸야 하는지에는 의아심이 들었다. 시간제 주차료도 아니고 10분을 주차해도 무조건 정해진 일정액을 내야하는 주차료는 더욱 의아스러웠다. 다음날 예정표와 여행에서의 실 집행된 시간과 경비를 비교하였다. 신통하게도 거의 비슷하게 맞았다. 다시 한 번 인터넷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며 정산표와 사진을 전달하는데, 동행하였던 이웃 부부는 모처럼 좋은 여행을 하였다며 안주가 푸짐한 술상을 마련하고는 내년 봄 여행을 다시 기약하자고 하였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한 번으로 마감되는 여행의 동반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것 또한 인생의 기쁨이 아니겠나.



2017년 10월 11일

9월의 남녘여행에서

하늘빛 

여정: 하동섬진강변(숙박)→최참판댁→화개장터→쌍계사→해인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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