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인식계몽

korman 2023. 6. 18. 15:09

인식계몽

내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자주 쓰던 말이 있다. “상식이 없으면 지식이라도 있던가 지식이 없으면 상식이라도 있던가”라는 말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만의 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 사회적으로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일컬어 하는 소리였다. 별로 기분 좋은 분위기에서 사용하는 말은 못되니 과거에는 자주 사용했다 하더라도 현재나 미래에는 쓸 일이 없어야 하겠는데 미래는 고사하고 지금 그 말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타인은 고려하지 않고 본인만 위한 행동을 하는,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자신의 가게나 사는 집 앞에 자그마한 공간이 있으면 작은 화단을 만들거나 화분을 놓고 철 따라 꽃을 심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꽃을 많이 즐기는 사람들이겠지만 거리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이 담아 있기도 할 것이다. 또 초등학교 담장이나 가로수 아래에는 구청에서 큰 화분을 설치하고 반복적으로 새로운 꽃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꽃을 뽑아가지 마세요.’라던가 ‘CCTV작동하고 있어요’라는 작은 팻말이 꽃과 같이 꽂혀져 있는 모습이 제법 보인다. 그런 작은 팻말이 꽂혀있는 곳에는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어 인위적으로 뽑은 게 역력하게 느껴진다. 예전에 상춘객들에게 꽃나무를 꺾지 말라는 계몽이 있었는데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리에 심어 놓은 꽃도 사유재산이거나 공공자산이다. 꽃 몇 송이가 무슨 죄가 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요새 학교 앞에 신호등을 비롯하여 속도 측정기 및 각종 안전시설이 강화되고 있다. 차량들이야 지키지 않으면 단속이 되니 어쩔 수 없이 지키고는 있지만 제한된 느린 스피드가 답답함인지 흡사 앞차를 들이받을 기세로 앞차 뒤에 바짝 붙어 운행하는 차들을 많이 본다. 카메라가 없는 길에서는 학교 앞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운전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를 보이는 자동차 운전자들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오토바이라 할 수 있다. 길에서 목격되는 그들의 대부분에게는 법규라는 것이 없다. 그들은 학교 앞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지키면 그만큼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의 번호판은 뒤에만 있고 앞에는 없다. 그리고 운전자들은 헬멧을 쓰고 마스크도 한다. 그들이 지키지 않아도 번호판이 붙어있는 뒤를 찍는 카메라는 없다. 그러니 딱 그 자리에서 위법이 단속하지 않는 한 그들이 카메라 같은 단속 장비에 단속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러니 오토바이는 운전자가 스스로 지키지 않는 한 안전시설을 아무리 강화한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동네에서 시구의원들 몇 분을 만날 기회가 있어 “국회에서 왜 오토바이 앞 번호판 문제가 아직 통과되지 않냐”고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자신들을 위한 현수막법은 잽싸게 통과시키면서도 아이들과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오토바이에 대한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식(常識)이라는 것과 지식(知識)이라는 것과 인식(認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에 공통점을 가지며 알식(識)자를 쓴다. 세 단어 중 상식과 지식은 공통적으로 배워서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올바른 사회생활에는 상식이라는 단어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배움에는 학교에서의 배움도 있지만 각종 학교 외적인 교육이나 살아가면서 자연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다. 사회생활에서의 필요한 많은 것들은 상식이라는 단어에 대부분 포함된다고 느껴진다. 물론 큰 범위에서는 상식 또한 지식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이지 못하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때로 ‘많이 배운 사람이 왜 그리하는지’라 말하기는 하지만 ‘지식적이지 못하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알식(識)자를 쓰는 세 단어 중에 인식(認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사전에서의 제일 첫 번째로 안내하는 뜻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이라는 것이다. 나는 식자를 쓰는 세 단어 중에서 ‘인식’이라는 단어가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로 받아들여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지식이 높고 많은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분별하여 판단하지 못하면 그건 아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의 바탕이 되는 학식이 낮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생활에 필요한 상식의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단지 지켜야 하는 상식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뿐이다. 이는 ‘인식’이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다른 사람이 심어 놓은 꽃을 뽑아 가면 안 된다는 것이나 오토바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운전자들이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을 상식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인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불미스러운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가 발전할수록 그리 되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분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 이제는 그런 상식적이지 못한 사회를 위한 ‘인식계몽’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인식계몽’이 매년 말 교수들이 뽑는 사자성어(?)로 등재되기를 바란다면 내가 상식적이지 못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2023년 6월 17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hbJcBMfqATI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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