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산중일기

korman 2022. 8. 21. 18:28

220813-220821

산중일기-최인호-랜덤하우스코리아

 

책을 다 읽는데 9일이 결렸다. 매년 그랬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여름 장마 가 끝났다고 한 후에 큰 비가 내렸었 다. 올해도 그 행사는 비켜가지 않았다. 천둥과 번개가 바로 내 옆에 떨어지는 것 같이 하늘이 그렇게 요란하게 난리 를 피우는 것도 70이 넘어 살면서 별 로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쏟아 지는 비 때문에, 좀 과장해서, 창밖이 보이지 않은 것도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완전히 레인커튼(Rain Curtain)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었다. 그 우중에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그려낸 산중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인호라는 작가는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문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분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나에게는 소설가의 이미지가 더 강한 분이지만 그런 분이 써내려간 ‘산중일기’는 어떤 내용을 닮고 있을까 궁금한 면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기 위해 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산사를 찾는다. 아마 어떤 일에도 방해받지 않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산중일기의 대부분은 산사에서의 일과 스님들과의 인연 그리고 고승들의 가르침을 통한 작가의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일기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작가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다. 그러나 이 책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제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의 품위를 유지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사진을 찍히는 것 보다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멋진 총천연색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대부분 책의 내용과 어울리는 산과 산사의 풍경을 담은 전문 사진작가의 작품들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데 더하여 사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 나도 그런 사진들과 유사한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그게 책속에 나오는 사진들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카메라의 조리개나 셔터 등의 수치를 조절하여 같은 장소에서도 여러 형태의 사진을 찍는 것은 전문가적 기술일 테지만 화면에 보이는 구도를 잡는 것은 일반적인 감각에 속할 텐데 난 그런 재주도 없나 생각되어져 사진을 쳐다보는 데 긴 시간을 뺏기기도 하였다.

 

작가의 종교는 천주교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많은 시간들을 산사에서 보냈고 글을 쓰거나 건강을 위하여 산사를 많이 찾았다. 그리고 해박한 불교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의 종교적 지식이라기보다는 고승들의 인생에 대한 주된 가르침이었다. 그러니 종교적으로 편향된 이야기를 기술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지 않았다. 단지 어떤 글에서 누구라도 알고 있으면 인용하는 일반적인 가르침들뿐이었다. 예전에 어떤 여름날 나는 팔공산의 조그마한 암자 툇마루에 걸터앉아 스님이 따라주는 차 한 잔을 받아 마신 적이 있다. 이때 열어놓은 방문으로 들여다본 스님의 방 한 켠 작은 책꽂이에 꽂아놓은 성경책(천주교용)을 보고 “스님도 성경을 읽으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신부와 중은 옷만 다르다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전 미국인 친구 하나가 나에게 종교가 있냐고 물어 네가 믿는 그런 종교는 없지만 나는 내 조상을 믿으며 매년 풍습대로 예를 갖춘다고 하였더니 “그럼 그게 네 종교 아니냐?”라고 하였다. 스님과 그의 말에 일치가 있는 듯 하였다.

 

난 어디론가 여행을 계획하면 그 여정에 한 번쯤은 산사에 들르는 걸 꼭 넣는다. 내가 절에 간다고 그곳에서 절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산사에 들르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계절과 장소에 따라 산사가 유흥지처럼 북적댈 때도 있다. 그 모습을 한 눈에 담고 내가 주로 찾아가는 곳은 대웅전 뒤쪽 처마 모서리 풍경이 매달려 있는 곳 아래 반듯한 주춧돌 같은 곳이다. 사람들이 많다 하여도 그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아 시끄럽지 않고 한동안 주저앉아 있으면 풍경 울리는 소리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그 소리에 그냥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산사에 가면 그 처마 끝의 풍경을 즐겨 찍곤 한다. 이 책에도 작가가 찍은 풍경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산사와 풍경과 산의 모양새 어우러짐이 내 사진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나 내가 사진작가가 안 될 바에야 내 사진을 안타깝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게 풍경소리니까.

 

작가는 책 말미에 “지난 삶의 마당에 한 잔의 찻잔이 놓여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얼마 남지 않은 찻물이 햇살에 반짝이며 한 점의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라고 썼다. 책장을 덮으며 난 머그잔에 커피를 다시 채우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삶도 그의 찻잔처럼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커피잔을 채우며 다시 한 권의 책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2022년 8월 2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imGaOIm5HOk 링크

Yiruma, (이루마) - Kiss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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