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마트에서도 눈에 뜨이지 않아 요즈음도 생산되고 있나 인터넷을 잦아보니 아직 생산, 판매되고 있었다. 세계적인 음료회사가 70년대 말 우리나라 전용으로 출시한 사이다라고 한다. 이 제품 광고에서 지금도 기억되는 광고카피가 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맛 0사이다”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들렸던 말에 의하면 광고를 만들면서 직원들이 소비자의 심중을 콕 찌르는 문구가 생각이 나지 않자 한 직원이 창가에 서서 답답한 마음에 “뭐 좀 가슴이 탁 트이는 거 없나?”라고 했던 독백이 광고카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영향이었는지 사람들은 좀 답답하면 그 “가슴이 탁 트이는” 문장을 곧잘 인용하였다.
한 때 초등학생들에게 침대가 뭐냐고 물으면 많은 학생들이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대답을 하여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카피가 한동안 유행하고 나서 흘러간 세월도 꽤 오래 되었으니 지금 초등학생들은 아마 제대로 된 가구로 돌아가 있겠지만 침대의 학문적 분류를 가구에서 제외시킨 참 대단한 카피였다. 한편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는 사회적으로 참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먹는 푸성귀에 대해서 한자어로는 늘 ‘채소’라 말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채소라 부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모두가 ‘야채’라 부른다. 예전에 우리는 채소라 불렀고 야채라고는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단어는 일본에서 한자를 정리하며 자신들이 쓰고 있는 한자로 푸성귀를 표현하다 보니 ‘야채(野菜)’라 하였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우리가 집중적으로 채소를 떠나 야채라 불렀나 생각해 보니, 내 추측이지만, 시중에 ‘00야채’라는 상표를 단 음료가 시판되고 이 광고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이 야채에 세뇌되어 그리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비록 상품을 광고하기 위하여 만든 아주 짧은 15초 작품이지만 광고카피에 따라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예상치 못한 파장을 안겨주기도 한다. 광고도 작품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도 광고 경연을 하는 권위 있는 대회가 영화제처럼 여럿 존재한다. 그러니 광고카피를 창작하는 사람도 문학인들처럼 작가로 불리 울만 하다. 비록 상품을 알리기 위한 상업적 문구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 따라 짧은 몇 마디가 오랜 세월 동안 긴 여운을 남기며 상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15초가 15년 동안 기억되는 시간적 부가가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간단명료하면서도 그러나 순간을 타격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찾아내는 카피작가들의 능력은 어쩌면 위대하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요새 TV에 나오는 몇몇 광고를 보면 작가가 고심하여 우리말 속에서 찾아내는 기발한 문장이나 단어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통상적인 우리말을 외국어로 바꾸는 것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을 대신하는 아주 손쉬운 능력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카피가 부정적으로 다가와 역으로 그 상품을 기억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품에 대한 기억력은 심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광고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상품에 대한 신뢰도도 낮출 수 있는 결과를 초해하기도 한다. 물론 광고도 영화나 소설 같은 작품이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받아드리는 긍부정이 다 다르겠지만.
자동차 운전을 하며 “볼드하게 달린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볼드라는 단어는 외래어로도 쓰이지 않는 말이다. “멈추지 말고 런하라”하는 것은 “멈추지 말고 달려라”하는 것 보다 충격이 강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대사를 하는 사람이 ‘R"발음을 "L"발음으로 ’런하라‘하는데는 달린다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여하는 것 보다는 멈추지 말고 공부하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팩트입니까” 보다는 “사실입니까”라고 묻는 게 더 인상적이 될 수 있다. 굳이 외국어를 쓰려면 대상 소비자들이 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니 단어 그대로 'F'발음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F발음에 대한 표기문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포맨‘ ’포우먼‘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문구인가. 요새 학생들도 ’Woman'을 ‘우먼’ 이라 발음하지는 않는다. “여자들은 우~~물려 다녀서 우먼이다.” 라고 우스갯소리를 들려주시던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보험광고에서 학생들과 학문적 이야기를 나누는 교실의 칠판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있다. 이름이 "Education"에서 따 왔는지 선생님이 모두 권하는 것처럼 광고한다. 그런데 진정 아이들의 교육적 안전과 선생님을 생각하는 보험광고라면 아무리 교통사고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학생들과 선생님이 공부하는 교실의 칠판을 밀고 들어오는 설정을 하였을까?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광고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설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고나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광고에서 상품이 아니라 광고 자체와 그 카피에 대하여 생각하고 평가를 해보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각종 광고가 우리 아이들을 비롯하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좋은 광고를 심사하여 상을 주는 제도도 좋지만 아주 나쁜 광고를 골라 ‘나쁜상’을 주는 소비자 단체도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