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旅行)을 떠나요.
언젠가부터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있냐고 물으면 ‘방콕’여행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태국의 방콕이 아니라 ‘방에 콕 박혀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누군가가 말을 참 재미있게 지어 놓았다. 지금은 비록 방에 콕 박혀있더라도 랜선이라는 것만 연결해 놓으면 신조어의 진원지인 방콕엔 가지 않아도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방콕보다 더 넓은 세상을 여행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가이드가 동반하지 않아도, 여행 경비가 없다 하더라도 걱정 접어놓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전 세계가 모두 내 이웃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요즈음은 나이 드신 분들이 랜선도 없이 방콕에서 보낸 긴 겨울을 벗어나 이른 봄꽃을 찾아 남녘으로의 여행을 즐기시는 모습이 TV에 자주 비쳐진다. 그 분들의 웃음 띤 모습은 봄이 가져다주는 순간의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여행에는 길고 짧음이 있다. 짧게는 핸드폰 하나만 들고 집 문밖을 나서 근린공원을 포함한 동네 한 바퀴의 산책을 비롯하여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는 여행까지 여정에 따라 목적에 따라 정해진 기간이 주어진다. 주어진다기 보다는 각자가 정한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여행의 본 의미는 ‘자기가 사는 동네를 떠나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타지나 다른 나라에 가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동네산책은 여행의 범위 안에 들지 못한다는 것이겠지만 주어진 범위가 그저 막연하게 ‘자기가 사는 동네’라 하였으니 행정구역상 최소단위가 내가 사는 동네라면 직업상 누군가를 만나러 혹은 무언가를 즐기기 위한 옆 동네로의 원정은 여행 축에 든다고 해석하여도 틀린 답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여행이라 하면 작은 배낭이라도 짊어지고 문단속 잘 하고 나서는 게 제격이겠지만.
여행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여행의 테마’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이와 성별 혹은 직업 등에 따라 이 테마는 다를 것이고 출장을 비롯하여 문화, 역사, 자연, 관찰, 쇼핑 등등, 자신의 테마에 따라 가고자 하는 여행의 목적지와 기간이 정해질 것이다.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같이 떠났다가 사이가 나빠져 돌아왔다는 글을 대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각자의 테마가 달라 여행지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여럿이 같이 하는 여행을 두고 생겨난 말이 있다. ‘넷이 가면 둘둘이 갈라지고 셋이 가면 하나는 외톨이가 된다’라는 말이다. 여행지에서 각자의 테마에 따라 생겨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부부가 같이 가도 각자의 테마가 있는데 개성이 강한 젊은 친구들은 더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여행도 여럿이 같이 간다면 테마나 목적지에 대한 접근방식 등의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하겠다. 그리고 나만의 테마가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테마가 필요해 보인다.
국내여행에도 패키지를 찾는 분들이 계시지만 특히 해외여행에는 각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을 많이 선호한다. 해외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 번 떠나면 짧은 일정 내에 여러 곳을 들러야 하고 번역기를 사용한다고 하여도 편하지 못한 의사소통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편의성을 고려하여 여행사 패키지를 많이 이용하지만 패키지는 각자가 선호하는 테마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름난 관광지를 주된 목적지로 하고 있으며 타이트하게 정해진 동선이나 이동시간 때문에 전체 일정상 특별히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날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한 자신만의 테마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테마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여행의 참맛에는 현지인들과도 어울리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적인 공간도 체험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해보지 못하는 다른 경험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돈을 더 지불하고 노옵션, 노팁, 노쇼핑의 상품을 선택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몇 번의 패키지여행엔 여행사의 상품소개와는 달리 옵션 강요와 정해진 장소에서의 장시간 쇼핑 강요가 각자가 잠시라도 즐겨야 할 테마를 위한 시간을 잠식하고 있었다. 현지에서는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분들의 후기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많다.
패키지여행은 단체여행이다. 따라서 가이드의 역할을 비롯하여 강요가 따르는 요소에 의해서 여행의 즐거움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단체를 이루고 있는 분들 중 특정인의 행동에 의해서 구성원들에게 피해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에 따른 장소마다 가이드가 제시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과거 세 번의 패키지여행에서 두 번은 시간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그것도 몇 분 몇 십 분이 아니라 한 시간, 두 시간 동안 버스에 돌아오지 않은 분으로 인하여 모든 일행의 일정 자체가 엉망이 된 경우가 있었고 (그랬어도 그들은 일행에게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상품에 소개된 일정을 무시한 가이드의 ‘내 맘대로 행동’과 옵션 및 쇼핑 강요로 장시간을 허비한 즐겁지 못한 경우를 겪어 본 나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같은 경험을 한 집사람은 그래도 패키지가 해외에서는 안심이 된다고 한다. 아마 나이가 있어 아무리 남편이 개인 여행을 위한 일정을 짜거나 숙소 등 필요한 예약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하여도 해외로의 개인 여행엔 둘이만 다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오는 모양이다.
한편, 집사람도 국내여행을 할 때는 내가 짜 놓은 여정대로 잘 따라 다닌다. 난 집사람과 국내여행을 떠날 때면 교통이 불편한 지역을 제외하곤 자동차를 배제하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탈 것, 먹을 것, 갈 곳, 볼 것, 묵을 곳에 대한 모든 정보는 컴퓨터를 열면 거기에 다 들어있으니 그 정보에 의하여 일정과 예산을 짜면 된다. 더군다나 주말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전철이나 지하철은 무료, KTX를 비롯하여 모든 기차는 평일 할인, 입장료가 필요한 곳에서도 대부분 무료 아니면 할인 등등 혜택이 주어지니 장시간 운전하면 신체적으로 편하지 못한 나이에 굳이 자동치를 가지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부부간에도 여행의 서로 다른 테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장소마다 머무는 시간의 안배가 필요하고 각자 다른 테마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래야 부부간에도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젊어서는 같은 테마를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의 테마가 서서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늘 고려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인터넷을 통하여 내 테마대로 국내는 물론 지구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여행을 구상하지만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은 생각을 거의 따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내 테마의 홀로여행을 그리고 있다.
2025년 4월 9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RPDwYqCMKRg 링크
Feel The Vibes With Rumba & Flamenco | Guitar Pa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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