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종을 모으며

korman 2006. 11. 4. 19:28



 

많은 사람들이 어린시절에 무언가를 모아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코흘리개 시절에는 딱지를 비롯하여 유리구슬 등을 모으고 청소년 시절에는 우표를 비롯하여 동전, 성냥갑, 각종 소품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것들을 모아서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는데 그런 것이 취미로 이어져서 성인에 이르기 까지 수집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나도 어릴적 자랑거리로 무언가를 모으곤 하였는데 그런 버릇은 중학교 시절까지 모두 끝나고 고등학교 부터는 소위 백판이라 불리우던 팝송 레코드판을 모으는게 취미였다. 그 취미는 대학에 다닐때도 쭉 이어져 꽤나 많은 양의 판을 모았었고 이로 인하여 당시 팝송을 해설할 만큼의 상식도 갖게 되어 지금의 4,5,6,7기 동문들이 활동하던 시절 토요일 오후 학교앞 청운다방을 빌려 그 판들을 가져다 해설을 하며 음악감상회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로 기억이 된다. 1982년부터 국외에서 일하고 또 귀국하여 국외로 출장을 다니면서 귀국 때에는 그저 마누라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만을 가지고 돌아오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무언가 나를 위하여 남는 것은 없어 항상 허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1990년도에 들어서는 더욱 많은 출장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그 때 나는 나를 위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 하였다.


출장 때 마다 이국의 거리를 거닐면서 많은 소품 선물가계와 기념품점을 지나치며 발견한 것은 매우 다양한 소품, 기념품 중에서 우리나라와는 달리 어느 가계에서건 아름답고 예술적이며 독특한 작은 종들이 많이 눈에 뜨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1990년 첫 번 출장 때 (모나코로 기억된다)문득 그 종을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파리를 거쳐 니스-모나코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발견한 몇 개의 종을 구입한 것이 처음이었다.


손바닥 보다도 작은 몇 개의 종을 들고 귀국한 나에게 집사람은 갑자기 웬 종이냐 하며 그런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사오지 (실제로는 화장품이나 한개 사오지 하고 싶었을 텐데) 라며 못내 서운한 눈치를 주기도 하였다. 그 뒤부터는 출장시 마다 종을 사오는 것은 당연시 되었고 장식장 한 귀퉁이에 예쁘장하게 자리를 잡을 정도의 수량이 되었을 때는 집사람도 그리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새로운 종을 사오지 않으면 섭섭해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출장을 다니면서 한정된 시간과 경비로 종을 수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로는 시간이 없어서 때로는 가격이 부담이 되어 그냥 돌아올 때도 있었다. 언젠가 빠리 공항에서는 모든 주머니를 털어 인형처럼 생긴 스페인산 종 한개 만을 사가지고 온 경우도 있었고 암스테르담을 두 번이나 들러 매번 바라만 보고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워 끝내는 구입을 포기하고 돌아온 노란색 타원형종이 못내 후회스럽고 런던에서 구입하지 못한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 조각이 되어있는 포셀린종이 눈에 밟힌다. 언제 또 그 도시에 가서 그것들을 만나게 될른지.


종을 모으면서 나는 역시 역사와 문화가 이 작은 종에도 나타남을 느꼈다. 미국도 각 도시마다  선물 가계에서 종을 팔고 있지만 대부분이 특징 없이 같은 모양에 그 지방 그림이나 문귀가 프린트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유럽의 종은 그 표현이 매우 다양하고 문화적이며 예술적이다.  또한 동남아시아 종은 좀 토속적이고 중국은 칠보가 많으며 일본은 깨끗하기는 하나 좀 얇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어디를 가나  에밀레종을 모델로 한 미니어츄어 한가지 뿐이다. 국제 종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범종을 그 독특한 종의 형태와 소리 때문에 학명을 Korean Bell로 따로 분류하여 연구한다고 한다. 이러한 우수한 종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진작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수년간 종을 모아 왔으면서도 나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관계로  각개의 종에 대하여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어디서 입수하였는지는 기억이 나지만 언제 어떤 댓가를 치르고 어떤 경로로 입수하였는지 그 족보를 만들이 못하였다. 아마 그건 앞으로도 안될 테지만. 지난 것을 못했는데 앞으로의 것을 해서 무엇 하겠나.


연극의 무대는 종을 치면 오르고 또 종을 치면 내린다고 한다. 태어날 때 울음 소리가 인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라면 그 옛날 두부장수의 종소리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고 상여잡이의 종소리는 또 다른 시작의 알림인가. 가끔씩 모아져 있는 종들의 서로 다른 종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의 종 모음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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