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순댓국집 시인

korman 2018. 12. 8. 15:29




순댓국집 시인(詩人)


내가 지금 사는 곳 2층에는 집 가까운 곳에서 아내와 같이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나 보다는 한 10여년 젊은 친구가 있다. 가끔 들락날락 거리며 마주치고 서로 인사도 잘하고 지내는 이웃이 그런 일을 한다고 하는데 나나 집사람이나 순댓국을 안 좋아 하는 것도 아닌지라 두어 달에 한 번쯤 점심 바쁜 시간이 지난 후에 들른다. 내가 이 동네에 28년을 살고 있지만 그와 이웃이 되기 전에는 그 앞을 지나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곳이다. 갈 때마다 그는 모듬순대와 함께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들고 내 옆자리에 앉는다.


순댓국집이라니 그 분위기는 그저 나이든 사람이 운영하는 보통 재래식 순댓국집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난 처음 그곳에 들렀던 날 다른 곳과는 좀 다른 것에 시선이 갔다. 세련된 장식은 아니지만 벽 여기저기에 산 사진과 시적인 글귀들이 눈에 뜨였다. 앉자마자 직설적으로 뭇기는 뭐하여 덕담 몇 마디하고 한 순배 돈 다음 메뉴판 외에 걸려있는 것글에 대하여 물었다. 나도 학창시절에는 거기에 사진으로 걸려있는 산에 오른 적도 있고 지금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며 되지도 않는 글귀 끄적이고 있으니 자연 그것들과 순댓국집 주인장과의 인연에 관심이 깊어진 것이었다.


11월초에 다른 이웃 부부와 마주 앉은 자리에도 어김없이 소주와 맥주를 들고 곁에 앉아 소맥을 한 잔씩 만들어 잔을 부딪치더니 “저 가을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이 책에 시 몇 편 올렸습니다.”라고 하면서 약간은 부끄러운 듯 조금 두툼한 책 한 권을 내손에 쥐어 주었다. 인천의 문인들이 만들어내는 계간지였다. 그가 열어주는 페이지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이제 지방 문단에 데뷔한 그의 프로필과 사진 그리고 그가 지어낸 시 몇 편이 올라 있었다. 그간 그는 순댓국집을 운영하면서 사진과 글로 다른 분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고 그 계간잡지 2018년 가을호를 통하여 정식으로 등단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나 글귀들은 그와 교분을 쌓고 있는 분들의 그에 대한 정성어린 마음인 것이었다.


그리 책 한 권을 받아들고 나온 며칠 뒤 그에게서 카톡으로 초대장이 왔다. 11월 15일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간 써 놓은 글들을 모아 한 권 시집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순댓국집 주인은 이제 시인이 된 것이다. 난 출판기념회 대신에 한가한 시간을 택해 그가 일하는 곳을 찾았다. 어김없이 모듬순대 한 접시와 낮술잔을 마주하고 그는 나에게 작가의 서명이 담긴 시집을 한 권 가져다주었다. 극구 만류하는 그의 손에 책값을 쥐어주니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책값은 마누라가 챙깁니다”라며 주방에서 웃으며 얼굴인사를 하는 그의 부인에게 전해 주었다.


그의 시를 읽기 전에는 난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모두가‘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접한 시집에는 현실적인 시도 있기는 있었지만 많은 것들이, 이리 표현하면 맞을라나 모르겠지만, 좀 자유의 색채와 낭만이 섞여진 그래서 현실적인 것들도 시인의 시선과 손끝을 통하면 소위 세속인들이 문학적이라 표현하는 그런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난 그의 시집을 다 읽을 때 까지 그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그의 시는 나에게 ‘순댓국집’이라는 한정된 현실의 공간에 갇혀있는 그의 답답함을 전해주었다. 그의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고 순대국집의 것이었다는 것을 표출한 것 같았다.


그의 공간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그는 술잔 가녘으로 점점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풀어 놓았다. 아마도 시 이전에 그가 이미 써 놓은 그러나 아직 밖으로 내놓지 못한 그의 시 속에 표출한 사연의 뒷이야기들이 그가 내게 따르는 술잔에 편하게 녹아들고 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다. 그의 시집을 읽기 전이었지만 대화가 계속되면서 난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에서 순대국집이라는, 현실적으로 삶을 위하여 그가 지켜야 하는 좁은 공간과 늘 얽매어 있어야 하는 시간에 대한 갑갑함이 묻어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위치에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리 있을까만 시라는 함축된 몇 줄짜리 글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여야 하는 그에게 있어서 그곳은 어쩌면 시로도 넘지 못할 자유의 억압이 아니었을까?.


시집을 읽고 아직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연말쯤 자신의 시간이 자유스러워지는 일요일, 서녘에 노을이 질 때쯤 한 잔 하자고 하였으니 그 자유로운 시간에 그는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궁금하다. 아마도 내가 꺼내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지 못한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지. 그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 즈음에 그의 시집을 한 번 더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번 연말 소주잔에는 저녁노을에 물든 그의 현실적 싯귀가 세월의 이야기되어 소주 속에 녹아들지도 모르겠다.


2018년 12월 7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