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끝을 조심하라 하였거늘

korman 2018. 3. 10. 20:26




끝을 조심하라 하였거늘


“나 우리 남편과도 이렇게 해 보지 않았는데”

꼼작도 할 수 없는 전철 속에서 나와 가까운 곳에 어느 남자와 마주서게 된 한 아주머니의 겸연쩍은 독백이었다. 물론 나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팔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있었지만 정거장에서 열린 문으로 사람에 밀려들어온 그 아주머니는 마주대한 남자를 피하여 몸이라도 돌려보려 하였지만, 그 남자 또한 그 무한한 상황을 피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여의치 않자 아주머니는 체념한 목소리로 그 한마디를 하였다. 내가 한창 전철로 출퇴근 할 때, 짐짝처럼 실려 다닌다고 표현하던 1980년대 초반 이야기다.


지금은 교통수단의 다양화로 예전 같이 짐짝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그러나 아직 출퇴근 시간대의 전철은 본의 아니게 타인과의 몸이 스치는 것쯤은 이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여전하다. 다른 분위기라면, 그전에는 팔조차 내 팔이 될 수 없었던 상태에서 지갑이나 귀중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면 요새는 그 보다는 공간이 좀 여유로워 내 팔이 자유스러워지니, 예전 같이 나쁜 손버릇 놀리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남의 물건을 노리는 사람들 보다는 의도적으로 이성에게 신체접촉을 하는 사람이나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예전이야 움직일 공간이 없으니 관련 기관에서 차내에 순찰을 하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요새는 지하철보안관이나 CCTV 등 감시하는 눈이 많아져 오히려 속칭 쓰리꾼보다는 성추행범이나 몰카범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뉴스거리로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늘 그 아주머니의 말 한 마디가 떠오르곤 한다.


예전에는 상황이 그래서 그랬는지 전철에서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당하는 본인은 괴로웠겠지만, 사람들이 많은 차 안에서 큰소리로 그런 행위를 제지하거나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행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다. 물론 일을 당한 사람들이 모두 여자이다 보니 요즈음과는 달리 당시의 사회분위기상 소리 지르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고 핸드폰이라는 것이 보편화되지 못하였을 때이니 현장에서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피해자가 현장에서 적극적인 방어를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본의였던 본의가 아니었던 그건 나중문제다. 가해자로 지목되면 나중에 행해지는 조사에서 죄가 있다 없다를 떠나 우선은 얼굴부터 망가지고 주위의 손가락질부터 받아야 한다. 그러니 사람 많은 전철에서 서있어야 할 때는 늘 조심하는 게 좋다. 본의 아니게 접촉이 되면 잽싸게 사과부터 하고.


요즈음 ‘미투(Me Too)'라는 운동이 한창이다. 요즈음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말 할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나 환경이 지금에 그리 하도록 주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해자들로 지목된 모든 사람들이 각계를 대표하는 수장 격이었으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높였고 사회적으로 덕망을 쌓아았며 국민들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는 어떤 모임에서 연사로 설 때마다 인간다운 도덕적인 삶을 이야기 하시던 분들이었으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시던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이중인격자라 부른다. 그런데 그들이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면 사회적으로 논리적으로 모순된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마치 로맨스를 하다 들켜 불륜이 되었다는 논리 같다.


최근 한 여성검사의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번지기 시작한 이 미투운동이 사회적으로 유명한분들이 얽혀진 터라 지금 확산 일로에 있지만 실은 우리나라에서 이 운동의 시작은 전철에서 당한 피해자들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좋을 듯싶다. 예전에는 그늘 속에 숨어야 했던 그들의 외침이 그늘을 벗어나와 미투라는 공식적인 사회적 여성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고나면 터지는 미투, 과연 내일은 어떤 분이 또 나타날는지 기대(?)가 된다.


자고로 남자는 손끝, 혀끝, 그리고 X끝, 이 세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거늘. 잘못 놀린 끝으로 인하여 평생 쌓은 탑을 다시 쌓을 수 없게 스스로 무너뜨렸으며 급기야는 자살이라는 극단을 택하게 하였다. 참 애처로운 모습이다.


2018년 3월 10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