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포구기행

korman 2022. 8. 10. 19:49

 

220801-220809
포구기행 - 곽재구 - 열림원

뜨거운 8월에 알맞은 책인 것 같아  8월이 시작되는 날 첫 장을 넘겼다.  8월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딘가로 떠나는 계절로 인식되어있다. 거의 모든 직장에서 이 시기에 휴가를 주기 때문이다. 좀 한가한 데로 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자 한다면 이 책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포구(浦口)라는 이름은 매우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런 이름을 가진 갯가에는 TV에 나오듯 그저 작은 배에 올라 앉아 오순도순 살아가는 나이든 어부부(漁夫婦)가 그려진다. 이곳에는 큰 바람도 일지 않고 큰 파도도 밀려오지 않을 것 같으며 또한 생각의 어지러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대의 안식을 제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평소에 포구는 그저 간편하게 작은 배낭하나 등에 업고 여정 없이 떠나 다니다 이정표에 나오는 방향을 따라 찾아가는 곳처럼 느껴졌는데 이 책에 나오는 포구마다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다닌 것 같다. 물론 글을 읽는 동안 작가의 포구기행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100% 그런 떠돌이 여행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작가는 글을 써야하고 또 이 책을 쓰겠다고 의도하고 찾아다닌 포구라면 어느 정도의 정해진 계획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에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때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때로는 작가의 자동차로 직접 찾아간 포구이기는 해도 모든 여정에 어색한 과장이 없어서였을까?

책을 집어 들고는 다른 책에 비하여 좀 두껍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8월에 가장 시원한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속살에 배인 더위까지도 잊어보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는데 두꺼운 것은 그냥 허울이었다. 책의 모양새를 포구에 맞추기 위해서 그랬는지 종이의 질이 포구의 느낌과 흡사하다. 상당히 아날로그적이라고나 해야 할까? 매 장(章)마다 중간 중간에는 양쪽 페이지를 이용한 가로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이 사진들은 포구를 나타내는 작은 배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칼라사진이기는 해도 종이 질감 때문에 단색사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포구의 이미지와는 참 잘 어울린다. 다만 내 생각에 책에서 내용 없이 그냥 버려진 종이가 20여 쪽은 되는 듯하고 새장(章)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글의 시작이 쪽 상단이 아니라 하단에 몇 줄 걸쳐있으니 그 또한 책을 두껍게 느끼게 하는 한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책은 올해 들어 읽은 14번째 책이다. 물론 책 내용의 장르에 따라 느낌도 다 다른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책들 중에서 이 책은 읽는데 가장 편안한 책이었다. 이 책은 초판이 나온 지 20년이 되었다. 그러니 물론 구매도 20여 년 전에 한 것이다. 그 때 한 번 읽고 책장에 놔 두었던 것이고. 종이의 질감이야 포구를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꾸밈이라 하여도 책의 냄새는 잉크냄새가 다 빠져버린 묵은 종이냄새만 난다. 책의 내용 또한 20년 전의 조그마한 포구에서 벗어나질 않았으니 가히 완전 100% 아날로그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동차를 몰아도 지도와 이정표만 있을 뿐 내비게이터라는 여인을 동반할 수가 없었으니 군더더기 표현이 있을 수가 없다.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은 작가의 순수한 서정적 표현만이 존재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온 포구 중에는 내가 다녀온 곳도 몇 군데 있다. 20여 년 전에 작가는 배를 타고 들어가 만나본 작은 섬의 포구였지만 나는 다리를 건넜던 곳도 있다. 또한 나는 내비게이터라는 디지털에 많이 의존한 반면 작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아날로그 스토리를 만들고 자동차를 운전하여도 종이지도와 이정표에 의존하며 때로는 촌로들과의 정감어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같은 곳을 여행하였어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관찰력과 대화력과 표현력에서 평인을 압도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 또한 어디를 다녀오면 뭔가 기록을 남기기는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그가 관찰하였던 모든 것들을 간과하고 무엇을 보며 다녔는지 또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기는 하였으되 이처럼 서정적인 표현을 못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작가처럼 그게 되면 나도 작가를 하지.

포구(浦口)와 항구(港口)가 어찌 다른지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았다. 사전의 표현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같았다. 포구는 그저 간단히 배가 드나드는 입구라고 했지만 항구는 포구에 많은 기계적 시설을 설치한 곳임을 알려주었다. 포구에 비하여 긴 설명이 붙었다. 어촌(漁村)이나 어항(漁港)이라는 말도 있다. 이 또한 어촌은 포구에 가깝고 어항은 항구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아무튼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곳이 필요하다면 난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한가한 포구, 그 어촌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이 한권의 ‘포구기행’을 길동무 삼아.

2022년 8월 1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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