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풍선소리와 모세의 기적

korman 2019. 7. 16. 13:19



풍선소리와 모세의 기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풍선을 터트리는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비쳐졌다. 한 사람이 터트리더니 여러 사람이 되고 여러 사람은 곧 무리를 이루며 그 중심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국종교수’가 있었다. 시차를 두고 하나 둘씩 터지는 풍선의 소리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듣는 그 소리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차를 좁혀가며 연속적으로 터트리는 소리는 모이고모여 커다란 기계음 같은 것으로 전개되었다. 그 소리는 닥터헬기의 소리와 유사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런 설명을 듣고 생각하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위로 가끔씩 지나가는 헬기소리와 유사하게 들렸다.


몇 년 전, 지난번 살던 곳과 같은 동네이기는 하지만 몇 블록 떨어진 이곳으로 이사 왔더니만 큰길 건너편에 의대 부속병원이 있어 그런지 앰뷸런스를 비롯하여 헬리콥터까지 심한 날은 몇 차례씩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지나간다. 건물 근처가 비록 이면도로이기는 해도 병원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또한 건물 위쪽이 닥터헬기가 지나는 항로인지 응급차의 사이렌소리와 요란한 헬기소리는 늘 상존하곤 한다. 낮에는 느낌이 좀 덜하지만 다른 소음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들리는 이들의 소리는 수행이 덜된 나에게 좀 짜증 섞인 한 마디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그 소리는 사회를 지탱시켜주는 생명의 소리인 것을.


지난 주말 동서로 난 간선도로를 동쪽으로 달리다 사거리 정지신호에 멈춰 섰다. 내 신호가 바뀌었으니 물론 남북으로 길이 트이고 양방향 차들이 분주히 오갔다. 순간 동에서 서쪽으로 119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사거리로 접근하였다. 사이렌 소리에 난 그냥 상식적인 생각으로 아무리 자기신호라도 남북으로 달리던 차들이 정지하고 구급차에게 길을 터주겠지 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차량들은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니면 구급차가 사거리에 진입하기 전에 그곳을 벗어나려 하였음인지 모두 속도를 더 내고 있었다. 구급차가 아무리 사이렌을 울리고 스피커를 통하여 애원을 하고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려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이제 신호가 바뀔 때가 되었는데 하고 생각할 무렵 북쪽으로 달리던 소형차가 멈춰 섰다. 그제야 구급차는 서쪽으로 차로 두 개를 건널 수 있었으나 그것도 거기까지 뿐, 남쪽으로 달리는 차들이 멈추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었다, 그저 신호 바뀌기를 기다릴 수밖에. 멈추지 않는 차량들은 신호가 바뀌고 나서야 응급차에게 길을 내 주었고 응급차는 원망하는 경적소리만 남긴 채 서쪽으로 출발하였다. 그 한심한 장면은 운전하는 내내 계속 내 뇌 속 스크린에 비쳐지고 있었다.


요새 닥터헬기 소리가 시끄러우니 다니지 못하게 해 달라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서두에 언급한 풍선 터트리는 공익광고는 그래서 제작 방송되는 것이었다. 일종의 국민계몽광고인 셈이다. 지금이 어는 시대인데 내가 학교 다닐 때나 하던 70년대식 계몽을 하여야 할까? 당시에도 농촌계몽이라 하여 시작하기는 하였으되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계몽은 봉사로 바뀌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2019년에 닥터헬기소리에 대한 계몽을 받아야 한다니 무슨 말로 이 한심한 현상을 표현하여야 할까? 하루 종일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나 공군기지의 비행장도 아니고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 번씩 소음을 발생시키는 응급헬기를 다니지 못하게 해 달라니 지금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문명국가의 국민들인지 참 의심스럽다. 그런 그 분들에게 응급사태가 발생하면 무슨 방법으로 어디로 가실까?


TV뉴스를 보다보면 가끔 ‘모세의 기적’이라는 모습이 비쳐진다. 응급차에게 갈을 터주기 위하여 자동차들이 옆으로 비켜주는 모습을 그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그런 장면에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적’이라고 표현되는 그 모습에서 현실적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도 이런 당연한 모습에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삼십오십클럽’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국민소득 삼만 달러 인구 오천만이면 선진국이 된다는 일종의 선진국을 정의하는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환율변동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곧 이 대열에 합류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만 가지고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우리보다 선진화 된 나라들에서는 당연이 이루어지는 일이 기적으로 표현되는 나라가 과연 그 가이드라인을 넘었다 하여 선진국이 되는 것일까?


내가 본 닥터헬기관련 계몽프로와 응급차 모르쇠 모습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선진국 소리 듣기에 앞서 후진국형 졸부소리 안 들으면 다행이다 싶은 부정적인 생각을 앞서게 하였다.


2019년 7월 15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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