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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중헌디?

korman 2023. 8. 19. 13:41

변산

무엇이 중헌디?

8월15일 동네 큰길 네거리 모퉁이에 현수막 하나가 걸렸다. 상업적 불법 현수막이라면 누군가 구청에 신고라도 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현수막이다. 최근에 온 동네를 앞장서서 현수막으로 지저분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이 건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꼭 누군가를 꾸짖는 내용이다. 설마 자기 자신들이 아니고 국민들을 꾸짖는 건 아니겠지?. 6.25때는 이런 현수막은 걸리지 않았었다. 6.25전쟁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사 중 하나이거늘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가 없다는 장본인들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여 산화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현수막은 동네에서 보질 못하였다. 뭐 내가 6월의 기억을 못할 수도 있겠거니 하면 된다. 아마 역사 인식과 현실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다른 게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뭐가 중헌디?” 하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궁금하다.

1년 내내 국가가 나서서 기념하는 기념일이 많다. 그 중에서 다른 기념일에 비하여 통상적으로 우리가 좀 민감하게 생각하는 날이 ‘3.1절’과 ‘광복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6.25는 국경일이 아니라 그런지 매년 그 기억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땅덩이가 존재한다고 해서 나라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식민지 시절에는 모든 땅덩어리를 다른 종족의 무리에게 잃었었고 6.25때는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존재되지 않고 살아졌을 것이다. 우리가 겪은 ‘식민지’와 ‘전쟁’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단지 36년과 3년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일까? ‘수탈’과 ‘파괴’의 다른 점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떤 이유와 결과로 인하였던 간에 ‘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결과를 통하여 통째로 잃어버렸던 한반도는 오롯이 우리에게 돌아왔지만 곧 이어 온전하였던 땅덩이는 반으로 갈라지고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었던 한반도의 절반 반반도마저 온전하게 지키지 못할 뻔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15년 전쯤 이었을까? 거래를 하고 있었던 일본 사람과 이태원의 어느 식당에서 마주 앉았었다. 덕담을 나누며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던 그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한국인들은 왜 과거의 역사에 그리 집착하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 당시에도 ‘일본’하면 우리의 밑바탕에 깔려있던 반일감정을 짚어낸 물음이었다. “집착하는 게 아니라 불행했던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늘 상기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었다. 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그저 “그렇다고 해도 그러나 과거가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데는 서로 생각이 같았다. 내가 그와 그리고 그가 나와 이익을 서로 주고받는 거래를 하고 밥을 같이 먹고 있는 것처럼. ’36년의 역사가 미래의 시간도 치욕으로만 덮어 버린다면 그 역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현수막을 여기저기 걸어놓은 당사자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 그는 내 집 앞에도 그런 현수막을 걸까? 지금도 나는 어린 손주들이나 아이들 앞이 아니라면 ’일본사람‘ 대신에 ’왜X 혹은 일본X‘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한 때 일본의 SHARP의 LCD패널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고. 일본의 SONY TV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자사 제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단순 조립이 아니라 우리의 기술과 자재로 만든 완제품을 OEM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전자, 전기 제품에는 늘 하이테크라는 별난 단어가 따라 다닌다.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는 그곳에 갈 때마다 늘 일본 제품들의 광고가 주요 골목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그게 참 부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제품들이 그 곳을 장악하고 있다. 비단 TV만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등 다른 전자, 전기 제품들이 일본을 넘어 세계 시장의 정상에 도달해 있다. 한국인으로써는 자랑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동네에 걸린 현수막을 보며 우리가 제패하고 있는 분야의 원천기술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제품을 가져다 복사하고, 기술을 몰래 빼오기도 하고, 국내의 좋은 땅과 인력을 제공하며 공장을 짓게 하고, 일본 회사의 하청업체로 변신하여 납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본이 넘어오지 못하게 일구어 놓은 우리의 영역 아니던가. 하기야 ‘원천기술의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 기술은 없다’라고 그 현수막에 연결 지어 해석하면 현수막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한 우리의 제품들에는 아직도 일본의 부품이나 원자재를 끼워 넣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그걸 잊지 말자는 현수막이라고 억지로 꿰어 맞추어 본다.

동남아의 주요 국가들은 우리처럼 식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백년 이상의 오랜 기간동안 여러 강국들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도 있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많은 국가들 또한 그렇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그 불행했던 역사 때문에 자신들을 지배하였던 국가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치욕의 역사를 친분의 미래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이 겪은 치욕의 역사를 잊어서 그리하는 것일까? 발전된 미래의 역사를 이어나가기 위하여 그리 하는 것이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역사가 미래로 나가는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는 분들이 6.25를 잃으킨 자들이 우리나라의 주적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서 주적을 없애버렸다. 전쟁을 하자고 주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주적이 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더욱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는 36년의 식민기간보다 3년간 이어진 전쟁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사히 맥주가 1위 수입품이고 일본 관광객 중 1위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아사히 맥주를 마시고 일본 관광을 다녀오며 역사를 잊은자 운운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3.1절에 일장기를 걸었던 사람이 모진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그 일장기 옆에 태극기는 몇 개가 있었던가? 광복절에는 또 얼마나 걸려 있었을까? 현수막 보다는 많았어야 했을 낀데. 역사를 잊은자에게 미래는 없다고 일갈하신 그 분들은 모두 걸었을 테니 (그렇게 믿고 싶다) 현수막 숫자보다는 많겠지.  모든 과거의 역사는 이미 기록되어 있고 잊을 수도 없다. 따라서 ‘무엇이 중헌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래의 역사도 이어지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빙자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라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이 발전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2023년 8월 18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z4codSS50eQ 링크

Kenny G - Going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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