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5-230919
여보게 저승갈때 뭘 가지고 가지-석용산-고려원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솔바람 한 줌 집어가렴.
농담 말구.
그럼 댓그늘 한 자락 묻혀 가렴.
안 그럼,
풍경 소릴 듣고 가던지...
책의 목차는 들춰 보지도 않았다. 단지 겉표지에 적혀있는 대화 한 자락만 보고 값을 치르고 책방을 나왔다. 그게 이 책을 살 때의 기억이다.
난 절에 가도 절을 하는 신도는 아니다. 그러나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대부분 근처에 있는 사찰은 가능한 한 찾아가는 편이다. 그리고 사찰에 가면 풍경이 매달린 처마 쪽으로 향한다. 자리가 비어있으면 주로 대웅전 뒤와 옆이 만나는 처마 끝, 그곳을 추녀라 부르던가, 그 아래에 잠시 앉아 있기를 즐긴다. 거긴 건물의 뒤와 산자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바람에 풍경이 잘 흔들리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라 풍경소리가 다른 곳 보다는 선명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겨울에 가장 추운 곳이 그곳이기도 할 테지만.
이 책은 1993년 11월에 발간된 오래된 책이다. 당시 내 나이가 40 초반이었으니 아마도 저승이라는 것 보다는 풍경소리 때문에 책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책을 다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가가 포교승이었을 당시 발간한 책이라 종교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종교에 편승한 책은 별로 좋아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책꽂이에는 이상하게 스님들이 쓴 책이 여러 권 있다. 다른 종교인들이 쓴 책도 몇 권 읽어는 보았지만 자신의 종교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읽은 스님들의 에세이는 종교적인 요소들 보다는 일상생활에서 기억하고 실행하여야 하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는 편이었다. 이 책 역시 그런 좋은 말들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포교승이라는 위치는 벗어나지 못한 듯 부처님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에세이라기보다는 포교서적인가 생각될 정도로 종교에 편승된 느낌이다.
이제 내 나이가 책의 제목에 걸맞은 나이가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몇 살 즈음에 발간하였는지 잦아보았더니 그의 나이 40 중반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의 책을 샀을 때와 별반 차이는 나질 않는데 종교적인 면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그 나이에 읽을 줄은 알았지 쓸 줄은 몰랐던 터라 불혹이라도 같은 것이 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과거를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출가할 때까지 한 가정의 장남으로 모두 30을 넘기지 못하고 청상과부가 된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니 그의 고뇌가 오죽하였을까 생각된다. 그러니 속세를 떠나 중이 된 사연도, 책의 제목을 이리 지은 사연도 모두 그의 나이에 저승을 떠올리게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포교승 생활을 하면서도 에세이 외에 시도 썼다. 이 책에도 그의 시가 적절한 면에 여러 편 소개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시를 쓰지 못하여 선생님에게서 야단도 맞았다는데 인생이 어려우면 시도 써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시적 재능은 늦게 나타난 것인지 몇 권의 시집도 출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시를 쓰고 시집을 출간하는 것을 가지고 신도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다고 한다. 포교스님이 시가 다 뭐냐 그럴 거면 포교와 관련된 글을 쓰는 게 더 옳지 않겠냐는 다그침이었다고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무슨 논리로 스님이 시를 쓰면 안 되는 것인지, 스님의 시를 가로 막는 신도들은 부처님의 공덕을 더 받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스님에게 미치는 신도로써의 자신들의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까 궁금하였다. 부처님이 그런 신도들을 원하지는 않으실 듯한데....
그가 1946년생이라니 2023년 현재 올해 나이가 77세이다. 아직 스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면 큰스님이라 불릴 것이다. 현재 그의 위치를 알아보다 행여 알지 말아야 좋을 것을 알아 읽은 책의 좋은 느낌이 반으로 줄어든 것 같다. 그는 50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너무 일찍 이별한 것 같다. 예견하고 이런 제목의 책을 낸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이른 나이였다. 관련 소개 내용에 의하면 그의 인생결말이 유명세와는 달리 석연치 않았다. 유명세를 타고 돈이 생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실체를 밝힌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속했던 종단에서는 그를 사이비, 땡추로 칭하고 말년에는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하니 별로 본받을 말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참고 : 나무위키, 석용산, https://namu.wiki/w/%EC%84%9D%EC%9A%A9%EC%82%B0 2023년 9월 19일 현재)
그래도 그가 남긴 이 두 말은 꼭 기억하고 싶다.
* 행복도 사랑도 천국도 지옥도 다 쬐그만 가슴속에 있다.
* 작은 어항을 깨고 나서 보니 세계가 내 집이요 우주가 내 뜰이네.
2023년 9월 19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iPiAw-msmNM 링크
[만추ost]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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