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일본속 우리나라 종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조선범종 운흥사종

korman 2022. 5. 8. 17:27

네즈 미술관(일본어: 根津美術館)은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에 있는 사립 미술관이다. 이곳에는 어떤 경로로 반출된지 모르는 (일본측에서 밝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종이 있다. 이 종은 원래 원래 신라 문무왕 16년 (676녀)에 의상대사에 의하여 창건된 곳으로 알려진 고성의 운흥사에 있던 것이다.

 

운흥사 범종

운흥사 범종의 특징


운흥사 범종은 조선 숙종 16년인 1690년에 조성된 범종으로서 지금은 일 본 동경시내에 위치한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鍾口가 벌어져 사다리꼴을 이루는 몸체에 雙龍鈕를 한 전형적인 중국 종 양식을 따르고 있는 조선시대 범종으로, 종 정상부 天板에는 覆蓮帶가 마련 되어 있다. 종 어깨에는 上帶 대신 梵字(六子大明王眞言 ; 옴, 마, 니, 반, 메, 훔)가 들어 있는 圓圈紋이 주의로 빙 둘러져 있으며, 종 몸체 하단에는 蓮花唐草紋帶가 둘러지고 중간부분에는 네 곳에 각기 9개씩의 蓮蕾가 자리 한 蓮廓帶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연곽대 사이마다에는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합장한 채 서 있는 帝釋天·梵天 추정의 보살형 존상이 각 1구씩 배치 되어 있다. 4구의 존상은 원형 머리 광배와 佛衣式 法衣를 착용하고 연화좌를 밟고 있으며, 존상 옆의 위패 모양 명문구획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의 '主上殿下壽萬歲'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殿牌가 자리하였다.


연곽대와 보살형 존상 사이 아래쪽으로는 "강희이십구년경오오월일 고성현 서산령와룡산운흥사대종 중오백근 대종대시주 김호성 대시주 최□학 가선대 부경윤 시주 조성□ 대시주 □묵 겸대종대시주 이삼□ 대시주 노□□금 대 시주 이□찬 통정대부 김애립 김예발(康熙二十九年庚午五月日 固城縣西山領 臥龍山雲興寺大鐘 重五百斤 大鐘大施主 金好成 大施主 崔□鶴 嘉善大夫敬允 施主 趙成□ 大施主 □黙 兼大鐘大施主 李三□ 大施主 盧□□金 大施主 李 □賛 通政大夫 金愛立 金發)이라는 긴 내용의 명문이 선각되어 있다.


명문 끝부분의'통정대부 김애립(通政大夫 金愛立)과 김예발(金禮發)'은 운흥사 범종을 주성한 장인이다. 이 가운데 특히'김애립'은 '김용암(金龍 岩)' '김상립(金尙立)'과 더불어 당대를 대표하는 사장계(私匠系) 주종장 으로서,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여수 흥국사 범종(1665년, 보물 제1556호)과 고흥 능가사 범종(1698년, 보물 제1557호)은 '김애립'이 주성한 대표적인 유물이다.


거의 손상 없이 전해오는 1690년'김애립'주성의 네즈미술관 소장 고성 운흥사 범종 또한 범종의 형태 및 구성상의 특징과 천판의 복련대와 종 어 깨의 범자 원권문, 몸체의 연곽대와 돌기 형태의 연뢰, 보살형 인물상과 위 패형 명문구획, 하대 문양대 등이 완벽하여 국가문화재급으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운흥사 범종의 반출 경위


일본은 1915년 조선총독부 간행의『조선고적도보』1∼15책을 통해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1910년 강제 한일합병과 더불어 조사를 핑계로 전국에 걸친 우리 문화재를 파악하고 도굴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이후 1937년의 중 일전쟁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1941-1945)이라는 전쟁의 확산과 함께 전 쟁물자 확보를 위해 공출제도를 실시하였고, 전쟁에 직접 필요한 무기 제작 을 목적으로 금속기의 강제 공출이 시작되었다.


농촌에서 사용하는 농기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사용하 는 집기와 더불어 종이나, 사찰의 의식구 및 범종까지도 징발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조사 및 징발령과 함께 운흥사 범종 또한 공출되기에 이르 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범종의 빼어난 자태로 말미암은 예술적 가치 및 봉안사찰 및 주종 내력을 알 수 있는 명문이 확실하게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를 알아채고 일본으로 밀반출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편으로는 조선총독부가 후원하고 일본 귀족들과 미술 단체가 주관하 여 1934년부터 1941년에 이르기까지 8년 동안에 걸쳐 오사카와 도쿄 등에 서 조선 문화재의 장터를 가장한‘조선공예전람회’를 일곱 차례 열어, 한 차례 당 1,500~3,500점의 우리 문화재가 거래됨으로써 계획적이고도 조직적인 조선 문화재의 반출이 짐작된다.


『조선고적도보』전 책과 1940년 동국대학교도서관 측에서 조사 하여 手記로 기록해 놓은『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1∼26권 전 권을 살펴보았으나 운흥사 및 범종에 대한 내용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위 두 자료에 규모가 컸었던 운흥사에 대한 기록 및 범종 내용이 보이지 않 는다는 것은 어쩌면『조선고적도보』간행 이전, 또는『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기록 이전에 이미 반출되었을 것으로도 판단해 볼 수 있겠다.


한편 네즈 가이치로가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1910년 이후 1915년에 이르기까지 조사를 마친 뒤 철도 부설과 함께 이즈음 반출하였을 것이라는 짐작 또한 가능할 것이다.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과 운흥사 범종


네즈미술관은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미술관으로서 도부 철도 등 토부 그룹의 창업자 네즈 가이치로(초대)가 수집한 일본과 동양의 고미술품 컬렉션 을 보유·전시하고 있다. 네즈 가이치로의 뜻에 따라 2대 네즈가 1940년에 재단 을 창립하여 이듬해 네즈 저택에 미술관을 열었으나, 1945년의 도쿄대공습으로 인한 화재로 전시실과 다실 등을 포함 저택은 소실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장 품은 피난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종전 이듬해에 전시관을 다시 개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미술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네즈 가이치로는‘철도 왕’으로 남조선철도의 이사로 취임한 바 있으며,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하였다.‘남조선철도’라는 명칭의 노선은 광주-여수 간 75마일, 순천-영산포 간 86마일 등 모두 160마일로 전라도 및 경상도의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반출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바다와 가깝고 여수, 순천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운흥사야 말로 규 모가 크고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찰로서 약탈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며, 공출령을 빙자한 범종의 일본 반출 역시 네즈 가이치로의 ‘남조선철도’를 통해 밀반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발췌 : 고산문화재단 학술연구 발표

일시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오후 3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19층 국화실

http://www.kosancf.or.kr/html/academic_6.html

 

네즈미술관 전경-위키백과
네즈미술관 전경 - 고산문화재단 발췌
네즈미술관 지하1층 계단구석에 설치된 운흥사 범종

◦  조선 숙종 16년(1690년) 조성
◦  종구가 벌어진 사다리꼴 몸체
◦  쌍용뉴를 한 전형적인 중국종 양식 범종
◦  종 어깨에 범자〔梵字 ; 六子大明王眞言 (옴, 마, 니, 반, 메, 훔)〕
◦  종 몸체 하단에는 연화당초문대(蓮花唐草紋帶) 중간 부분 네 곳에
    각기 9개씩의 연뢰(蓮蕾)가 자리
◦  연곽대 사이에는 제석천(帝釋天) · 범천(梵天) 추정의 보살형 존상이 배치
    4구의 존상은 원형 머리 광배와 불의식 (佛衣式) 법의(法衣)를 착용하고
    연화좌를 밟고 있음)
◦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전패

 

흥사 범종의 특징 : 운흥사 범종 몸체 명문 부분

반출 경위


1. 일본은 1937년의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1941-1945)이라는 전쟁의 확산과 함께 일본은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식량 배급은 물론 공출제도를 실시 농촌의 농기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교회 사용의 집기와 더불어 종 이나 사찰의 의식구 및 범종까지도 징발
아마도 이러한 징발령과 함께 운흥사 범종 또한 공출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나 범종의 빼어난 자태로 말미암은 예술적 가치 및 봉안사찰 및 주종 내력을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를 알아채고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 사료됨.

2. 조선총독부가 후원하고 일본 귀족들 미술 단체가 주관하여 1934년부터 1941년 까지 8년 동안 오사카와 도쿄 등에서 7차례 열린 조선 문화재 장터인‘조선공예 전람회’를 열어, 한 차례 당 1,500~3,500점의 우리 문화재가 거래된 사실을 비추어볼 때 계획적이고도 조직적인 문화재의 반출이 짐작됨.

3. 미술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네즈 가이치로는 “철도왕”으로 남조선철도의 이사로 취임한 바 있으며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하였다. ‘남조선철도’라는 명칭의 노선은 광주-여수 간 75마일, 순 천-영산포 간 86마일 등 모두 160마일로 전라도 및 경상도의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반출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으 리라 짐작된다.

바다와 가깝고 여수, 순천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운흥사야 말로 규모가 크고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찰로서 약탈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며, 공출령을 빙자한 범종의 일본 반출 역시 네즈 가이치로의 ‘남조선철도’를 통해 밀반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및 발췌

고산문화재단 학술연구 -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운흥사종 반출경위 조사

사업기간 2017년 4월 - 2017년 11월

http://www.kosancf.or.kr/html/academic_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