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초가을 하늘은 청명한데

korman 2022. 10. 2. 21:16

초가을 하늘은 청명한데

 

컴퓨터가 놓인 자리에서 의자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면 하늘이 보인다. 가을하늘이다.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하늘빛에 하얀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걸쳐있다. 바람이라도 불면 구름 흘러가는 게 꼭 바다 위를 내가 배를 타고 지나는 듯 느껴진다. 가을 하늘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내가 구름과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착각되기 때문이다. 9월의 그 청명한 초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흰 구름 사이사이로 검은 구름이 자리한 듯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 짐을 느낀다. 9월에 들어서며 일어난 이웃들의 청명하지 못한 모습 때문이다.

 

어떤 여론조사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노인이라 불리는 나이가 어느 정도여야 적절하냐는 질문에 대한 평균이 74세였다고 한다. 이 숫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나와 집사람은 아직 노인 축에 들지 못하니 제쳐두더라도 지금 내가 실고 있는 건물에 80 중반을 넘었으나 노인만이 거주하는 두 댁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에 그 분들은 모두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다. 같은 건물에 거주하면서도 그 분들과 마주친다한들 대부분 인사도 잘 안 하고 다니니 노인들의 안부를 궁금히 여기는 이웃들은 없을 테지만 집 밖에서 만나면 늘 대화를 나누고 안부를 묻곤 하던 우리 부부는 노인들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전화를 드리곤 한다.

 

3층에 거주하시는 노인 댁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한 돌보미가 작년부터 매일 드나들었다. 6년 전 내가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강아지를 데리고 부부가 매일 산책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던 중 2년여 전 쯤부터 외출하시는 모습을 보기 어렵더니만 올해 추석 임박하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갑자기 할머니께서 혼자되셨으니 아마 무척 적적하시리라 생각된다. 병원에 오래 누워 계시던 내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좀 기일이 지난 후에 어머니께 허전하고 섭섭하시냐고 여쭈었더니 “그래 병원에 누워있어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낫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지금 혼자되신 할머니의 기분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할머니는 지금 당신 혼자 거동하는 데 불편이 없으신지 이제 더 이상 도우미는 오지 않는다. 요즈음은 할머니 홀로 개를 데리고 산책하신다. 이 초가을, 할머니의 산책하는 뒷모습이 청명한 가을하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5층에 사시는 노인 부부도 서로 의지하시며 매일 산책을 하신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두 분이 건물 현관문 앞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서 계시다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였다. 왜 안 들어가시냐고 물으니 현관문 비밀번호를 아무리 눌러도 문이 안 열린다는 것이었다. 매일 출입하던 현관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노인들이야 더욱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현관번호를 일깨워 드리고 승강기 번호를 눌러드렸다. 그리고 며칠 후 집에 들어서니 집사람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연유를 물으니 아래층 노인 부부 이야기였다. 시장 다녀오다 건물 현관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두 분을 만났다며 자신도 나중에 그리되면 어쩌나 지레짐작하니 눈물이 나더라며 그 분들께 현관 비밀번호를 크게 적어 목걸이라도 만들어 드리자고 하였다. 들릴 듯 말듯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을 독백하고 있었다.

 

5층에 사시는 분들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모라 불리는 분이 도우미로 온다. 주차장에서 그 분을 만나 두 노인분의 상태를 이야기 하고 자제분들과 연락이 되면 이런 일을 전달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분이 옆에 있던 여자 분을 소개하며 ‘며느님’이라 하였다. 난 최근에 있었던 그 노인 분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현관문번호 목걸이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는 “알겠습니다. 혹 무슨 일이 생기면 이리로 연락 부탁합니다.”라며 명함 한 장을 건네고 두 여자 분들은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이틀 후 오후시간 내집 초인종이 울렸다. 모니터에는 5층 할머니가 보였다. 문을 열어 드렸더니 큰일 났다고 하시며 당신 댁의 현관문이 안 열려 집 안으로 못 들어가겠다고 하시며 도움을 요청하셨다. 같이 그 댁에가 번호를 누르시라 한즉 번호만 누르고 마지막에 눌러야 하는 *표를 잊고 계시는 것이었다. 노인들을 들여보내 드리고 계단을 오르며 집사람의 눈물이 떠올랐다.

 

엊그제 1층 현관 밖에서 또 두 분을 만났다. 내가 먼저 얼른 문을 열어 드리고 어디 다녀오시냐고 말을 건넸더니 할머니 말씀이 할아버지가 외출을 하신 후 한참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아 전화를 하였더니 집을 못 찾겠으니 할머니께 당신 좀 데려가라고 하여 물어물어 길을 찾아 겨우 모시고 오는 길이라 하였다. 두 분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 한 후 집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열었다. 그리고 크게 현관문 명찰을 만들어 노인들께 전달하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 아들이 이렇게 적어줬다고 현관번호가 적힌 작은 쪽지를 내보이셨다. 그러시며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 글자가 너무 작아서 안보여.”

내가 봐도 안 보였다. 기왕 적어드리려면 좀 보이게 해 드리지 생각하면서 크게 프린트한 목걸이를 전달해 드렸더니 참 시원하게 잘 보인다고 좋아하였다. 전달해 드리기는 하였는데 두 분이 외출 시 ‘저 목걸이 챙기는 건 잊지 않으실지’ 하는 또 다른 기우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초가을 하늘은 청명한데 이웃 노인들의 모습에 내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해 보았다.

 

2022년 9월 25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KPY3Xn9xDV0 링크

어느 60대 노부부이야기 - 슬린 | 바이올린 커버 | Violin Cover - sll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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