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헬기소리가 요란했다. DMZ내에 큰 산불이 일었는지 통일전망대 근처 저수지에서 헬기 3대가 번갈아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전망대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 너머에서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핸드폰에 재난경보가 울렸다. 고성, 양양, 인제 등에 산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서있는 곳이 민통선 안쪽이고 초여름 같은 날씨에 대기마저 건조했으니 자연발화가 되었겠지만 차창 밖으로 불이 꺼지지도 않은 담배꽁초를 던져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산불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연발화라는 말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편이다.
고성통일전망대는 자식들이 어렸을 때와 그 후 형제들과 왔었으니 이번이 세 번째이다. 한 15여년 터울로 온 것 같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망대가 있는 언덕을 올려다본즉 알루미늄인가 유리인가 기역자로 꺾인 새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건물이 낡아 새로운 전망대를 짓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주차장에서부터 바라본 시설에 대한 느낌은 처음 왔을 때와 별반 다른 게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맑으니 전망대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북쪽 산자락과 수평선에 아지랑이가 너울거렸다. 산과 들은 벌써 깊은 여름을 느낄 정도로 수복이 울창해 보였다. 중간에 삐죽 나온 섬같은 곳이 군사분계선이라는데 그저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했다. 북한쪽 초소에 근무하는 북한 병사들에게 우리 관광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들에겐 그 소리가 무척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빛깔은 동해의 다른 곳에 비하여 더욱 청량한 쪽빛이며 부서지는 파도 또한 더 하얘보였다. 아마도 해변쪽으로 눈에 거슬리는 인위적 시설들이 없으니 선입견에서 그리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가 보았던 다른 곳의 전망대에서는 북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느낄 수가 있었지만 1시간여 머문 이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는 그저 가끔씩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새들과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의 움직임 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봉우리 수풀에 가려진채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비초소를 빼고는 육안으로 관찰 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게 없었으니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평화로운 자연을 감상한다는 것 외에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곳이 우리가 주적으로 생각하여야 하는 북한이라는 것은 동족상잔이 만든 비극적 사고일 뿐이었다.
달라진 게 있긴 있었다. 나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거대한, 좀 보태서 전망대 건물보다도 더 커 보이는, 3대 종교의 종교상징물들이 커다란 돈통을 포함하여 이 그 좁은 지역에 북한을 바라보고 설치되어 있었다. 그 상징물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북한지역에는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전망대가 있어 주민들이 관망할 수 있는 곳도 없다. 단지 초소를 지키는 몇몇 북한 병사만이 이 거대한 상징물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내 생각에 그들을 위하여 그리 설치하였을 것이라는 진정성보다는 서로의 교세를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 더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3종교 간에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좁은 지역에 그리 거대한 상징물을 만드는 것 보다는 관람객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조그맣고 아담한, 그래서 진정으로 북녘의 동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의 상징물이 더 공감을 끌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DMZ박물관이라는 곳을 관람하였다. 현 DMZ시설물의 모형이나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그 전쟁의 역사와 DMZ의 실태를 가르쳐주는 장소였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손녀는 그런 자료들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자료들이 그 나이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음인지 할아비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었다. 그 아이와 난 쓰는 용어 자체가 다른 세대였다. 나는 ‘북한, 남한’에 앞서 ‘이북, 이남“이라 먼저 말하는 세대였고 아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단지 ”북한, 남한“이라고만 말해야 이해하는 세대였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저 ’대한민국‘이라는 단일 국명만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웃음을 준 한 마디, 큰손녀의 할아비 고향 질문에 ”할아버지는 한 살 때 북한에서 피란 나왔단다“ 라는 내 대답에 작은 손녀가 추가 질문을 하였다. ”피 안 나오는 사람도 있어요?
전망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병사들이 지키는 민통선 차량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관람객들이야 즐거운 마음이겠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에 하루 종일 똑 같은 행동요령을 앵무새처럼 들려주어야 하는 병사들의 고충은 매우 심할 것 같았다. 내가 그 곳을 통과하는 시간에 우리가 탄 차량을 맞이한 병사는 턱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말이 꼬여 있었다. 별로 지켜지지도 않는 행동요령을 병사들에게 하루 종일 되풀이 하게 하느니 차라리 인쇄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갈 때 받았던 출입증을 반환하였다.
2018년 4월 30일
하늘빛
음약: 유튜브
여정(2018년 4월20일~21일, 1박2일. 아들+딸 모든가족) : 집 4월20일 아침 6시30분 출발 - 낙산사 - 속초 점심(함경도 가릿국밥+옥수수막걸리) - 속초 외옹치해안 (4월 12일 반세기만에 일반공개) - 남대천 - 저녁 회+섭국+물회+소주 - 양양 솔비치리조트(20일 숙박) - 아침 일출+컵밥 - 고성 통일전망대 - 아이들 해변 모래놀이 - 집 (21일 밤9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