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거창 고견사 동종 (居昌 古見寺 銅鍾) (보물 1700호)

korman 2007. 3. 31. 13:59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36> 현등사 소장 봉선사종, 고견사 소장 종, 보광사종

 

17세기 천보스님 ‘범종 장인’의 시작을 알리다

 

전란(戰亂)의 격동기를 거친 17세기 전반에 들어오면 사찰마다 전쟁에 소실된 종을 만드는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승려 장인의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다. 16세기 후반까지 승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범종은 주로 전통형을 따르고자 노력한 반면에 17세기에 들어와 뛰어나 기량을 보인 천보(天寶)스님은 쌍룡의 용뉴와 범자문, 화려한 운룡문과 같은 중국종 계열을 따르고 있음이 독특하다. 그는 17세기 전반부터 중엽에 걸쳐 활약한 승려 장인으로서 현등사 소장의 봉선사종(奉先寺鐘), 고견사 소장의 견암사종(見岩寺鐘), 보광사종(普光寺鐘) 등 현재까지 그에 의해 제작된 3점의 범종이 확인되며 근래에 들어 그 진가를 평가받아 두 점이 보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가평 현등사 소장 봉선사종

    17세기 각 사찰에서는 승려 장인들의 범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평 현등사 소장 봉선사종.

 

조선 후기의 범종의 시작이자 17세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승려 장인의 범종이 바로 가평 현등사(懸燈寺)에 소장된 만력(萬曆) 47년명 범종(1619)이다. 본래 봉선사종(奉先寺鐘)으로 제작된 것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현등사로 이전되었다고 전해진다. ‘봉선사종명병서(奉先寺鍾銘幷序)’로 시작되는 종신의 명문에 의하면 ‘세조를 위해 정희왕후(貞熹王后)와 예종(睿宗)이 세운 봉선사가 임진왜란 때 훼손되자 1613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617년에는 삼세상(三世像)을 조성하였으나 종이 없어 1618년에는 권선문을 돌려 시주를 받아 1619년에 주성했다는 내용과 시주 내역, 시주자 이름’이 종신에 가득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천보(天寶) 스님은 종 제작을 총괄한 제작자이면서 명문을 쓴 화주(化主)로 기록되었는데(化主天寶謹作 書刻), 종 형태와 문양, 종에 쓴 명문 등의 유사성을 통해 이후에 만들어진 고견사종(1630)과 보광사종(1634)을 주성한 설봉 천보(雪峰天寶)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천보스님이 제작한 종의 명문을 분석해 보면 1630년에 만들어진 고견사종에는 ‘도대장미지산설봉사문천보(圖大匠彌智山雪峯沙門天)’라는 명칭으로 치죽, 득남, 득일(緇竹, 得男, 得一) 스님의 조역을 받아 제작하였고 다시 보광사종(1634)에는 ‘주성도대장설봉자(鑄成圖大匠雪峯子)’ 라는 설봉자란 호와 대장의 직함을 함께 사용하였다.

 

검은 색조를 띤 현등사종의 전체적인 외형은 한국 전통종 보다 중국종 계열을 따르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불룩이 원구형으로 솟아오른 천판 위로는 음통 없이 두 마리의 쌍용으로 구성된 용뉴와 그 바깥의 주위에는 사각으로 된 복판의 연화문을 상대(上帶)처럼 둥그렇게 시문하였다. 종 몸체 중단에 둘러진 3줄의 융기선 횡대를 중심으로 위 아래로 나누어 윗 단에는 위로부터 연판문대와 사다리꼴로 이루어진 연곽대, 그리고 그 옆으로는 범자문과 대좌 위에 앉은 불좌상(佛坐像)을 번갈아 가며 시문한 모습이다. 특히 불좌상 옆으로 위패형의 범자문대를 두고 그 옆에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이란 문구를 도드라지게 새기 것은 이후 조선후기 범자 다라니의 선행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종신의 중단 아래로는 3줄의 융기선을 둘러 3구로 구획하였는데 바로 아래에는 연당초문대를 둘렀다. 그리고 그 아래로 종신 전면을 돌아가며 긴 내용의 양각명이 새겨져 있다. 이 명문구 아래로 다시 1줄의 융기선을 돌리고 종구에서 조금 떨어진 상부 쪽으로 파도문과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격동적인 모습의 용무늬를 번갈아가며 빽빽이 시문하였다. 이처럼 종신 전체를 빠짐없이 장식하는 것은 중국종의 특징이지만 연판문과 중대의 보상화당초문, 하대의 파도문 등은 조선 전기의 해인사종(1491)의 문양을 계승하거나 약간 변형시킨 모습이다. 1469년에 만들어진 봉선사 대종과 달리 법당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종은 천보스님이 만든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준작으로 의미가 깊으며 이후 11년이 지난 고견사종에 이르면 천보스님의 작품성이 더욱 두르러져 승장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정립해 나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신문3415호/2018년8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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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고견사 동종 (居昌 古見寺 銅鍾) (보물 1700호)













종 목 보물  제1700호

명 칭 거창 고견사 동종 (居昌 古見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10.12.21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 고견사 (수월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고견사
관리자(관리단체) 고견사


고견사 대웅전에 봉안 중인 이 작품은 1630년(인조 8년)에 견암사 동종으로 제작한 것이다. 동종에 기재된 견암사는 고견사와 동일한 사찰을 말한다. 667년(문무왕 7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 할 당시에 사명은 고견사였지만, 1271년(고려 원종 2년)에 고견사가 거제에 이속되면서 견암사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운현(雲賢), 금복(金福), 종해(宗海)세 분의 스님이 중창하면서 고견사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고견사 동종은 전체높이가 97.2cm이고, 입지름이 59.7cm로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큰 편이다. 전체적으로 옅은 붉은색을 띠는 동종은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위에 음통을 갖추지 않은 쌍룡의 종뉴를 표현하였는데, 특이하게 용의 이마에 ‘왕(王)’자를 새겨 놓았다. 동종은 마치 포탄을 엎어 놓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천판에서 시작된 외선이 종신 중단까지 완만한 곡선을 보이다가 하단에서 갑자기 직선으로 내려와 시각적으로 종구가 좁아진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종신은 3줄의 횡선을 이용하여 상ㆍ하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도안을 장엄하였다. 먼저 구획된 상단을 살펴보면, 천판 아래에는 넓은 연판문을 부조하였고, 그 밑으로 연곽 4개가 사다리꼴 형태로 배치되었다. 연곽대는 당초문을 사용하였으며, 그 안에 9개의 만개된 연뢰를 표현하였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불좌상, 불탑, 범자문, 위패 등을 배치하였는데, 4면 모두 동일한 형태이다. 그 아래에는 연화당초문을 사용하여 띠 장식을 장엄하였다. 이러한 상단의 표현에서 주목되는 것은 연곽 사이에 부조된 불좌상, 불탑, 범자문, 위패 등이다. 이 가운데 불좌상과 불탑은 기존의 양식과 차별된 형태로 조선시대 동종에서 그 선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표현이다. 불좌상은 사각과 연화로 구성된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형태로 구품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불탑은 탑신과 옥개석이 갖춰진 3층의 형태가 연꽃 위에 표현되었다. 상단에 비해 하단은 그 구성이 단순한 편이다. 구획된 하단에는 제작연대를 기록한 주성기를 기준으로 위에는 연화당초문과 아래에는 수파ㆍ운룡문을 장엄하였는데, 특히 주성기 아래에 수파ㆍ운룡문은 역동적인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고견사 동종의 명문은 조선후기 일반적인 동종과 다르게 사찰의 연혁, 동종 제작에 소요된 실제기간, 제작에 들어간 물품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기문(記文) 형태라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명문을 통해 동종의 제작 장인은 도대장미지산설봉사문천보(圖大匠彌智山雪峯沙門天宝)를 비롯하여 치죽(緇竹), 득남(得男), 득일(得一) 등이 참여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범종은 조선 후기 범종 중에서도 17세기 전반 승장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설봉(雪峯)이 만든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점과 함께 보관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세부 문양 등의 주조 기술이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검색창 2017년 3월 18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700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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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사 동종
 



고견사 동종
• 코드: cp0501b00401 
• 명칭 : 고견사동종 
• 지정 : 문화재자료 170호(경남) 보물 1700호
• 조성연대 : 조선 인조 8년(1630) 
• 제원 : 전체높이 100.5㎝, 종신 78.0㎝, 입지름 59.0㎝ 
• 소재지 : 거창 고견사 
• 관리자 : 거창 고견사 

• 설명 

이 범종은 숭정(崇禎) 3년에 만들어졌으며 중국종과 한국종이 혼합된 형식을 띤다. 재질은 청동이며 주종장은 설봉천보(雪峰天寶), 치죽(緇竹), 득남(得男), 득일(得一)이다. 

쌍룡의 용뉴는 매우 사실적으로 조성되어 있고 굳건한 네 발로 천판을 힘차게 움켜잡고 있다. 용뉴와 함께 고견사 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문양은 4좌의 연곽 사이에 배치된 여래좌상이다. 법화경의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표현한 듯 연화좌 위에 두광과 배광을 갖추고 설법인을 취한 여래가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연꽃위에 삼층탑이 올려져 있다. 여래좌상마다 왼쪽에는 '堯時舜舞永息千戈' · '佛日曾煇法輪相轉' · '國王千秋國民安樂' · '聞此法音與成法道'등을 새긴 연꽃받침의 원패 4구가 자리하고 있다. 연곽 왼쪽과 여래좌상 오른쪽에는 세로로 '옴마니'와 '반메훔'의 범자를 나누어 표기하였다. 굵은 횡대를 경계로 상대에 화려한 귀꽃장식이 있는 연판무늬가 돌아가고, 종복에는 폭 좁은 연화당초무늬와 넓은 보상화당초무늬로 구성된 2단 무늬가 있으며, 종구에서 9㎝ 올라온 곳에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파도 사이에 유유히 날고 있는 용을 배치해 극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도안한 하대가 감싸고 있다. 종신의 명문은 고견사의 내력과 조성연유를 적었으며 글쓴이는 설봉 스님이다. 설봉 스님 앞에는 '圖大匠'이란 칭호와 함께 그의 출신을 짐작하게 하는 '彌智山'이 기록되어 있다. 미지산은 양평 용문산의 옛 이름으로 설봉 천보의 본래 활동지가 경기도 북부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사찰 홈페이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17&content_id=cp05010017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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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31일 발췌
 
崇禎 3年 庚午(1630), 청동,  전체높이 100.5cm, 종높이 78.0cm,  입지름 59.0cm,  주종장 설봉 천보·치죽·득남·득일,  경남 거창 고견사

고견사 종을 제작한 주종장은 설봉 천보雪峰天寶 스님과 그를 보조했던 치죽緇竹, 득남得男, 득일得一 스님 등이다. 설봉 스님 앞에는 '圖大匠'이란 칭호와 함께 그의 출신을 짐작케하는 '彌智山'이 기록되어 있다. 미지산은 양평 용문산의 옛 이름으로 설봉 천보의 본래 활동지가 경기도 북부였음을 알 수 있다. 종신의 명문은 현등사종과 같이 고견사의 내력과 조성연유를 적었으며 글쓴이는 설봉 스님이다. 이 종 역시 중국종과 한국종이 혼합된 형식이다. 쌍룡의 용뉴는 정상에 여의주가 있고 그 위에 5가지로 된 받침 장식이 있는 특이한 모양이다. 용뉴와 함께 고견사 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문양은 4좌의 연곽 사이에 배치된 여래좌상이다. 법화경의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표현한 듯 연화좌 위에 설법인을 취한 여래가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연꽃위에 삼층탑이 올려져 있다. 여래좌상마다 왼쪽에는 '堯時舜舞永息千戈' · '佛日曾煇法輪相轉' · '國王千秋國民安樂' · '聞此法音與成法道'등을 새긴 연꽃받침의 원패 4구가 자리하고 있다. 연곽 왼쪽과 여래좌상 오른쪽에는 세로로 '옴 · 마 · 니'와 '반 · 메 · 훔'의 범자를 나누어 표기하였다. 굵은 횡대를 경계로 상대에 화려한 귀꽃장식이 있는 연판무늬가 돌아가고, 종복에는 폭 좁은 연화당초무늬와 넓은 보상화당초무늬로 구성된 2단무늬가 있으며, 종구에서 9cm 올라온 곳에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파도 사이에 유유히 날고 있는 용을 배치해 극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도안한 하대가 감싸고 있다.
 2007년 3월 31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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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사 동종

古見寺 銅鐘

 

 

 

 

 

  문화재자료 제170호 (경남 거창군) 보물 1700호로 승격
  崇禎 3年 庚午(仁祖 8년 1630), 청동,
  총 높이 100.5cm, 종신 높이 62.0cm,
  용뉴 높이 22.5cm,
  종입 지름 59.0cm, 종입 두께 4.0cm
  여래상 크기 폭 9.5 x 높이 17.0cm,
  중대 폭 13.0cm, 명문대 폭 7.0cm, 하대 폭 7.0cm,
  주종장 ; 설봉 천보, 치죽, 득남, 득일,
  경남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고견사

이 종 역시 중국종과 한국종이 혼합된 형식이다.
쌍룡의 용뉴는 정상에 여의주가 있고 그 위에 S자로 굽은 5개로 된 받침 장식이 있는, 다른 종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식이다. 특이한 모양이다.

종견에는 화려한 귀꽃장식이 있는 연판무늬로 된 견대가 있고, 상대는 없다.
견대 아래에는 4좌의 유곽, 4구의 여래좌상, 4개의 위패형 명문 등이 있다.

용뉴와 함께 고견사 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문양은 4좌의 유곽 사이에 배치된 여래좌상이다.
법화경의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표현한 듯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연화좌 위에 한 손은 기슴근처에 들고, 다른 손은 복부에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받치고 있는 모양의 설법인을 취한 여래가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연꽃위에 삼층탑이 올려져 있다.
여래좌상마다 왼쪽에 각각 '堯時舜舞永息千戈' · '佛日曾煇法輪相轉' · '國王千秋國民安樂' · '聞此法音與成法道' 등을 새긴 연꽃받침의 위패모양의 원패가 자리하고 있다.

유곽 왼쪽과 여래좌상 오른쪽에는 세로로 '옴 · 마 · 니'와 '반 · 메 · 훔'의 범자를 나누어 표기하였다. 이런 문양은 보광사 종에서도 볼 수 있어 이 종의 주성자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대는 굵은 3선의 황대를 경계로 위로 폭 좁은 연화당초무늬와 아래로는 넓은 보상화당초무늬로 구성된 2단무늬가 폭 13cm의 넓이로 조식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 역시 폭 13cm의 명문대를 이루고 있다.

명문에는 「 崇禎三年庚午五月日.......... 중략 ........圖大匠 雪峰沙門 天寶, 緇竹, 得男, 得一」 이라는 내용이 있다. 
崇禎 三年 庚午는 조선 仁祖 8년 (1630)이고,
주종장은 설봉 천보(雪峰 天寶) 스님과 그를 보조했던 치죽(緇竹), 득남(得男), 득일(得一) 스님 등이다. 설봉 스님 앞에는 '圖大匠'이란 칭호와 함께 그의 출신을 짐작케하는 '彌智山'이 기록되어 있다. 미지산은 양평 용문산의 옛 이름으로 설봉 천보의 본래 활동지가 경기도 북부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은 현등사종과 같이 고견사의 내력과 조성연유를 적었으며 글쓴이는 설봉 스님이다.

종구에서 9cm 올라온 곳에서부터 위쪽으로 7.0cm간격의 굵은 선을 긋고 그 사이에 龍紋을 조식한 하대가 있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파도 사이에 유유히 날고 있는 용을 배치해 극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도안한 하대가 감싸고 있다.
종표면에서 운용문이 나오는 것은 조선 후기의 해인사종(1491), 보광사종(1634)과 용흥사 종(1644)이 있다.

이 종은 중국양식의 굵은 太條線이 여러곳에 있다. 견대, 중대의 상하. 하대의 아래 위 등에 조선이 돌려져 있다. 이같은 조선은 중국식종 및 조선 초기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이 종에서도 그 와 같은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종의 두께는 종 하단에서 9cm까지는 4.0cm으로 동일하며. 종 하단에서부터의 두께변화 처리는 일반 조선종양식을 따르지 않아 다른 종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이다.
 
자료출처 ;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직지성보박물관
문화재청
www.nohht.com.ne.kr (원본)
2007년 3월 31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