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법 없이도 사는 사람

korman 2018. 3. 18. 21:31




법 없이도 사는 사람


지금은 일반 공중파나 케이블방송 또는 어떤 TV중계수단으로도 연결되지 않지만 예전엔 AFKN이라고 하던 주한미군TV방송을 내국인도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당시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하던 볼링이나 컬링을 중계하였다. 국내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운동이라 채널을 돌리다 중계가 나오면 가끔 보기는 하였지만 완전 영어방송이었으니 경기 규칙은 물론이려니와 그 이름조차도 몰랐고 ‘그저 별의별 운동이 다 있구나’하는 신기한 마음뿐이었다. 볼링이라는 것은 좀 더 일찍 우리에게 보편화 되었지만 컬링은 ‘영미’가 아니었으면 아직 그 이름조차 낯선 운동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주위사람들로부터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만큼 이웃이나 사회에서 평판이 좋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면에 ‘법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도’ 한 자가 빠졌을 뿐인데도 듣기에 따라 말의 뜻은 달라진다. 해석하기에 따라 법을 전혀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말을 들으며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요즈음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겪으며 ‘컬링’처럼 살면 전자의 칭찬은 자동으로 따라 다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미로 이어지는 컬링이 인기를 끌면서 방송에서는 그 이름보다도 더 생소한 경기용어 및 규칙에 대하여 매 중계시마다 설명을 해 주곤 하였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컬링이라는 운동은 내가 아는 어떤 운동보다도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자율적이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은 있으나 그것에 앞서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행하는 운동, 심판은 있으나 반칙에 대하여 심판 개입 없이 우선 선수들이 서로 협의하여 해결하는 민주적인 운동, 착각으로 남의 스톤을 사용하여도 스톤이 멈춘 자리에 원래의 스톤으로 바꿔 놓으면 되는 자유로운 운동, 이기지 못할 경기라 판단되면 남은 엔드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를 축하해 주는 도덕적인 운동, 그래서 법은 있으나 ‘법 없이도 되는 운동’이 컬링이라는 것이다.


모든 운동이 다 그것만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살펴보면 컬링은 무엇보다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상당히 정밀한 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기하학, 역학, 마찰력, 회전력 등이 요구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얼음의 표면 상태를 잘 관찰하고 모든 조건들을 달라진 얼음 환경에 잘 대입시켜야 하는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에 더하여 빗질까지 잘 해야 하는 강한 머슴의 기질까지 지니고 임해야 하는 경기가 컬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도 이처럼 여러분야가 혼재하여 이룩되고 각각의 분야에서 정밀도가 요구된다. 대충 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 살다가는 예선에서 탈락하듯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인생의 정밀도라는 것은 법에 의하여 조절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능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즉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며 이에 더하여 자신에 대한 머슴기질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이며 자유스럽고 자율적이며 도덕적이고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컬링, 이것이 우리 인생의 각자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삶의 길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런 면에서 컬링이라는 경기는 인생의 멘토같은 운동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흐르는 세월에는 계절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렇게 주어진 순서대로 흐르는 것을 순리(順理)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순리를 따르는 것을 순응(順應)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세월과 달리 이미 정해진 순리라는 것이 없다. 그러니 여름 다음에 겨울이 올 수도 있다. 컬링의 경기에도 순리는 없다. 복합적이고 수시로 변화되는 경기 환경이 주어질 뿐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잘 따르는 것은 순응이 아니라 적응이라고 한다. 인생도 정해진 순리보다는 컬링처럼 살아가는 내내 환경이 변화한다. 따라서 세밀한 적응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적응력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컬링에는 상대방을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해하는 반칙을 범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기본 이치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는 법 없이도 산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지금 우리 컬링팀은 외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영미를 외치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사회에 컬링과 영미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2018년 3월 1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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