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의 일장기
3월1일, 내가 사는 동네의 3.1절 아침, 태극기를 걸기 위하여 간유리로 된 거실의 안쪽 문을 열었을 때 보였던 동네의 아침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약간의 비소식이 있었으나 경험적으로 우리 동네는 그런 작은 비 소식엔 비가 전혀 내리지 않은 날이 많았기로 그러려니 하고 태극기를 걸었다. 6층에서 바라본 동네엔, 늘 그랬던 것처럼, 주민센터 옥상에 펄럭이는 태극기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일본에 관한 일이 생기면 애국하시는 분들이 무척이나 많은 댓글을 다시던데 태극기 다는 것에 그런 마음은 없나 싶었다.
태극기를 걸고 문을 닫다 테이블위의 작은 원형 시계가 멈춰져 있는 게 눈에 뜨였다.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었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시계가 멈추면 시계에 밥 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독립운동이 벌어진 기미년에 태어나셨다. 그래서 매년 3.1절이 되면 어머니가 더욱 생각난다. 세월도 배터리의 힘으로 간다면 그 밥을 안 주면 될 텐데 생각하며 사람들이 그토록 보내기 싫다는 세월에 밥을 주기 위하여 배터리를 사러 나섰다. 어슬렁어슬렁 상업 건물을 바라보고, 아파트를 바라보고, 빌라를 바라보고, 단독주택을 바라봐도 3.1절이 태극기 거는 날임은 모두가 모르는 모양이었다.
오후가 되어도 하늘은 짙은 회색이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3.1절 기념으로 세일을 한다는 마트에 가자는 집사람의 요청에 차를 가지고 나섰다. 대로에는 구청에서 가로등 기둥마다 걸어놓은 많은 태극기들이 도로변을 따라 펄럭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태극기 바탕색이 흰색이 아니고 옅은 회색이었을까 생각되었다. 문득 태극기 세탁기준은 무엇인가 궁금하였다. 다행인 것은 이번 3.1절에 내가 다닌 길가와 시간대에는 깃대가 부러진 태극기는 없었다. 버스나 트럭 같은 대형 자동차 높이는 상당히 높아졌는데 태극기를 거는 가로등 깃대 꽂이의 높이는 변하지 않는 고로 자동차에 걸려서 끝부분이 특히 더러워졌거나 해져서 실이 너덜거리는 태극기 혹은 깃대가 부러져 땅 쪽으로 고개 숙인 태극기를 많이 보아왔다. 재작년 3.1절 아침에 부러진 태극기에 화가나 그 자리에서 구청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어 “3.1절 아침에 부러진 태극기를 봐야겠냐”고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3.1절에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 일장기가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분노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전해졌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특히 3.1절에 이런 모습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일장기를 내건 사람이 설사 일본인이라 해도 국제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는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했다. 인터넷 기사에 어마어마한 애국적인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난 일장기도 일장기지만 그 아파트 전체 사진에 태극기는 몇 개나 걸렸을까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댓글처럼 분노가 치밀었다면 태극기 계양도 그 분노와 비례하여야 하는데 그건 또 다른 세상인 것처럼 보였다. 그 분노의 소식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뜨겁게 하고 있다. 어떤 분은 한 달 내내 태극기를 계양하겠다고 내 걸었다. 태극기에 관한 법이 바뀌어 국경일뿐만 아니라 밤에도 걸고 비가와도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일 년 내내 걷지 않고 걸어도 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난 그 태극기 사진에 좀 섭섭함을 느꼈다. 특히 그런 목적으로 거는 태극기라면 태극기의 접혀진 주름도 가지런하게 다림질도 하고 깃대에 달 때도 아래 위가 반듯하고 평평하게 하여 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사마다 게재된 태극기는 모두 같은 사진이었다.
내 경우 국경일에는 모두 태극기를 걸지만 수년 전부터 걸지 않는 특정일이 있다. ‘제헌절’이다. 우리나라에 법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헌을 하시는 분들이 좀 곰곰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새 법은 안 만들어도 좋으니 있는 법이라도 그 분들부터 잘 지키시라는 내 방법의 시위다. 이번 3.1절 일장기 사태로 태극기를 거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고 내가 제헌절에도 태극기를 거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2023년 3월 3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hbJcBMfqATI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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