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동종(八達門銅鐘) (만의사대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

korman 2006. 10. 25. 21:54

수원 팔달문동종(八達門銅鐘) (만의사대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



팔달문 동종


• 코드: cp0501b04201 


• 명칭 : 팔달문동종 


• 지정 : 시도유형문화재 69호(경기) 


• 조성연대 : 조선 숙종 13년(1687) 


• 제원 : 전체높이 123㎝, 입지름 75㎝ 


• 소재지 : 수원화성 팔달문 


• 관리자 : 수원화성사업소 


• 설명 


수원화성 팔달문 2층 누각에 걸려있으며 현재 타종하지 않고 있다. 재질은 청동이다. 훼손방지를 위해 박물관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조각되어있고. 그 아래 약간 오므라든 종의 몸체를 연결하였다. 전체적인 비례와 공간의 구조가 안정감을 준다. 음통은 용의 꼬리가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그 상단에는 활짝 핀 꽃을 생동감 있게 장식하였으며, 상대는 2단으로 정사각형의 구획을 나누고, 그 안에 2열 원문범자를 돋을새김 하였다. 띠에 잇대어 네 곳에 연곽과 연꽃을 쥐고 있는 네 구의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연곽 둘레에 덩굴무늬를 새겼다. 돌출된 아홉 개의 연뢰는 보상화무늬로 장식하고, 가운데 한 개만 유난히 돌출된 연뢰를 표현하였다. 


이 범종은 이보다 1년 전(1686)에 제작된 통도사 동종과 크기만 다를 뿐, 활짝 핀 연화장식의 음통표현, 가운데 한 개만 돌출시킨 연뢰, 보살상 및 연곽대와 상·하대의 문양 등 모든 부분의 표현 방법에서 거의 흡사하다. 


종의 중간에는 이 종에 관한 내력이 기록되어 있고, 아래쪽에 보상화와 덩굴무늬를 새긴 화려한 띠가 있다. 명문에 의하면 이 종은 고려 문종 34년(1080)에 개성에서 만들었고, 조선 숙종 13년(1687)에 화성군 만의사 주지 도화승이 불교의식에 사용하고자 다시 주조하였다고 한다. 


이 종은 17세기 후반의 사실적인 범종 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종일 뿐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용뉴는 조선 후기 조각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수원화성사업소 홈페이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12월 5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53&content_id=cp05010053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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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팔달문동종(八達門銅鐘) (만의사대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출처 : 이뮤지엄 2017년 2월 1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331999900000200000#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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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동종

 

 

 

 

종 목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9호 (수원시)

명 칭

팔달문동종(八達門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76.07.03

소 재 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창룡문길 443 수원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수원시

상 세 문 의

경기도 수원시 문화관광과 031-228-3085

 
고려 1080년(문종 34) 2월, 개성에서 주조되어 수원 만의사에서 사용되다가 숙종 13년(1687) 3월, 만의사 주지승 도화가 다시 주조되었다. 정조 때 화성축성과 함께 파루용의 기능으로 전락하여 화성행궁 사거리(종로)에 종각 설치 후 이전되었으나 1911년 일제에 의해 정오 및 화재경보용으로 팔달문 누상으로 다시 이전 · 설치되어 팔달문동종으로 불리게 되었다. 1976년 7월 3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영통구 창룡문길 443 수원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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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팔달문동종 원본보기

 

설명 :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에 있는 조선 후기의 범종.

         1687년(숙종 13)작. 높이 122.7㎝, 입지름 75.8㎝.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관련항목 :
팔달문동종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에 있는 조선 후기의 범종. 1687년(숙종 13)작. 높이 122.7㎝, 입지름 75.8㎝.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9호. 원래는 경기도 화성군 만의사(萬儀寺))의 종으로 주조된 것이다.

음통(音筒)은 내부는 관통되었는데 입 언저리에는 앙련(仰蓮)을 장식하였다. 종신(鐘身)의 4면에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고, 상대 아래에는 4개의 유곽(乳廓)이 설치되었는데, 유곽대에는 보상화문이 둘러져 있으며 9개의 유두(乳頭)가 표현되었다.

그 유두 가운데 중앙의 것 하나는 유난히 돌출되었으며, 나머지 8개는 화문(花文)이 조각되어 특이한 종모양을 이루고 있다. 명문에 의하면 이 종은 1080년(문종 34)에 처음 만들어졌고, 1687년(숙종 13)에 개주(改鑄)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水原 八達門樓上의 銅鐘(李浩官, 考古美術 34, 1962.4)
≪참고문헌≫ 朝鮮後期 梵鐘의 硏究(安貴淑, 梵鐘 6, 1983)

출처 : 네이트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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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5일 발췌

 

만의사 대종(팔달문 동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이 범종은 현재 수원시 팔달문루에 걸려 있어 팔달문동종으로도 불린다.
 
1687년(숙종 13)에 만의사의 대종으로 주조되어 그 곳에 있던 종이 어떤 경위로 수원의 팔달문으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1796년 수원성이 중수될 때의 일이라고도 하고, 또는 일제 말 광복 직전에 공출되어 왔었는데 다행히 공납되지 않고 남아 있다가 광복 후에 현재의 팔달문 누각 2층에 매달아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종의 어깨 띠에는 두 겹으로 둥근 원을 만들고 그 안에 범자(梵字)가 씌어 있고, 아래 띠에는 보상화 문양이 있다.
 
종의 머리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엇갈려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용뉴(龍?, 종을 매다는 부분)를 만들고 있으며, 연꽃으로 언저리를 장식한 음통은 내부로 통하고 있다. 종의 몸체 네 곳에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고, 또 유곽이 있는데 유곽대에는 보상화 무늬가 둘러 새겨져 있다.
 
 
그 유곽 안에는 9개의 젖꼭지 모양 유두가 놓여져 있으나 가운데의 것 하나만 도드라져 있고, 나머지 8개는 꽃무늬로 새겨져 있는 것이 재미있다.

몸체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원래 이 종은 고려 11대 문종 34년인 1080년 2월에 절을 새로 세우면서 만들었던 것인데, 조선 19대 숙종 13년인 1687년 3월에 경기 수원부지동면 무봉산 만의사의 큰종으로 다시 주조하였고 무게는 700근이라고 하였다. 종의 높이는 122.7㎝이고, 지름은 75.8㎝이며, 두께는 7㎝이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9호

 (수원시)
  康熙26年 丁卯

  (조선 肅宗 13년, 1687)
  총 높이 122.7cm,

  종신 높이 97.6cm,
  용뉴 높이 18.2cm,

  음통 높이 22.8cm,
  종입 지름 75.8cm,

  종입 두께 8.5cm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동

  팔달문 2층 누각

용뉴에 1마리 용을 조각하였고, 그 아래 약간 오무라든 종의 몸체를 연결하였다. 전체적인 비례와 공간의 구조가 안정감있으며, 세부적인 묘사 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용뉴는 홍천 수타사종(1670), 김룡사 종(1670),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 등과 같은 수법으로 만들었다.
용은 큰 입을 벌리고 유난히 긴 뿔과 귀 등이 정교하고, 꼬리로 음통을 감는 등 대단히 복잡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음통 정상에는 활짝 핀 꽃을 생동감있게 장식하였다.

종의 위쪽에는 2단으로 정사각형의 구획을 나누고, 그 안에 범자를 양각하여 상대로 하였다.

상대에 잇대어 4좌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유곽 둘레에 덩굴무늬를 새겼다.
유곽 안에는 돌출된 보상화무늬의 9유가 배치되었는데, 중앙의 1유만이 지름 2.6cm, 높이 2.8cm의 연화봉오리 모양으로 돌출되어 있다.
이와 같이 중앙의 1유만을 크게 만든 경우는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 중앙(박) 옹정4년명종(1726년), 통도사 대웅전종(1772년) 등에서 볼 수 있다.

종의 중간에는 이 종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있고, 그 아래쪽에 보상화와 덩굴무늬를 새긴 연화당초문(蓮華唐草紋)의 하대가 있다.

특히 이 종보다 1년 전에 제작된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과는 크기만 다를 뿐, 활짝 핀 연화장식의 음통표현, 가운데 1개만 돌출시킨 종유(鐘乳), 보살상 및 유곽대와 상·하대의 문양 등 모든 부분의 표현 방법에서 거의 흡사하다.

명문에는
高麗國都邑太」 康6六年庚申二」 月日創建大鐘」 左於于後」 康熙二十六年丁」 卯三月日京畿水」 原府地東面舞」 鳳山萬義寺大」 鐘改鑄重七百斤」 
그리고 道和僧과 주종에 관계된 시주자 등 100여명의 인명이 나열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종은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에서 태강 6년 경신 고려 11대 文宗 34년(1080) 2월에 만든 종을 강희 26년 정묘 조선 숙종 13년(1687) 3월에 경기 수원 무봉산 만의사 주지 도화승이 중량 700근으로 불교 의식에 사용하고자 다시 주조하였다고 한다. 그 후 수원 팔달문으로 옮겨 온 연유는 알 수 없다.

자료출처 ;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문화재청
www.nohht.com.ne.kr

2007년 1월 25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