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 전국날씨가 기온이 낮고 궂을 거라고 하였다. 남녘이라도 기온이 평소보다 낮을 거라 하였다. 속살을 잘라내서 그런지 수술 후에 추위를 더 심하게 타는 집사람은 나에게도 두꺼운 옷을 입으라 강요한다. 평소에도 자주 그런 말을 하는지라 내가 하는 답은 늘 정해져 있다. “자신이 타는 추위의 기준으로 나를 생각하지 마라.” 결국 점퍼 안에 걸칠 얇은 카디건에 조끼 하나를 배낭에 넣고 나서야 집사람의 잔소리는 그쳤다.
여행의 맛이 첫 번째로 좋은 것은 휴게소에서 먹는 아침 우동 때문이다. 내비게이터에서 상냥한 여자분이 알려주는 길을 마다하고 경부고속도 안성휴게소에 멈췄다. 그 분은 최적의 행로로 민자고속도로를 알려줬지만 경험상 그 길 휴게소의 음식은, 개인 취향이지만, 소위 가성비라는 것이 좀 모자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경험으로 안성휴게소의 우동이 맛있다고 하였지만 다행히 그곳을 처음 경험한 일행도 만족스럽다고 하니 가는 길을 바꾼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나보다.
‘진안 마이산 탑사’ 남쪽 주차장에 들어섰다. 예전 작은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왔었으니 한 20여년이 훌쩍 지난 것 같다. 그 때는 지도만 보고 다닐 때라 남쪽으로 와야 될 것을 북쪽 주차장 쪽에서 계단으로 두 봉우리 사이를 넘어 탑사로 오느라 시간과 힘이 많이 들었었다. 북쪽으로 오면 아직도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두 봉우리의 실루엣은 북쪽에서 바라보는 게 더 멋이 있는 것 같다. 1800년대 후반에 한 사람에 의해 쌓아진 그 많은 돌탑들이 온갖 풍상 속에서도 100여년 이상을 온전히 또 굳건히 견뎌내고 있다는 데 놀라움이 있다. 여기저기서 “아이~~야”하는 감탄의 소리가 많이 들렸다. 내방객의 절반은 중국계로 보였다.
송광사로 가는 길에 남원추어탕을 꼭 먹어야겠다는 일행의 요구에 따라 춘향이와 이도령을 만나러 갔다. 수술 후 병원밥을 먹지 못하던 집사람이 입원 내내 유일하게 거부하지 않고 먹고 기운을 차렸던 음식이 추어탕이다. 사실 나는 그 좋다는 추어탕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일행이 좋아하고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어찌 아니 들려가랴. 모두가 추어탕을 즐기던 그 시간에 나는 그 옆집으로 갈비탕을 먹으로 갔다. 일행이 추어탕에 감탄하며 만복의 기쁨을 느낀 반면 난 소가 신발까지 신고 건너간 것 같은 멀건 물 한 그릇을 들이켠 느낌만 들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면 일행은 반드시 그 추어탕이 그리워질 것이고 나는 내 생애 최악의 갈비탕으로 늘 그곳을 기억할 것이다.
송광사는 매표소에서 사찰까지 걸어가는 길이 좋다. 20여 년 전에 왔을 때 보다는 주차장이 사찰에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지만 깊이 내려앉은 개울을 끼고 나무숲을 바라보며 사찰에 이르는 길은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야 비교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머리와 몸을 정화시키는 데에는 충분하다 하겠다. 난 불자는 아니다. 단지 스님의 독경소리가 좋고 가람의 처마 끝에 매달려있는 풍경의 흔들림과 그 소리가 나를 치유시키는 것 같아 여행길엔 꼭 몇몇 사찰을 찾곤 한다. 그런데 송광사에는 풍경이 없다. 송광사가 원래 많은 승려들의 배움터이고 수련터이다 보니 풍경소리가 승려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없다는 것이다. 가끔 그저 요란하지 않게 울리는 풍경소리는 잊고 있던 속가의 그리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 속인의 그저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순천에서 하루를 묵으며 인터넷과 순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그리 요란하게 소개되는 ‘꼬막정식’을 먹었다. 요새 맛집 소개하는 블로그와 카페라는 것들이 매우 상업적이라 믿을 게 못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또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았다. 그래도 순천을 처음 찾는 일행들은 그걸 경험하고 싶다고 하는지라 관광지근처 보다는 시내 시청 근처에 있는 곳이 나을 것 같아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았다. 주말이라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 곳에는 우선 우리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식당 홈페이지에 다 소개되고 메뉴판에도 있는 것인데 4명이 꼬막정식 2인분, 한정식 2인분을 시켰더니 필리핀계 종업원은 바빠서 다른 건 못하니 일행 모두 꼬막정식 한 가지만을 주문하라고 하였다. 참고로 꼬막정식은 18,000원/인, 한정식은 12,000원/인 이었다. 필리핀 식당인지, 순천의 식당인지 뭘 물어도 모두 필리핀계 여종업원 한 사람이 모든 걸 -주문에서 서빙, 답변, 결제까지- 처리하였다. 물론 기다림도 길었다. 양념과 채소가 많이 들어간 꼬막무침에는 맛이 상한 꼬막도 여러 개 들었다. 나중에 야시장에서 만난 젊은 순천친구들은 그걸 왜 먹었냐고 하였다. 현지에서도 이해가 안 되게 값도 너무 비싸고 다른 집도 다 같으니 다음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였다. 나도 그리 생각하였다. 누가 물으면 극구 말려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요일의 혼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일찍 순천만국가공원에 당도하였다. 나는 몇 해를 앞섰지만 집사람은 올해 공공장소 무료입장인생이 되었다. 그러니 어디서 어찌 할인을 해 준다고 해도 신경 쓸 일은 없다. 그러나 일행이 입장권을 구매하려하자 창구직원은 우리가 순천에서 묵었으면 숙소에서 발행한 영수증을 제시하면 1인당 1,000원씩 할인을 해 준다고 하였다. 이건 또 무슨 말? 그곳에 가기 전에 나는 순천시 문화관광 및 국가공원 홈페이지 등을 여러 차례 훑어보았는데 그런 정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내가 묵은 숙소에서도 그런 안내는 없었다. 예약하고 송금하고 확인하느라 숙소측과 주고받은 문자는 있었으나 숙소에서 발행한 공식 영수증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였다. 우리 뒤를 잇는 사람들도 그게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누가 어디서 알고 숙소 영수증을 챙겨 올까. 그런 제도가 있다면 홈페이지와 숙소에 당연히 안내 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꼬막정식 때문에 꼬인 마음이 일요일 아침 공원 꽃밭에서도 풀어지지 않았다.
올라오는 길에 백양사와 내장사에 들렸다. 남들보다 서두르며 다녔다고 생각하였는데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10월말이었지만 그 좋다는 내장산 단풍은 절반도 들지 않았는데 곳곳이 인산인해였고 중국사람들이 어찌 그리 많이 왔는지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줄곧 따라다녔다. 호떡집에 불났느냐는 말을 실감하면서 사찰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 일주문을 들어서 대웅전 바로 앞에까지도 막걸리와 니나노 판이 펼쳐지고 (개인이 아니고 장사하는 천막들이) 대웅전에서 독경을 하는 스님은 그 니나노가 시끄러운지 대웅전 앞마당을 제압하는 스피커를 걸고 독경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소리는 있어야할 자리를 잃었다. 아무리 장사속이라도 사찰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서 니나노판은 문화재관람매표소 밖에서 끝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는 곳 마다 중국인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 외에 주차장에 세워진 대부분 버스의 앞유리 전광판에는 ‘땡댕 초등학교 동창회’라는 단체명이 흘렀다. 봄에 다녀온 곳에서도 그랬다. 언제부터 초등학교 동창회가 이리 많아졌을까? 그곳엔 즐거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너 그 때 나한테 프로포즈 하지 그랬어?”집으로 돌아오는 이른 저녁 행담도 휴게소에서 다시 우동을 먹었다. 상하행 휴게소의 요식업체가 달라 그런지 상행이 하행을 뒤따라가는 맛으로 느껴졌다. 이웃과의 2018년도 가을여행,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남았다. 나야 그곳에 스스로 다시 가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