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비 오던 날 닭 한 마리 때문에

korman 2022. 9. 14. 11:07

비 오던 날 닭 한 마리 때문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저녁 무렵 집 앞 어린이 놀이터 부근에 비를 흠뻑 맞고 배회하는 닭 한 마리가 있었다. 비 맞은 닭을 본 것도 처음이지만 도무지 도시의 동네 한 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닭이 어디서 왔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닭은 배가 고팠는지 연신 아스팔트위에서 무언가를 찾고 부리로 쪼아대고 있었다. 측은한 생각에 길 위에 쌀을 조금 뿌려줘 보았다. 그런데 이 닭은 쌀알은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쌀알도 안 먹는 닭이 있다니 ‘배가 덜 코픈 모양이다’라고 생각하였다. 

보슬비는 계속 내리고 길거리와 공터를 계속 헤매는 닭은 점점 초라해져갔다. 이 모습을 같이 바라보던 동생이 닭의 사진을 찍더니만 길 잃은 닭 같으니 비가 그칠 때 까지만 집안에 들여놓자고 하였다. 사람의 손에 키워진 닭이라 그런지 곁으로 다가가 붙잡아도 별로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순순히 몸을 맡겼다. 집으로 들이기는 했는데 어디 마땅한 장소가 없어 잠시 지하에 두었다. 거기에서도 역시 쌀알은 먹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맛있는 모이를 먹고 자랐는데 이 비싼 쌀알도 마다할까 생각하면서 배추 이파리를 줘 보았다. 그랬더니만 배추는 잘 쪼아 먹었다. 닭도 요새 배추 비싼 거는 아는 모양이지 하고 동생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사진과 함게 “길 잃은 닭 보호하고 있으니 잃어버리신 분은 연락하라”는 문구를 SNS에 올렸다. 시간이 지나자 닭에게서는 좀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배춧잎도 먹지 않았다. 밀폐된 지하실 환경이라 그런 것 같아 집 옆 다른 집 담장과의 좁은 틈에 박스를 뜯어 가림막을 하고 거기에 넣어 주었더니 좀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먹이는 먹지 않았다.       

다음날, 경찰이 사진 한 장을 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탐문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집 저집 여기저기 물어보며 다니다 내 집까지 왔다. 사진 속 인물을 보여주며 “혹 이사람 보셨거나 아십니까?” 라고 물어왔다. 그런데 그 속에는 닭을 붙들고 있는 동생과 나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전데요”라는 대답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주위 CCTV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라며 경찰이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제시하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까지 울렁거렸다. 순간 ‘이거 큰일 난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경찰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려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경찰관은 닭을 확인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곧 나이 지긋한 남자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리고 닭을 보고는 갑자기 “아들아~~”하고 외쳤다. 동시에 닭은 태풍을 맞이하는 듯  활개를 치며 그 남자를 반겼다. 그 순간에 벌어진 닭 주인과 닭과의 상봉모습은 동영상을 찍었어도 슬로우비디오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장면이었으며 내 말 실력으로는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경찰이 제시한 사진속의 내 모습을 보고 두려웠던 마음은 그 상봉 모습에 묻혀 버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게 순간적인 고역이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 아빠를 자칭하는 견모(犬母), 견부(犬父)는 수시로 보았지만 닭의 아빠를 자처하는 계부(鷄父)는 처음 보았으며 닭과의 그런 상봉은 상상하기도 힘든 모습이었다.

닭은 주인에게 돌아갔고 이제 다 끝난 일인가 하였더니 경찰은 잔무처리를 위하여 파출소까지 동행을 요구하였다. 물론 닭 주인은 자신이 닭 때문에 파출소에 신고한 사항을 취소하였다. 그렇게 양자가 상호 이해를 하고 파출소를 나오려는데 경찰은 나에게 “검찰에서 출석요구가 오면 검찰에 가셔야 합니다.”라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아니 닭 잘 보관하였다가 주인 찾아주고 닭 주인도 신고한 걸 취소하였는데 내가 왜 검찰에 가요?”
“ 아 그게 닭 주인이 신고한 게 ‘분실신고’가 아니고 ‘닭 도난신고’를 하였기 때문에 절차상 검찰이 개입하게 되었고 닭 주인이 신고사항을 철회 하였어도 최종적인 것은 검찰에 가셔서 소명을 하여야 끝이 납니다.”

참 좋은 일 하려다 기막힌 일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검사와 마주 앉았다. 검사는 닭을 훔칠 마음이 없었다는 걸 소명하라고 하였다. 이거야 말로 가슴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어찌 그 마음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못하면 꼼짝 없이 검사의 조치 사항을 받아들여야 하게 생겼다. 한편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는 그 법이라는 게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닭 주인과 좋게 인사까지 나누고 그 계부는 휘파람을 불며 유유자적하는데 닭을 찾아준 나는 지금 검찰에 불려와 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이 위기를 어찌 탈출하여야 하나 고민하던 찰라 동생이 닭 찾아가라는 사진과 메시지를 SNS에 올린 것이 순간적으로 생각났다.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본 검사는 혐의가 사라졌으니 집에 가라 하였다.

“동생이 SNS에 올렸던 그 한 컷이 나를 집에 올수 있게 하였고 만일 그게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이 코미디 같은 현실적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같이 웃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며 문득 생각난 게 ‘닭을 잡고 있었던 건 동생인데 왜 내가 범인으로 몰려 이렇게 불려 다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였던 모든 일행은 “하여간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덕담을 하며 모두들 “닭이 제발로 나간 것일 수도 있는데 분실이 아닌 도난신고를 한 주인도 문제지만 신고자가 신고를 철회하였는데 경찰이 아닌 검찰조사까지 받은 법의 현실이 이상하다”는 데 모두들 공감하면서 소주잔을 들어 그 분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데 대한 축하(?)를 하였다.

동네 모임을 같이하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구성하였다. 

2022년 9월 18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3AUsZwck0_c 링크

HAUSER - The God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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