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길을 걷다 30년 전 기억이 문득

korman 2019. 5. 8. 16:50





길을 걷다 30년 전 기억이 문득


빈국과 부국을 불문하고 많던 적던 간에 어느 나라에나 도시의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많은 시설물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통된 것이 가로등이다. 그리고 그 가로등 기둥에는 나라나 도시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불법 광고물이 많이 붙어있고 이를 관장하는 관공서에서는 광고물 제거는 물론 새로운 페인트칠 등으로 기둥의 미관을 살리고 수명을 오래가게 하려고 노력한다.


한 30여년 지났을까. 런던에 며칠간 머물며 호텔에서 매일 아침저녁 걸어서 일보러 다니던 도로의 한 가로등 아래 하루는 아침에 모래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뭘 하려나 궁금하였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오후 호텔에 돌아 올 때 다시 보았더니 이번에는 가로등 기둥을 장막이 꼭대기 까지 감싸고 있었다. 뭘 하는지 궁금하여 좀 벌어진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페인트 작업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기둥에 페인트칠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당시에는 좀 웃었다. 솔직히 당시 우리의 인식으로는 가로등 기둥 하나 칠 하려고 아래 모래를 그렇게 깔고 휘장을 치고 작업하는 것이 낯에 익지 않았고 그 시간이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그 길거리 기둥 모두를 페인팅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도 그들은 기둥 하나에 모래를 깔고 휘장을 치는데 하루를 허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둥의 휘장은 4일정도가 지나서 벗겨지고 아래 모래도 치워진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30여 년 전 남의 나라에서 본 게 기억나는 것은 며칠 전 새로 보도블록이 깔린 지 오래지 않은 길을 걷다가 그 길 한 복판에 덕지덕지 발라져 굳어버린 시멘트콘크리트 잔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일반 보도블록에만 발라져 있어도 잘못된 것이거늘 그에 더하여 보도 한 가운데 설치한 시각장애인용 노란 블록을 덮고 있었다. 눈이 온전한 사람들이야 그런 게 발라져 있건 없건 공사 좀 잘 하지 하고 지나치면 되겠지만 눈이 안 보이는 분들은 지팡이를 이용하여 그 블록을 더듬어 따라가야 하는 관계로 블록의 무니 형태가 달라질 경우 그 위치를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잔해는 노란블록조차도 덮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리 되었을까 잠시 살펴보니 최근에 인도와 차도 사이에 상업광고용 현수막을 거치하는 거치대 기둥 2개를 설치하면서 기초 콘크리트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각종 공사를 하다보면 관련 자재들이 길에 떨어지거나 놓여 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멘트콘크리트의 경우 굳기 전에 물로 씻어내면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 30여 년 전 영국인들이 보도에 페인트가 떨어져 얼룩질까 모래를 깔고 행인들에 피해를 줄까 휘장을 치고 했음직한 일이 우리의 지금 이 모습과 대비되며 우리는 아직 이렇게 공사하나 싶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 상업용 현수막 거치대는 관공서의 허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설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당 기관의 감독이 있었을 터인데 그 감독조차도 이를 간과하였을까 아니면 묵과하였을까?


공사하는 사람들은 굳기 전에 그것을 제거 했어야 하고 기관의 감독자는 공사자에게 잘못된 것을 제거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설사 감독자가 공사 당시에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공사가 끝났을 때 한 번 쯤은 돌아봤을 텐데 그냥 무심히 바라봤는지 길 한복판은 그렇게 되어 있다. 이런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사는 어찌될까 싶은 생각이 들며, 아니 간단한 것이었기에 묵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일에 대한 인식이 아직 30여 년 전 그들의 생각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염려스러움도 들었다. 이래서 우리는 아직 선진국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길 가운데 보도블록의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그 기관의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고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면 좋겠다.


2019년 5월 7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