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숙녀먼저 (Lady First)

korman 2018. 11. 18. 13:29






숙녀 먼저 (Lady First)


작은 사무실을 혼자서 운영하는 절친한 후배가 몇 달 전 사무실 이사를 한다고 하여 혼자 짐 챙기기 힘들 것 같아 이사하는 날 다녀왔다. 뭐 좀 도움이 될 것 같아 가기는 하였지만 후배의 부인과 친구 두 명이 이미 도와주고 있어 내가 도움이 되었다기 보다는 점심을 나누고 덕담이나 한 정도밖에는 없다. 그저 말로 몇 마디 거들고 왔다고 해야 오를 것 같다.


아침 일찍 서둔 탓인지 점심때까지 짐은 거의 다 옮기고 정리만 남았기로 점심식사 후 그의 부인이 과일을 깎아 내왔다. 그러자 그의 친구가 장난삼아 한 조각을 과일꽂이에 끼우더니 “레이디 퍼스트 (Lady First)”하며 부인에게 건넸다. 부인은 워낙 친한 사이라 아무런 사양이나 거리낌 없이 활짝 웃으며 “고맙습니다”하고는 그 과일 조각을 얼른 받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장난기가 들어, “제수씨, 그 레이디 퍼스트 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한 말 던졌다. 갑작스런 내 농담에 그들은 의아해 하며 이유를 물었다.


“혹시 기미상궁”을 아십니까?“라고 물은 즉 부인은 얼른 알아차리고 남편 친구에게 웃으며 ”그런 거였어요?“라고 물었다. 이 말에 모두 웃었지만 그 웃음 끝에 하나같이 하는 말들은 ”왕실에서 제일 위험한 직책의 상궁이 그거 아냐?“라는 말들이었다. 그렇게 과일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농담은 계속되나 싶었는데 그만 내가 꺼낸 농담에 내 스스로 갇혀버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Lady First에 대한 것을 계속 물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그 말에 얽힌 속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 이것저것 많이도 물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진실 되게 대답한 것은 딱 한 마디 ”낸들 압니까?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양에서야 예전부터 숙녀를 많이 배려하였다하니 그 배려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내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라 내가 끝내야겠기로 평소 Lady First에 대한 내 생각이기도 한 것을 농담조로 이어나갔다. 그 Lady First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나도 참 궁금하다. ‘기미상궁’이라는 농담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실상 기미상궁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왕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그 직책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자리로 대단한 용감성과 대담함과 책임감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한편 생각하면 왕은 남자이고 왕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는 내시들도 많았는데 왜 하필 그 위험성이 있는 기미는 남자내시를 시키지 않고 여자상궁에게 하게 하였을까 생각해 보았냐고 그들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그들의 얼굴엔 농담 뒤 웃음으로 생겼던 주름이 조금 펴 보이는 듯 느껴졌다.


난 그 비슷한 설명을 이어갔다. 서양이 여자를 대우하는 것이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일렀고 그 영역도 넓은 셈이지만 그렇다고 난 무턱대고 서양의 여성에 관한 처우가 우리보다 월등히 우월감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서양에서도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였지만 여성참정권은 근세기에 주어진 것이고 남편이 전쟁터에 나갈 때 부인에게 채운 정조대 같은 것은 우리가 조선시대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참 미개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Lady First라는 것도 내 생각으로 따지고 보면 여자를 배려하는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음이 이러하다.


나는 기미상궁이 위험에 먼저 노출되는 것처럼 서양의 Lady First라는 것 또한 숙녀를 배려하는 잰틀맨의 신사적 행위가 아니라 잰틀맨이라는 포장을 얻기 위한 남자로써는 참 비열한 위선적 행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피력하였다. 건물에 들어갈 때 문을 열어주며 여자를 먼저 들여보내는 것은 혹시 모를 문 위에서의 낙하물에서 남성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며 건물을 나설 때 여자보고 먼저 나가라고 하는 것은 건물 현관과 보도의 높이 차이가 있을 경우 무심코 먼저 나오다 자신의 발목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을 열어주며 친절을 베푸는 것은 여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자신의 보호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여자와 길을 걸을 때 여자를 인도의 안쪽으로 가게 하는 것은 자동차로부터 여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물건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행위인 것이다. 실지로 자동차가 인도로 돌진하여 사람이 다치는 확률보다는 건물에서의 낙하물로 다치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지 않는가. 서양에서 개발된 양산이나 우산은 원래 지금의 용도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건물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피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니 그렇다면 내 생각이 잰틀맨의 치사성에 부합한 것이 아니겠나. 난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이어간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들의 웃음은 좀 달라져 있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각종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는 남녀의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도 있다. 서방님이나 도련님은 ‘님’이 붙는데 아가씨는 왜 아가씨냐 등등. 그렇다 하더라도 Lady First라는 말을 싫어하는 여성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요새 주장되는 남녀타파의 문제라면 이 Lady First도 없어져야 할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군다나, 난 이 글을 쓰며 인터넷을 뒤져 안 일이지만, 어느 정도의 신뢰도가 있는 지식소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Lady First라는 것이 예전 전쟁터에서 앞에 지뢰가 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하여 여성병사들을 먼저 ‘진격 앞으로’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말이라 하니 내 평소 이 말에 대하여 농담식으로 품었던 생각이 맞는듯하여 글 말미에 ‘남성 먼저 하세요’라 계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여성들에 대한 Lady First는 지뢰기미상궁이었나?


2018년 11월 1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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