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보자기

korman 2022. 8. 20. 19:29

보자기

 

추석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추석은 여름이 물러가기도 전인 9월 초에 버티고 있어 더운 추석이 될 것 같다. 추석이 되면 다양한 선물 보따리들의 오고감이 많아진다. 선물을 이야기할 때면 늘 그에 따르는 과대포장이 도마 위에 오른다. 도마라는 것은 주방에서 뭔가를 칼로 자를 때 받쳐 쓰는 주요 주방기구 중에 하나이다. 주방의 도마 위에 오른 모든 것은 반드시 잘려지거나 다져진다. 그런데 이 선물포장이라는 것은 매년 ‘도마 위에 오른다’고 하면서도 잘려지거나 깎여지지 않는다. 선물세트라는 것의 포장은 매년 모양도 거기서 거기다. 아마 내용물보다는 겉모양을 중요시하는 허울주의가 빚어내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새 포장은 보기도 좋고 강하고 들고 다니기 편리하고 용도에 따라 크기와 모양도 다앙한 쇼핑백들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종류에 따라서는 가정에서 장바구니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버려지는 듯하다. 요새는 마트에서 나눠주는 것들도 많으니 구태여 선물포장까지 장바구니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 최종 포장에 우리의 재래식 보자기도 한 몫을 한다. 일반 쇼핑백들이야 장비를 갖춘 전문업체들이 아니면 재활용이 어려운 일이지만 요새 보자기는 색상도 다양하고 품질도 좋아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신 분들은 여러 가지 필요한 용도로 깜짝 변신을 시키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그 보자기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새야 이런 종류 저런 종류의 가방도 많고 쇼핑백도 다양하고 손수레 같은 것도 있어 용도에 따라 물건을 담아 운반할 수 있는 기구들이 많이 있지만 물자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손수건만한 것에서부터 이불을 싸는 큰 것까지 그저 크고 작은 보자기가 운반 수단의 대세였다. 지금도 예전 영상물을 보면 여인네들이 머리에 이고 허리에 찬 모든 것들의 운반수단이 기본적으로 보자기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보자기가 지금의 책가방을 대신하였다.

 

내집에는 지금도 보자기가 많이 있다. 명절 때가 되면 자식들이나 조카들이 손에 들고 오는 게 대부분 과일이고 그 과일상자들은 모두 보자기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겉 포장물과는 달리 보자기는 착착 접어 보관하기도 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사람의 생각에는 쓸데는 없지만 보자기는 버리기가 아깝다고 생각하여 모아두는 모양이었다. 아마 나이가 든 보자기 세대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기야 나도 보자기 버리는 데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나 뿐만이 아니라 나이롱(나일론)보자기에 대한 추억이 많은 사람들은 이 보자기를 버리는 데는 얼른 마음이 내키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컴퓨터에 연결된 프린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잉크까지 보충을 하였는데 잉크와 종이가 그려진 단추가 빨간불로 계속 깜빡거리며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프린터의 점검이 요구되니 서비스센터에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떴다. 집에서 그 회사의 서비스센터는 괘 먼 거리에 있다. 우선 전화를 하였더니 잉크패드를 교환하라고 뜬다고 했다. 뜬다고? 그럼 전화 받는 사람이 내 프린터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뜻 아닌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제품을 등록할 때 내 전화전호를 입력한 게 온라인으로 확인이 되는 모양이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생각하며 빨리 고치려면 프린터를 가지고 그 곳으로 가야 하는데 자동차에 싣고 내리고 이동하면서 운반에 손을 편하게 할 마땅한 포장재가 생각나지 않았다.

 

알맞은 박스도 없고 끈으로 직접 묶을 수도 없고 잉크가 있으니 똑바로 운반해야 하는데 크기가 마땅한 쇼핑백도 없으니 난감하였다. 비도 조금씩 내리는데 주차하고 한 손에 우산 들고 다른 손엔 프린터를 들어야 하니 끈으로 직접 묶는 게 좋을 듯 하여 집에 있는 끈을 찾아놓고 보니 그건들 뭐 알맞을까. 그 때 생각난 게 보자기였다. 과일상자를 쌌던 보자기면 프린터 크기에 딱 맞을 것 같아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색깔별로 마음에 맞는 걸 고르라며 여러 개를 가져왔다. 내 어머니는 생전에 이런 딱 알맞은 경우를 지방 사투리로 ‘알집’이라고 하셨다. 아마도 속의 알을 보호하고 있는 딱 맞는 껍데기라는 의미로 생각되어지는데 그야말로 프린터를 편하게 똑바로 운반할 수 있는 데 알집이었다. 이래서 우리의 보자기는 아직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또다시 보자기의 편리함을 알았으니 보자기를 버리는 데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마음은 오래갈 것 같다.

 

2022년 8월 2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PuqivdUOnBw 링크

Le Premier Pas,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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