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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유행어를 되뇌인다

korman 2023. 2. 26. 19:48

오랜 유행어를 되뇌인다

TV에 소개되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풍습을 보면 많은 나라에서 방문자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팔목이나 다른 신체부위에 하얀 실 같은 것을 감아주는 모습이 보인다. 또 어딘가 에서는 같은 목적으로 하얀 천이나 꽃송이로 장식된 목걸이를 걸어주기도 한다. 서양의 경우에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특히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마음으로 나무나 울타리 등에 노란 천으로 리본을 만들어 걸어 놓는다. 그들에게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라는 오래된 명곡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기가 새로 태어나면 아기의 무사 안녕을 위하여 ‘금줄’이라는 걸 대문 앞에 거는 풍습이 있다. 요즈음은 도시주택의 변화로 이런 풍습이 많이 살아졌고 시골에서도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금줄을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대신 서양처럼 노란리본이나 꽃다발을 사고를 당한 현장에 가져다 놓는 사람들은 많이 볼 수 있다. 지구촌에 있는 각 나라나 민족마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풍습은 일부 국가에는 종교적인 면도 있지만 종교와는 무관하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풍습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미신이 아니라 모두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진심된 따뜻한 마음이라 나는 생각한다.

동네 근처의 수인선 전철역을 지나치다 길가의 가로등 기둥에 수많은 한얀 실이 기둥의 상층부 전체를 뒤덮고 감겨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이 부근에 무슨 사고라도 생겨 앞서 거론한 목적으로 하얀 실들이 매어져있나 하는 순간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눈에 들어오는 주위의 거리 모습이 곧 그 원인을 짐작케 해 주었다. 전철역이 있는 그 거리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주요 요충지 중 한 군데로 꼽히는 곳이다. 따라서 그곳에는 늘 불법 광고물들이 많이 존재하고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수막 또한 무수히 매달려 있다. 합법 현수막은 구청의 허가를 받아 정해진 위치에 걸어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하니 거의 모두가 불법인 듯 보였고 그 현수막들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끊어내지 않은 줄들이 흡사 소원의 실처럼, 그러나 흉물스럽게 가로등 기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아직도 철거되지 않은, 아니 구청의 힘으로도 철거되지 못하고 있는 많은 현수막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불법의 바람잡이를 하고 있었다. 

요새 동네 주요도로 교차로나 아파트 진입도로 같은 요충지라는 곳마다 현수막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런 현수막들은 근래에 와서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뉴스자막을 보니 여의도에 포진하고 계신 분들이 자신들의 현수막은 현재의 법을 벗어나 시도 때도 없이 필요하면 아무 때 아무 곳에나 마음대로 걸 수 있도록 관련법을 잽싸게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정치 현수막이 늘었다고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현안문제로는 늘 싸움질을 일삼는, 국민의 눈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때는 어찌 그리 단결이 잘되어 동네를 무수한 현수막으로 뒤덮어 어지럽히고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앞선다. 현수막에 써 넣은 내용은 아예 참담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들어 이를 홍보하는 글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하나같이 모두 상대를 비난하는 내용들뿐이다. ‘내가 상대보다 더 잘해서 내가 돋보이게 하는 게 아니고 나는 그 자리에 있고 상대를 끄집어내려 내가 상대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꼴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도낀개낀’일 텐데. 

요즈음 젊은 세대들에게는 소원을 빌거나 사랑을 맹세하는 열쇠 없는 자물쇠를 난간이나 펜스 같은 곳에 채우거나 같은 목적의 종을 매다는 것이 유행이다. 서울의 남산에도 있다고 한다. 파리의 어느 다리 난간은 자물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쯤 되면 이런 소원, 사랑, 맹세의 아름다운 상징물들도 공해가 될법한데 하물며 동네를 뒤덮고 있는 각종 바람직하지 못한 구호의 현수막이야 오죽할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그런데 이들은 민주공화국을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막중한 임무를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았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민주공화국이어야 할 대한민국을 ‘현수막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도 나라와 국민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호 험담만으로. 자신을 지역구로 하는 동네를 더욱 더 깨끗하게 만드는 것도 그들이 부여받은 임무 중에 하나이다. 그들 중에 누구라도 그런 꼴불견 현수막을 스스로 철거하는 분이 계시다면 나도 그에게 적극적인 박수를 보내겠다. 그러나 그런 분이 있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차라리 현수막 철거를 소원하는 하얀 실이나 노란 리본을 동네 가로수에 매다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 코미디언들이 크게 유행시킨 말 중에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와 “지구를 떠나거라~~.” 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아는 유행어였다. 오늘도 혼자 속으로 되뇌어본다.

2023년 2월 26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Kdn4cN79FQ 링크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v1.1(Fingerstyle Gu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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