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전라북도 완주군 안심사 범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korman 2007. 1. 21. 19:54

전라북도 완주군 안심사 범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명 칭 안심사소장동종 (安心寺所藏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05.12.16

소 재 지 운주면 완창리 26 운주면 완창리 26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상 세 문 의 전라북도 완주군 문화관광과 063-240-4226


이 동종은 안심사 법당 내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6․25전쟁때 외부로 유출되어 충남 금산 보석사에 봉안하고 있다가 2004년에 안심사로 반환되었다. 종의 몸체 하단에 양각되어 있는 주성기(鑄成記)에 의하면 이 종은 1760년(건륭 25)에 고산 대둔사 안심사에서 조성되었으며, 무게는 370근 이고 백홍진, 유도용 등 장인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은 전고(全高) 97cm, 용뉴(龍鈕) 17.5cm, 음통(音筒) 20.5cm, 직경(直徑) 63cm의 아담한 규모이다. 종 윗부분에는 s자형으로 몸을 휘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한 마리가 마치 앞으로 나아가듯 역동적인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용은 머리를 약간 치켜들고 큼직한 발을 힘차게 뻗어 내딛고 있으며 입은 크게 벌려 안에는 혀를 말아 구슬을 움켜지고 있는데 꼬리로 음통을 휘감고 있는 모습이 긴장감 있으면서도 탄력적으로 느껴진다. 용두의 뒤쪽으로는 원통형의 음통이 붙어있는데 몸체에는 초화문대가 조각되어 있으며 윗부분에는 화려하게 피어난 연꽃송이로 마감하였다.


종신(鐘身)의 형태는 입구가 약간 벌려진 듯 하나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균형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천판과 종신이 만나는 부분은 가는 조선(條線)으로 구분하였으며 그 아래 상대에는 2줄의 범자문원권대(梵字文圓圈帶)로 장식하였다. 이처럼 범자문으로 상대를 장식하는 기법은 조선후기에 보이는 특징으로 중국종에서 상대에 범자문을 배치한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상대 아래에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사다리꼴 모양의 유곽대(乳廓帶)와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유곽의 둘레는 당초 줄기 안에 국화문같은 화문을 장식하였는데 사실적인 꽃모양이 돋보이며 내부에는 9개의 유두(乳頭)를 배치하였다. 12엽의 연꽃 위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유두는 도톰하게 묘사하여 부피감이 느껴진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왼쪽으로 몸을 틀고 우아하게 서 있는 보살입상이 4구 주조되었는데, 원형의 두광을 지니고 연꽃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모습이 조선후기 불화의 보살상 양식과 흡사하다. 이 종의 하단부는 2조의 돌기선이 둘러져 있고 그 사이에 문양대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명문은 종신 하단에서 약 13.5cm 정도 떨어진 곳에 돌려가며 주조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 페이지 2017년 7월 25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2050000,35


==============================================================================

사라질 뻔한 안심사 범종, 60년만에 귀향

일제 전쟁무기 공출, 6.25 화마 피해 돌아온 범종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채 60년만에 돌아온 범종
하마터면 일제의 공출로 전쟁무기가 될 뻔했던 범종이 60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중생구제의 소리를 내게 됐다.

완주 대둔산 안심사(주지 일연)는 최근 금산 보석사가 보관하던 안심사 동종을 이운하고 범종각 불사에 들어갔다.

이 종은 해방전 전쟁무기용으로 공출되어 전국에서 수집된 고철과 함께 대전역 부근에 있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화를 면하게 됐다. 해방직후 공출물품 담당자의 연락으로 당시 안심사 본사인 보석사 스님들이 인수해 보관하게 됐다.

그 뒤 사중스님과 신도, 지역주민들은
김창균 문화재전문위원은 안심사 범종의 보살상이 세련미있는 조선시대의 보기드문 수작이다 고 말했다.
보석사에 보관중인 안심사 종을 되돌려 받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60년을 보내게 됐다.

2년 전 안심사 주지로 부임한 일연 스님도 주민과 신도들의 요청으로 보석사를 찾게 됐다.
“요사채에 달려 있는 종을 처음 접하고 마음이 찡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니 그날 밤 품안에 종을 껴안고 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날부터 ‘종의 무사귀환’을 발원하며 기도에 들어간 일연 스님은 보석사, 교구본사 마곡사, 총무원에 눈물로 호소했고 얼마 전 종을 이운해 가라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종이 오던 날, 안심사 대중들은 감격했다. 무려 60년만에 돌아온 범종은 아무런 손상없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연 스님은
일연 스님이 돌아온 범종을 살펴보고있다
“범종은 많은 이들의 신심과 원력으로 조성되었기에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이다”며 “안심사가 6.25때 소실되었는데 너무 일찍 왔어도 그때 화마로 사라졌을지 모르기에 피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안심사 동종은 전체 높이 97cm, 지름 63.2cm 무게 370근으로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1760년(영조 36)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심사 범종을 조사한 김창균 문화재 전문위원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우리나라 범종의 전통양식을 충실하게 이어받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며 “보살상 조각과 용고리가 세련미 넘치고 탄력적이며 해학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시대 범종으로는 보기드문 수작이다”고 말했다.


안심사에서 주조됐음을 알리는 명문

한편 일연 스님은 “빠른 시일내에 종각을 건립해 종소리를 울리도록 하겠으며, 관계기관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글=이준엽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maha@buddhapia.com

------------------------------------------------------------------------------












• 코드: cp0501b04701

• 명칭 : 안심사범종

• 지정 : 비지정

• 조성연대 : 조선 영조 36년(1760)

• 제원 : 전체높이 97.0㎝, 종신 71.0㎝, 입지름 63.2㎝, 무게 222kg

• 소재지 : 완주 안심사

• 관리자 : 완주 안심사

• 설명

건륭 25년 조성된 이 범종은 2005년 안심사 주지 일연스님에 의해 금산 보석사에서 안심사로 이운되었다. 현재 안심사 적광전 내에 임시로 모셔 놓았다. 재질은 청동이며 주종장은 백흥진(), 유도룡(), 정진()이다.

종 정상부에는 단룡과 음통이 한 조를 이루는 용뉴를 갖추고 있다. 용의 형태는 마치 천판을 움켜쥐고 있기라도 하듯 굵고 큼직한 발을 힘차게 뻗어 내딛고 있으며, 머리는 약간 치켜들어 마치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것과도 같아 보인다. 송곳니를 크게 드러내어 벌린 입에는 혀를 말아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입가의 갈기는 끝부분만이 약간 부러진 채 위로 뻗쳐 있다. 그리고 등지느러미가 톱날과도 같이 정연하게 붙어 있는 탄력 넘치는 몸통에는 둥근 선으로 비늘이 묘사되어 있으며 꼬리로는 음통을 휘감고 있다.

음통은 조선시대 범종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형태로 몸통에는 초화문()의 섬세한 문양띠가 둘러져 있으며, 꼭대기는 활짝 피어난 연꽃 모양을 형성하여 마감하였다.

3조의 횡선을 둘러 몸체를 네 부분으로 구획지은 몸체에는 범자원권문대()와 사다리꼴 연곽 및 두광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명문대()가 새겨져 있다.

천판과 잇대어 마련된 12cm 폭의 상대는 안쪽에 범자가 있는 지름 4.5cm인 둥근꼴 문양대가 상단(21좌)과 하단(13좌)에 걸쳐 두 줄로 돌렸고, 폭 33.5cm의 중간부에는 4좌의 연곽대와 보살입상 4구가 자리하였다.

안심사 범종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사실은 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 범자원권문 6좌가 천판에도 마련되어 있는 점과, 명문 중 ‘주지 겸 화주 학선( )’ 만을 별도의 구획을 마련하여 명기한 점 등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판에 범자문을 장식하고 있는 예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중인 안적암 동종(1684년 조성) 외에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가로 18.0~24.0cm, 세로 22.5cm 크기의 사다리꼴 연곽은 각 연곽마다 테두리(폭 3.6cm)에 국화와도 같아 보이는 섬세하고 세련된 선의 꽃문양이 장식되어 있으며, 안쪽에는 각 9개씩의 연뢰를 배치하였다. 봉긋 솟아 있는 연뢰는 높이 1.0cm인 적당한 크기의 둥근꼴로 별다른 장식이 없으며, 정연하게 나타낸 연뢰 하단의 연좌(지름 3.5cm)는 12엽을 이루는 연꽃 모양으로 판마다 살집이 도톰하여 부피감이 돋보인다.

그리고 각 연곽 사이에는 몸을 왼쪽으로 튼 채 둥근 머리 광배에 연꽃대좌를 딛고 서서 합장하고 있는 제석천()․범천() 추정의 보살입상(전체높이 25.5cm) 4구가 자리하고 있는데, 유려하고 섬세한 선을 사용하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몸체 하단으로부터 13.5cm 위쪽의 구획(폭 14.0cm)에는 빙 둘러 종의 주성시기를 비롯하여 주성 편수와 시주자 등을 밝혀주는 글이 양각되어 있다. 주성기 중의 “ … … …” 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 범종은 건륭 25년인 1760년 안심사종으로 고쳐 만들었으며, 무게는 370근이고 주성에는 백흥진, 유도용 등 일반 장인을 비롯하여 전 비구 정진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우리나라 범종의 전통양식을 충실하게 이어받고 있음은 물론, 손상 없이 형태가 거의 완전하고 보존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며 나름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형적으로도 각 부의 비례와 표현이 적당하고 빼어날 뿐 아니라 연곽 테두리를 비롯하여 명문 구획 테두리의 초화문대와 연곽의 용고리 장식이 탄력적이고도 해학적인 면을 보여주는 등 조선시대 18세기 범종으로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범종은 해방 전 전쟁무기용으로 공출되어 전국에서 수집된 고철과 함께 대전역 부근에 있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화를 면하게 됐다. 해방직후 공출물품 담당자의 연락으로 당시 안심사 본사인 보석사 스님들이 인수해 보관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유형문화재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 >









□□□

□□

지□



















용뉴고: 17.5cm, 음통고: 20.5cm, 무게 370근

<자료 : 안심사 범종 조사검토의견서>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11월 27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58&content_id=cp050100580001&search_left_menu=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