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한 박자 늦게 한 박자 빠르게

korman 2006. 11. 16. 22:37

딸아이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애비의 영향을 받아서 딸아이가 학교에서 적십자 활동을 하였고 인천지역 청소년 적십자 중등부 여학생 부회장까지 하면서 지역 활동에도 잘 참여하곤 하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딸아이 학교의 적십자 지도 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말의 낮 시간에 KBS홀에 가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은즉 이제 막 세계무대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의 젊은 음악가가 “적십자 칸타타” 라는 곡을 만들어 국제 적십자에 헌납하는데 그 초연이 KBS 교향악단에 의하여 KBS홀에서 있는데 그 공연을 보고 청소년적십자지에 기고를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학부모로써 과거에 적십자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학부모 기고가로 나를 추천하였다는 것이다.  


과거에 이벤트의 하나로 잠깐씩 연주하는 클래식 연주회는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전문적인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는 가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좀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특별한 부탁이라 가기로 하였다.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이긴 하였지만 그런 연주회에는 정장을 하여야 한다는 말을 들은지라 나비넥타이는 아니라도 타이를 매고 집사람에게도 정장을 하도록 하였다. 평소에 목이 조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참고 들어선 KBS홀에서 연주는 시작되기도 전에 마누라 잔소리부터 들어야 했다. 학생, 학부모, 지도교사 및 적십자 관련 사람들로 홀 안은 빈 자리가 없었지만 특별한 사람들만 빼고 일반 청중들 중에 정장을 한 사람들은 우리 부부 뿐이었다. 난 즉시 저고리를 벗고 목을 해방시켰다.


남자들이 40을 넘으면 클래식을 듣는다던가. 나도 집에서나 차안에서 가끔씩은 클래식을 듣기는 하지만 이런 연주회는 처음이라 어디에서 박수를 쳐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황이라 연주회장에 가지 전 좀 안다는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 왈 남이 박수를 칠 때 한 박자 늦게 치고 남보다 한 박자 빨리 끝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어떤 이는 연주 소리가 잦아질 때 중간 박수를 치려다가 또 갑자기 커지는 소리에 움찔하는 사람도 있었고 몇 번 치다가 겸연쩍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 덕분에 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는 내내 마누라의 정장에 대한 핀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난 그 보다는 이제 어떤 글을 써야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학교 다닐 때 교지에 몇 자 적어본 적은 있지만 너무 오래된지라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딸아이의 체면을 생각해 주어야 하겠기로 집에 돌아온 즉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학교 앞 청운다방에서 토요일 오후에 팝송 해설을 한 실력만으로 어찌 클래식 연주회를 평하겠는가!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그저 변두리 이야기만 주어모아서 원고를 넘겨주었는데 다행히 수정하자는 요청 없이 그대로 회지에 실렸고 딸아이는 아비의 글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였다. 그때 그 회지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가 없다. 까페에 올려야 하는데....         


클래식 연주회에 가시는 여러분! 혹 모르시면 “남보다 한 박자 늦게 또 남보다 한 박자 빠르게”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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