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지난 5월의 끝자락을 되새기며

korman 2019. 6. 5. 14:34



지난 5월의 끝자락을 되새기며


박달재에서


평소 기회가 있으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옛 노래다. 노래는 그리 부르면서 박달재는 언제 가보나 늘 생각하다 5월말 길 떠난 김에 내비게이터에 그곳으로의 안내를 부탁하였다. 금봉이와 박달이의 사랑 이야기가 아주 낭만적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고갯마루에 올랐다. 산자락 한켠에서 우선 눈에 뜨이는 건 금봉이와 박달이의 애정 어린 조각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유명한 노래비 “천등산 백달재를 울고 넘던 우리 님아....”. 그런데 아무리 둘러 봐도 산책로나 시설물의 관리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많은 표지판이나 설명문은 지워져 읽을 수 없었고 산책로 또한 여기저기 훼손되어 이용이 불편하였으며 고개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야는 수려한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오르는 자동차들도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기념품점을 지키는 여인에게 그 상황을 물었다. 매년 예산 신청을 하지만 승인이 되지 않는 바람에 그리 되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개의 이야기를 따라 테마공원을 만들긴 하였지만 수지타산이 당초 계산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방치하는 모양이었다. 순간 만일 박달이가 과거에 급제하여 의기양양하게 이 고개에서 금봉이와 재회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면 성공의 바람을 간직한 입시생들과 그 부모들이 한 번쯤은 들르지 않을까 그리하면 예산 지원도 잘 이루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절한 사연으로 인하여 고개에 이름은 남겼으되 실패한 사람은 사후에도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하나 하는 쓸 데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의림지에서


제천10경 중 제1경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련한 인공저수지라 하였다. 그쯤 되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의 가치는 제1경으로 충분하다 하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본 그곳은 예전 안양유원지 보다도 더한 유원지로 전락한 것 같았다. 접근성을 좋게 하고 편의시설도 제공해야 하겠지만 인공구조물들을 만들기 전에 먼저 그곳이 놓여있는 자리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우선 되었다면 현재의 그것보다 더 좋은, 말 그대로 ‘제1경’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개발이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닐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의 그곳은 누가 봐도 제1경은 아닌 듯싶었다. 원래 부잣집이 있던 자리인데 시주를 부탁한 스님에게 쌀 대신 거름을 한 삽 퍼준 주인의 못된 짓 때문에 기와집이 가라앉고 물이 고였다는 전설인데 구룡사에서는 용이 살던 연못을 뺏으시더니 아무리 못된 사람이지만 집을 가라앉히시다니 부처님의 힘을 강조하려고 인간들은 별 이야기를 다 지어내었다.


도담삼봉에서


수량이 충분치 않아 강물의 수위는 매우 낮아져 있었다. 주말 오후의 햇볕은 한 여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 꾸역꾸역 밀려드는 자동차들로 주차장에 차를 대는 것부터가 순조롭지 않았다. 완장을 채워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민족이지만 여기저기서 동시에 호루라기를 불어 대며 경광램프로 주차 방향을 지시하는, 거만하게 느낀다면 그리 느낄 수도 있는, 주차안내요원들의 소음을 들으며 한 자리 차지하고 내려 본 도담삼봉의 모습은 그간 주위에 세워진 거대한 인공 시설물들로 인하여 왜소하다 못해 차라리 초라하게 보였다. 30년도 더 전에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기념 여행으로 들렸던 때의 도담삼봉 모습은 그대로인데.......

강물에서부터 느긋하게 바라보여야할 삼봉의 모습은 우선 강가 초입에 흉측하게 세워진 철제구조물이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모터보트 선착장이다. 보트 선착장을 굳이 삼봉 코앞에 설치하였어야 했을까? 바위 주위를 오가며 곡예를 부리는 보트들의 모습에서 시원하고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서커스를 하듯 도로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의 위험성이 먼저 보였다. 저리 홀락거리다가는 탑승객들의 즐거운 함성이 어느 순간 살아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보트들이 서로 엇갈리며 여기 저기 바위 주위에서 급회전을 하고 봉우리 사이를 빠져나가기도 하면서 위험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광객 유치도 좋고 자치단체의 수입도 중요하지만, 또 늘 하던 대로 뭔 일이 나야 조치가 이루어지겠지만, 그곳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그 위험성만은 우선 인지하기 바라면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삼봉선생은 어찌 생각 하실런지.....


충주호에서


주차장에 관광객을 내리는 버스를 살펴보니 2/3이상이 땡땡초등학교 간판을 달고 있다. 요즈음 좀 알려졌다는 곳에 가면 이런 전광판을 달고 있는 버스들이 즐비하다. 한 무리의 초등학교 동창회 사람들과 같은 유람선에 올랐다. 다들 중년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었다. 호수 한 가운데서 올려다 보이는 기암괴석과 산봉우리들이 굳이 수묵화를 거론하지 않아도 그야말로 산수가 어우러진, 그래서 배가 진행할수록 달라지는 모습은 ‘산수의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듯’ 하다고 표현하면 맞을런지? 승객 모두가 그 경관에 빠져들 즈음 주위가 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다른 승객을 배려해 달라는 선장의 부탁 방송이 나왔다. 그 방송은 대여섯 차례나 이어졌다. 결국 선장은 호수 한 가운데에 배를 멈추고 좀 더 힘 있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그들은 선실을 벗어나 배 뒤쪽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더니 또 같은 작태를 벌리고 있었다. 선장의 방송은 ‘어느 동네 개가 짖냐’하는 식이었다. 아마 선진국 같았으면 호수 한 가운데로 경찰을 불렀던지 배를 수상경찰서로 몰고 갔을 것이다. 혹자는 현 우리나라를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한다. 가정을 벗어나 초등학교동창이라는 미명으로 서로 이름을 부르는 외간남녀가 만나면 안하무인으로 그리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유람선을 탈 만큼의 돈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승한 아이들은 진정한 선진국에서 살아야 하는데 선장의 말을 개짖는 소리로 여기는 그들이 선진국을 만들 수 있을지 기우가 앞섰다. 어쨌거나 그리 남을 배려할 겨를이 없이 즐겁다니 나도 내 초등학교동창회가 어디 있는지 인터넷을 다 뒤져서 찾아봐야겠다.


하얀짬뽕의 맛


주소를 여러 번 다시 입력하여도 내비게이터는 자동차의 교행도 불가능한 논밭 사이의 작은 농로만을 가르쳐 주었다. 마을도 없는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겠나싶어 차를 멈추기를 여러 차례, 그러나 내비게이터는 자기 말을 못 믿겠냐는 식으로 환경설정을 바꾸어도 고집스레 같은 길만을 가르쳐주었다. 그 길로 가라니 가보기는 하겠는데 반신반의하면서 경운기나 다니는 길을 벗어나자 허름한 공장 같은 건물이 보이고 그 앞과 좁은 길가에는 승용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엇지들 알고 이리 찾아왔는지 놀라는 것도 잠시 입장하려면 도착한 때부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 집을 방송한 PD는 번듯한 길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좀 번잡한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닌 이 집을 어찌 알고 TV에 소개하였을까? 길을 가르쳐준 내비게이터의 수고를 생각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랬더니만 그 자리에서 또 4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오기가 생기게 기다렸으니 그 유명하다는 하얀짬뽕 맛이라도 보고 가자하여 계속 앉아 있었다. 상차림을 하던 친구가 우리가 오늘 마지막 손님이라고 하였다. 재료가 떨어져 더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뒤에 도착한 사람들은 퇴출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서 기다리다 지쳐 포기한 일행이 없었다면 우리도 퇴출될 뻔 하였다. 맛? 느끼는 맛이야 각자 입맛에 따라 다르니 직접 먹어봐야....문학적 미식가가 못되는지라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보통 오전 11시30분에서 2시 가까이 되면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진다고 하였다. 들어간 해물이 도시의 그것보다 싱싱하다는 것, 그저 이 말만 전달할 수 있을 뿐.

고춧가루 대신에 넣은 청량고추의 칼칼함을 느끼며 큰 길을 찾아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2019년 6월 4일

하늘빛


여정 : (5월 25일) 집 - 원주 구룡사 - 제천 박달재 - 제천 의림지 - 단양 도담삼봉 - (26일) 단양 단양강 잔도 - 충주호 유람선 - 서산 동부시장 - (27일) 태안 신두리해변사구 - 태안 천리포 수목원 - 서산 해미읍성 - 서산 개심사 - 서산 마애삼존불 -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