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홍천 수타사 동종 (보물 제11-3호)

korman 2007. 3. 31. 14:41

홍천 수타사 동종

사인비구 제작 동종-홍천 수타사 동종
(思印比丘製作 銅鍾-洪川 壽陀寺 銅鍾)
(Bronze Bell Cast by Buddhist Monk Sain)

 

종목 : 보물 제11-3호(2000년 2월 15일 지정), 수량 : 1구, 시대 : 조선시대, 소유 : 수타사

사인비구 제작 동종 - 홍천 수타사 동종(思印比丘 製作 銅鍾 - 洪川 壽陀寺 銅鍾)은 강원도 홍천군 수타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이다. 조선 현종 11년, 1670년에 제작되었다. 2000년 2월 15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은 문경 김룡사 동종과 같은 양식의 종으로 김룡사 동종과 함께 주종장(鑄鐘匠) 사인비구(思印比丘)의 완숙미와 독창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종이다.

 

개요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가운데 문경 김룡사 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현지 안내문

 

몸통 밑 부분에 1670년(현종11)에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문구가 있어,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조선 중기의 종이다.[2]

 

종의 몸통 윗 부분에는 인도의 옛 글자인 범자(梵字)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구름 위에 서서 양손으로 길다란 연꽃 가지를 쥐고 있는 4구의 보살입상이 있다. 보살입상 아래에는 종과 관련된 여러 기록들이 빙돌려 있는데, 종을 만든 시기와 종을 만드는데 참여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 네모난 틀 안에 새겨져 있다. 그 아래로는 종을 치는 당좌(撞座)가 4개 있는데, 마치 불꽃같이 화려한 모양이다.[2]

 

이 종은 당시 가장 유명한 종을 만드는 장인이었던 사인(思印) 비구가 주도하여 조성한 것이다. 다른 종들은 몸통과 종을 거는 고리 부분을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종은 따로따로 만들어 붙이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럼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고, 보존상태도 거의 완벽한데다 제작 방법도 독특하여 조선시대 중기의 범종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9%8D%EC%B2%9C_%EC%88%98%ED%83%80%EC%82%AC_%EB%8F%99%EC%A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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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수타사 동종 (보물 제11-3호)

 

 

 

 

종 목 보물  제11-3호

명 칭 사인비구 제작 동종-홍천 수타사 동종 (思印比丘製作 銅鍾-洪川 壽陀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00.02.15

소 재 지 강원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 수타사 (덕치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수타사

관리자(관리단체) 수타사

 

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가운데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주변에 굴곡진 화문을 첨가한 독특한 당좌로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룡사 동종이 만들어진 1670년에 그 보다 3개월 뒤에 만들어진 종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우리지역문화재 창 2017년 3월 17일 현재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2,00110300,32

======================================================================2014년 2월 13일 발췌

 

 

 

출처 : 수타사 사이트 2014년 2월 13일 현재

http://www.sutasa.org/bbs/board.php?bo_table=02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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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31일 발췌

 

康熙 9年 庚戌(1670), 청동, 전체높이 110.0cm, 종높이 83.0cm, 입지름 74.0cm, 주종장 사인·태행·도겸·담행·기생·기임, 강원도 홍천 수타사, 보물 제11-3호
수타사 종은 사인 스님이 김룡사종을 만들고 3개월이 지난 뒤에 제작한 종이다. 현재 종가에 걸려 있는 이 종은 김룡사 종과 형태가 같지만 높이와 폭은 10cm 가량 크다. 종신의 문양은 김룡사 종의 상대, 연곽, 보살상, 하대 문양의 지문판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무늬와 크기가 동일하다. 다만 당좌는 커진 종크기에 맞추어 다시 도안했는지 문양이 커지고 원 안의 연꽃잎 수가 8엽으로 늘어났으며, 원 밖의 장식은 잎사귀 3개가 결합되어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하대 문양은 김룡사 종의 경우 5번 반 정도 지문판이 돌아갔지만 수타사 종은 지문판을 6번 온전하게 사용하였다.

 

 

종목 : 보물   11-3호

명칭 : 홍천수타사동종 (洪川壽陀寺銅鍾)

분류 : 동종류

수량 : 1구

지정일 : 2000. 02. 15

소재지 : 강원 홍천군 동면 덕치리 9 수타사

시대 : 조선 현종

관리자 : 홍천군

지정문화재 사인비구주성동종 (보물 11)

 

설명 :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가운데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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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발췌

 

보물 제11-3호
康熙 9年 庚戌 五月(顯宗 11년 1670), 청동,
총 높이 110.0cm, 종신 높이 83.0cm,
음통 높이 21.0cm, 당좌 연화 지름 11.0cm,
종입 지름 74.0cm, 종입 두께 8.5cm
주종장 ; 사인 · 태행 · 도겸 · 담행 · 기생 · 기임,
강원 홍천군 동면 덕치리 수타사

수타사 종은 사인비구(思印比丘)스님이 김룡사종을 만들고 3개월이 지난 뒤에 제작한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현재 종가에 걸려 있는 이 종은 김룡사 종과 형태가 같지만 높이와 입지름은 10cm 가량 크다.
종신의 문양은 김룡사 종의 상대, 연곽, 보살상, 하대 문양의 지문판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무늬와 

크기가 동일하다. (홍천 수타사와 문경 김용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다만 당좌는 커진 종크기에 맞추어 다시 도안했는지 문양이 커지고 원 안의 연꽃잎 수가 8엽으로 

늘어났으며, 원 밖의 장식은 잎사귀 3개가 결합되어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하대 문양은 김룡사 종의 경우 5번 반 정도 지문판이 돌아갔지만 수타사 종은 지문판을 6번 온전

하게 사용하였다. 

명문은 종체의 시주와 별도로 용두의 시주를 분리하여 따로 명기하고 있다. 이는 용두를 따로 

제작하여 별도로 종체에 융착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단용의 머리는 크고, 입을 크게 벌려 큰 윗이빨과 혀가 돌출되어 있고, 사나운 용의 놀란 표정은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용의 형상은 대복사종, 강화동종, 등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음통은 용신과 용꼬리로 나선형으로 감았는데, 이와 같은 양식은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

안성 청룡사종(1674년), 봉은사 강희 21년명 종(1682) 등에서 볼 수 있다.

천판은 반구형으로 둥글고, 상대는 범자인 산스크리트어 34자와 「六字大明眞言」으로 된 1개를

 합친 35군으로 형성되고, 하대는 용과 연꽃, 보상화문양을 혼용한 지문판을 사용하였다.

유곽은 상대에서 분리하였고, 유곽대는 等幅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 반융기형 유두와 3중엽으로

 된 6판의 연화유좌를 갖고 있다. 4구의 보살입상은 구름위에서 연화를 들고 불공을 드리는
 모습이다.
유곽대의 문양과 보살상은 김룡사(1670), 안성 청룡사종(1674년)과 동일하다

명문에는 종 제작에 참가한 인적사항이 명기되어 있다.
康熙 9年 庚戌 五月日」 原讓道洪川郡」 孔雀山水墮寺鑄鐘記文」.....중략....」 

鑄鐘畵員 比丘 思仁, 太行, 道兼, 淡行, 起生, 起林」 龍頭施主 持殿, 學俊」 
강희 9년은 顯宗 11년 (1670)이고,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 있는 공작산 수타사의 주종에 관한 

경위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자료출처 ;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직지성보박물관
문화재청
www.nohht.com.ne.kr
2007년 3월 2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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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5일 발췌


홍천 수타사 동종










 
출처 : 불교문화사랑  
 






 

제     홍천수타사동종
구분    홍천 구분번호    8 
지역    홍천 소유자    수타사 
지정일자    2000-02-15 관리자    홍천군 
소재지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9 수타사
 
이 범종(梵鐘)은 수타사(壽陀寺)의 대적광전(大寂光殿) 앞 마당에 있는 흥회루(興懷樓)의 한쪽 켠에 보관되고 있다. 이 종은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주종장(鑄鐘匠)이었던 사인 비구(思印 比丘)가 남긴 8개의 작품 중에서도 완숙미와 독창성이 가장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는 가장 뛰어난 종이다. 이 종은 음통(音筒)을 갖춘 종 정상부의 천판(天板)이 둥굴어져 포탄 모양을 한 몸체에 상·하대(上·下帶)의 문양대(紋樣帶)와 유곽(乳廓), 보살상(菩薩像), 당좌(撞座) 등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고 몸통을 빙돌아 양각한 주종기(鑄鐘記)가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손상된 곳이 한 군데도 없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용뉴(龍뉴)를 포함한 종의 전체 높이가 110cm이며, 종구(鐘口)의 바깥지름이 74cm인 중간 크기의 종이다. 음통과 네모꼴 유곽, 상·하대의 문양대 등 신라종(新羅鐘) 양식(樣式)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종으로, 조선 현종과 숙종대(1660∼1720)의 대표적 주종장 사인 비구가 주도하여 조성한 것이다. 몸체 중간을 빙둘러“신라 초에 창건되었으나, 임진란 병화(兵火)로 빈터만 남은 지 오래되어 무궁히 한탄한 나머지 숭정병자년(崇禎丙子年, 1636)에 중창하였으며, 그 후 순치무술년(順治戊戌年, 1658)사이에 모든 법당(法堂)과 갖가지 불구(佛具)를 갖추었다. 그러나 다만 종이 없어 사승(寺僧) 정특(正特), 대상(大尙), 천읍(天揖) 3인이 권선문을 돌리고 주종화원(鑄鐘畵員) 사인(思印)을 위시한 태행(太行), 도겸(道兼), 담행(淡行), 기생(起生), 기림(起林) 등이 참여하여 강희(康熙) 9년(1670)에 종을 만들었다”는 주종기문(鑄鐘記文)이 남아 있어 수타사의 내력과 종의 주성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특히 주종기문 중에 용두시주(龍頭施主)를 별도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점은 종 몸체와 용두를 구분하여 화주(化主)하고 별도로 주조(鑄造)하여 접합하였음을 알려주는 특기할 만한 예(例)라 하겠다. 종 정상의 龍뉴는 꼭대기의 활짝 핀 연꽃과 몸체에 마디를 두어 장식을 함으로써 꾸밈의도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음통과 함께 궁륭형 천판을 움켜쥐듯 내딛고 있는 억센 발의 표현, 입과 네 다리의 갈기, 음통을 꼬리로 휘감고 있는 몸통의 지느러미, 사슴뿔 모양의 뿔과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려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머리의 표현 등이 다소 과장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역동적(力動的)인 모습을 한 용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특히 용뉴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인 쌍룡(雙龍)이 아니라 단룡(單龍)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판의 몸체가 만나는 종 어깨에는『육자대명왕진언(六子大明王眞言, 옴·마·니·반·메·훔)』이 6회 주회(周回) 하였다. 이어서 바로 그 밑으로는 신라종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사다리꼴 유곽(17.3×19.6×18.0cm)이 네 개 마련되었는데, 주위로는 파상형(波狀形)의 당초문양(唐草紋樣)을 두르고 내부에 육화형(六花形)의 유좌(乳座)를 바탕으로 돌기형 유두(乳頭)가 장치되어 있다. 그리고 각 유곽(乳廓)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좌대(雲座)에 두광(頭光)을 갖추고 연꽃(蓮花)가지를 들고 죄향(左向)으로 서 있는 보살상(7.0×23.5cm)이 4구(軀) 배치되었는데 섬세한 필치의 선각(線刻)으로 한 본을 사용하였다. 종구(鐘口)에 잇대어 둘러져 있는 하대(下帶, 폭 9.2cm)는 연화문(蓮花紋)과 보상화문(寶相花紋)을 혼합 구성한 사이에서 한 마리의 용(龍)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장면을 한 틀(길이 43.5cm)로하여 5회를 반복하여 꾸며 놓았는데, 회화성(繪畵性)이 넘쳐나 주종장 사인의 원숙한 사실주의를 엿보게 한다. 이 종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이전의 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당좌(撞座)의 모습으로, 각 유곽(乳廓) 아래 종 하단부에 자리하였다.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을 이루는 이 당좌는 지름이 11cm인 2중원을 마련하여 중앙에는 네 개의 자방공(子房孔)이 있는 8엽 연화문을, 주위에는 우회(右回)하는 13엽의 연꽃잎을 장식한 다음 상·하·좌·우 네 곳에 각각 보상화문을 배치하였다. 이는 사인 비구가 주도하여 만든 1670년대의 종들에서만 보이는 희귀한 例로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면을 개척해 나가는 창조성이 돋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종을 만든 사인비구(思印比丘)는 신라(新羅) 이래 사원 세습으로 내려오던 승장(僧匠)의 맥을 이은 마지막 거장(巨匠)이며, 전통수법의 재현과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構築)하면서 창조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조명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불교(佛敎) 공예미(工藝美)를 표출시킨 명장(名匠)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朝鮮) 현종(顯宗)·숙종대(肅宗代)[1660∼1720]의 뛰어난 주종장(鑄鍾匠)이었던 사인비구가 주성한 동종은 총 8구가 남아 이쑈는데, 모두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 ① 경북 포항보경사서운암동종(浦項寶鏡寺瑞雲庵銅鍾), ② 경북 문경김룡사동종(聞慶金龍寺銅鍾), ③ 강원 홍천수타사동종(洪川壽陀寺銅鍾), ④ 경기 안성청룡사동종(安城靑龍寺銅鍾), ⑤서울 화계사동종(華溪寺銅鍾), ⑥ 경남 양산통도사동종(梁山通度寺銅鍾), ⑦ 경기 의왕청계사동종(儀旺淸溪寺銅鍾), ⑧인천 강화동종(江華銅鍾)이다.

2006년 11월 5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