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홍콩의 인파속에서 (출장기 하)

korman 2007. 1. 18. 00:07

홍콩 의류가게에 걸려있는 한글 티셔츠

무슨소리인지?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별로 번잡하지 않은 출국수속을 마치고 몇몇 가게를 둘러 보았다. 지난번 왔을 때 단 한개의 새로운 종 밖에는 구입하지 못하였던 터라 새로운 것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다른 것은 없다. 하기야 불과 한달여 만에 무엇이 달라졌을까만.


중국 비행기를 벗어나 홍콩 비행기에 오르니 냄새부터가 다르다. 안내방송이며 기내식, 기내 서비스가 눈에 띄게 다르다. 같은 중국 사람들인데 어찌 이리 다를 수가 있는지.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우리 역사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아니 이번 중국길에 고조선과 고구려 및 중원의 각 나라들과의 역사적 관계를 좀 더 알고 싶어 가지고 온 한국사를 펼쳤다. 이미 한번 읽은 책이거늘 어찌 이리 처음 대하듯 까마득한지. 인천에서 정주를 거쳐 상해에 오는 동안 웬만큼 읽어 몇 페이지 남지 않았는데 요새 즐겨보는 역사 드라마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과 겹쳐지며 기억을 새롭게 한다. 내부 분열로 인하여 망해버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의 통일을 추구한 신라, 그 틈바구니에서 망한 백제....모두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잘못으로 망해버린 나라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남과 북이 갈려있고 남쪽에서도 몇 패로 나뉘어 서로 헐뜯고 있다. 우리가 과연 한민족이라 할 수 있는지. 책장위로 한숨이 쏟아진다.


비행기는 남쪽으로 향하고 해는 서쪽 구름 아래로 숨는다. 문득 하늘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 아래로 내려간 저녁해가 구름위로 노을을 올려 보낸다. 구름의 맨 아래는 붉은빛, 그 위에는 오렌지색, 그 위에는 계란노른자빛, 그 위에는 연노랑, 그 위에는 하얀빛, 그 위에는 연한 하늘빛, 또 그 위에는 잉크색, 그리고 그 위로는 검은 하늘빛. 신기하게도 이렇게 층을 지으며 빛은 살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든 색들은 검은빛으로 통일되며 하늘의 밤이 열리고 있었다.               


눈에 익숙한 공항. 중국을 벗어난 마음이 꼭 파라다이스에 온 것 같다.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비에서 중국과의 심한 물가 차이를 느낀다. 그러나 이곳의 셔틀버스들은 웬만한 호텔은 이름만 대면 그곳까지 실어다 준다. 셔틀택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공항급행열차를 타도 정거장에는 각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다. 항공사에서 운행하는 비싼 리무진 버스가 특급호텔 몇 곳에만 셔틀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택시 아니면 노선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우리의 인천공항 대중교통체계와 또 비교를 하게 된다. 내국인이야 문제 없지만 개인으로 처음 오는 외국인들은 어찌할까. 그래도 다들 행선지로 가기는 하겠지만.


새로이 떠오르는 지역에 새로 지은 호텔이라는 말에, 그리고 지하철역이 가깝고 약속한 회사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예약하였던 호텔인데 가 본즉 재래시장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생선가계와 정육점, 중국전통식품이 즐비하고 옷가계며 신발가계, 채소가계들이 어울려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긴다. 일 때문에 출장 온 사람들이 묵기에는 아주 부적절한 곳이긴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하여 호텔비가 좀 저렴하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투숙하고 있었다. 요즈음 홍콩의 호텔비가 많이 오르고 있다. 이유인즉 기존의 많은 호텔들이 수익성이 좋은 사무실로 개조되어 호텔이 부족한데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어 그렇다고 한다.


오전에 약속한 업체와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누고 들어선 타임스퀘어 지하 음식코너,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반가운 한식코너가 있다. 어느 나라에 가던 한식은 늘 비싸다. 그래서 주머니가 두둑하지 못하면 출장지에 많은 한식당이 있다 하더라도 자주 갈 수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국내 가격과 비슷한 5-6천원에 다양한 메뉴가 제공되고 있었다. 집을 나온지 5일째 무엇인들 맛이 없을까 마는 내가 시킨 불고기 덥밥에 따라 나온 미역국과 김치가 제법 맛깔스럽다. 게눈 감추듯이 뚝딱 하고 주위를 보니 많은 홍콩 젊은이들이 한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넘어 벽면에는 “비”의 홍콩 공연을 알리는 커다란 포스터가 한류가 존속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약속한 회사들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오랜 홍콩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정주에서의 일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더니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일을 많이 당했으며 그의 친구도 그런 황당한 경우를 수없이 겪어 이제는 중국 사람들과 상대를 하지 않고 있다며 나에게도 웬만하면 중국 사람들과 거래를 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아직도 중국사람 소리를 듣는다”고 하였다. 홍콩의 중국사람, 이들은 홍콩인인가 중국인인가. 이 시간 나 자신은 어떤 관습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좋은 기회였다.


지난 15년 이상을 사용한 가방이 낡아 새것을 하나 장만 하여야겠기로 가방가계를 찾아 다녔다. 비슷비슷한 가방 가격이 2만원에서 6만원 까지 가계마다 천차만별이다. 과연 얼마를 주고 사야 적절한 가격인가. 국내의 할인점에서는 중국제라도 5,6만원은 주어야 살 수 있었다. 다리품을 팔고 다니다 한 골목에서 괜찮은 가방 하나를 발견하고 흥정을 벌렸다. 4만5천원정도 부른 것을 2만원에 낙찰. 호텔에 돌아와 살펴본즉 정말 좋은 가방을 참 싸게 산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값의 차이 때문에 좀 더 깎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난 늘 밤비행기를 탄다. 밤비행기를 타면 그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또 하룻밤치 호텔비를 절약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인천공항에 새벽 5시에 도착하는 밤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가방 하나를 고르기 위하여 허비한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그 시간이 아까웠던게 아니고 그런 물건을 혼자 사보지 못한 나의 무경험이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지금까지 넥타이 하나도 마누라 없이 사본 기억이 없다. 가방도 마누라가 있었다면 더 좋은 것을 더 싸게 더 빨리 살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과연 내가 마누라 먼저 보내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차원적인 생각이 비행기 천장을 응시하게 한다.


인천공항의 새벽 공기는 상쾌하였지만 살속을 파고드는 한기를 느끼게 하였다. 집 근처로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안내된 정류장으로 갔지만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놓은 안내판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첫차는 언제이며 막차는 언제이고 배차간격은 어떻고 요금은 얼마이다 라는 정보를 적게 되어 있는 안내판.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 그렇다면 안내판은 왜 세워놓고 있는 것인지. 나에게 주어진 새벽시간이 많은 듯 싶어 정류장 번호마다 살펴 보았다. 지방으로 가는 곳에는 모두 빈 안내판, 서울쪽으로 가는 버스의 안내판들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별도의 안내 종이들..... 쓰지도 않을 안내판을 왜 만들어 놓았는지. 다시 안으로 들어가 안내센터에 이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 목소리를 높였더니 그제서야 위에 건의 하겠습니다 한다.


이른 새벽에 약간 언성을 높인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고 조금만 관찰하면 간단한 일들이 이제 중국에도 뒤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새벽 흔들리는 버스에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