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에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새로운 해, 2022년이 시작된다고 각 방송사마다 추위를 잊은 채 카메라와 마이크를 길거리로 가지고 나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묻던 순간이 언제 있었느냐하고 계절은 어느새 여름을 넘어 가을의 담장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는 8월 초순에 지나갔지만 사실 그 절기는 여름의 한복판에 있었다. 한자표현대로라면 가을로 들어서는 게 아니라 이미 들어섰다라고 해석해야 옳을 것 같다. 입추에서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 한다고 하는데 근자에는 10월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기온이 높을 때도 있으니 계절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고쳐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8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오면서 비가 많이 내렸다. 기상청에서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한 후에 많은 비가 내린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특히 많은 비가 내리고 하늘도 천둥 번개를 움직이느라 참 요란도 하였다. 요즈음도 가끔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 때는 이벤트성으로 기후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지역에 따라 내려도 너무 내렸다. 예전에는 입추가 지나 5일 이상 비가 계속 내리면 농사에 많은 지장이 있다고 하여 비를 멈추게 해 달라는 ‘기청제(祈晴祭)’라는 걸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이 좁은 땅에도 한쪽에서는 물난리가 나고 있을 때 다른 지방에서는 가뭄이 계속되어 농사에 많은 지장이 있다는 소식을 동시에 접하고 있었으니 기청제와 기후제가 같이 필요한 경우 하늘은 어떤 판단을 할까 조선시대에 어울리는 생각도 해본다.
가을 초입에 비가 내린 후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내가 사는 곳에는 어제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면 기온이 올라간다는 발표가 있긴 하였지만 이제 다시 여름을 느끼기에는 더위가 부족해 보인다. 처서가 지나면 식물의 성장이 멈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실의 자그마한 화분에서 가지마다 새잎을 내어 키우려 햇빛을 쫓아다니던 작은 나무가 움직임을 멈춘듯하다. 또한 “처서가 지나면 밤에 창문을 닫고 자야 된다”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반바지가 썰렁한 아침을 맞고 있다. 아마 나이가 있으니 젊은 사람들 보다 썰렁함을 일찍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예년보다 추석이 많이 이르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적인 요인으로 연일 물가가 오른다는 뉴스를 대하고 있는데, 나야 잘 모르지만, 동네 재래시장을 수시로 왕래하는 집사람은 물가가 매일 달라진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어쩌다 대형 마트에 집사람과 동행을 하게 되어도 이전 가격이 얼마였는지 모르는 나는 느끼는 게 별로 없지만 집사람은 입구서부터 첫마디가 “이거 또 올랐네”하고는 물건을 산다기보다는 둘러보기가 앞선다. 얼마 차리지도 않는데 늘 손주들까지 모여 명절을 보내고 있으니 추석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오는 모양이다. 하기야 제사상까지 차려야 하는 사람들의 물가에 대한 걱정은 매일 뉴스에 나오고 있으니 이번 추석은 풍성하다기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분들이 많을 듯싶다. 넘쳐나는 비로, 물 없는 가뭄으로 작황이 제대로 되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다는데 그 분들 보다는 덜하겠지만.
무더위가 지속되던 아침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예년과 다르게 까마귀 짖는 소리가 연일 아침잠을 깨웠다. 그래서 그런지 매미소리도 오래 들리지 않았고 지금은 사라졌다. 지금쯤 떼를 지어 내 창문가를 오르락내리락 하여야 하는 고추잠자리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비 그친 뒤 청명한 가을 하늘색과 하늘 끝자락에 매달린 뭉게구름이 낮아진 기온과 어우러져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한다.
2022년 8월 31일
하늘빛
음악 : https://www.youtube.com/watch?v=hE52brsBgxk 링크
G.F.Händel- LARGO - Ombra mai fu from Opera Xerxes, HWV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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