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광주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 (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15호)

korman 2007. 2. 17. 18:37

2014년 2월 13일 발췌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 (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

 

기본정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총 높이 86㎝, 몸체 높이 66㎝, 입 지름 63㎝인 범종이다.

종을 매다는 부분인 용뉴는 각각 여의주을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용머리 위에도 불꽃에 휩싸인 1개의 여의주을 장식하였다. 용머리 장식이나 발의 조각기법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음통을 대신하여 종의 윗부분에 2㎝ 정도의 구멍을 종의 윗부분에 뚫었다.

종 위쪽 띠에는 범자 문양 띠를 둘렀으며, 띠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이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되었다. 유곽과 보살상 사이에 왕실의 안녕을 비는 글이 새겼다. 유곽 안에는 연꽃무늬의 바탕에 연봉오리 모양의 9개의 유두가 도드라지게 새겨 있다. 유곽 아래에 새긴 글로 보아 이 종이 숙종 36년(1710) 만수사에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은 몸체 높이와 입지름의 비율이 거의 1:1로 전형적인 조선종의 비율을 지니고 있으나, 용뉴 부위의 표현이 경직되고 음통대신 음구멍을 넣는 등 양식의 퇴화가 엿보인다. 또 당좌 및 하대의 문양이 없어지는 등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이 나타나는 점에서, 범종의 양식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 : 문화재청>


주소:  광주 북구 무등로 1550(금곡동) | 전화번호 : 062-266-0326
문화재 지정현황 : 유형문화재 제15호 | 문화재 제작연대 : 1710(조선 숙종 36)

 

출처 : 광주시문화재사이트 2014년 2월 13일 현재

http://utour.gwangju.go.kr/utour/culture.do?S=S01&M=020200000000&b_code=CULTURE_KOR&tour_cg=TOUR002&orderby=HIT&act=view&list_no=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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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발췌

 

 

 출처 : 원효사 사이트 2014년 2월 1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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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 2009년 9월 13일 현재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15호
명   칭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 (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
분   류
수   량 1구
지정일 1989.03.20
소재지 광주 북구 금곡동 209-13
소유자 원효사
관리자 원효사
설    명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총 높이 86㎝, 몸체 높이 66㎝, 입 지름 63㎝인 범종이다.

종을 매다는 부분인 용뉴는 각각 여의주을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용머리 위에도 불꽃에 휩싸인 1개의 여의주을 장식하였다. 용머리 장식이나 발의 조각기법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음통을 대신하여 종의 윗부분에 2㎝ 정도의 구멍을 종의 윗부분에 뚫었다.

종 위쪽 띠에는 범자 문양 띠를 둘렀으며, 띠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이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되었다. 유곽과 보살상 사이에 왕실의 안녕을 비는 글이 새겼다. 유곽 안에는 연꽃무늬의 바탕에 연봉오리 모양의 9개의 유두가 도드라지게 새겨 있다. 유곽 아래에 새긴 글로 보아 이 종이 숙종 36년(1710) 만수사에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은 몸체 높이와 입 지름의 비율이 거의 1:1로 전형적인 조선종의 비율을 지니고 있으나, 용뉴 부위의 표현이 경직되고 음통대신 음구멍을 넣는 등 양식의 퇴화가 엿 보인다. 또 당좌 및 하대의 문양이 없어지는 등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이 나타나는 점에서, 범종의 양식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범종은 조선시대의 종으로 원효사 대웅전에 보관해 왔으나 새 종을 주조하여 대체하고 현재는 요사체인 무등선원(無等禪院)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범종에 새겨진 여래상과 유곽(乳廓)아래“강희사십구년경인사월일추월산만수사대종주성야(康熙四十九年庚寅四月日秋月山萬壽寺大鍾鑄成也)”라는 명문이 양각되어 있어 이 종이 1710년에 주조된 담양 추월산 만수사의 대종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 원효사로 옮겨졌는지 알 수 없다. 이 범종의 규모는 총고(總高)86cm, 구경(口徑)63cm로 용뉴(龍紐)는 쌍룡인데 각기 여의주를 하나씩 입에 물고 있으며 쌍룡이 결합된 정상부에도 화염에 쌓인 여의주를 장식하였다. 천판상부에는 소리를 내는 원형의 음공(音孔)을 2cm 크기로 마련했으며 천판(天板)에서 종신부(鍾身部)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범자대(梵字帶)를 둘렀고 그 아래는 4개의 장방형 유곽(乳廓)과 4구(軀)의 여래입상을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하였다. 이 범종은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이 나타나는 점에서 전기 범종의 퇴화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출처 : 문화재청 2009년 9월 1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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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64&content_id=cp050100640001&search_left_menu=3


2007년 5월 13일 발췌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종. 1710년(숙종 36) 제작.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 높이 86cm. 이 종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18세기 초반부터 많은 수의 범종을 제작한 사장(私匠) 김성원(金成元)이 옥천사종(玉泉寺鐘)보다 2년 뒤인 1710년에 만든 종이다. 명문에 따르면, 원래는 담양 추월산(秋月山)의 만수사종(萬壽寺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김성원은 실상사종(實相寺鐘, 1694년)을 제작한 김상립(金尙立)의 아들로서 선암사종루종(仙巖寺鐘樓鐘, 1700년)까지는 형제들과 함께 제작에 참여하나 옥천사종부터 독립된 수장(首匠)으로 활동하게 된다.

종신 중앙부까지 내려온 네 방향의 유곽(乳廓)은 김성원 특유의 빗살형 유곽대와 그 내부에 마치 별처럼 도식화된 원형 연화좌(蓮花座) 위에 十자형 홈을 판 종유(鐘乳)가 얕게 돌기되었다. 유곽과 유곽 사이마다 원형 두광을 두른 합장형의 보살입상이 1구씩 부조되었는데, 옥천사종과 달리 구름 위에 표현되었다.

또한 한쪽 보살상과 유곽 사이에‘主上三殿下(주상삼전하)’라는 명문판을, 다시 종신의 하부면을 돌아가며 별도의 명문판을 두어 주조와 관계된 인명을 돋을새김하였다. 이 아fot부분에는 아무 문양이 없으나 1954년 원효사 대웅전을 중수할 당시의 시주자 이름이 추각(追刻)되었다.

선암사종에 표현된 화려한 유곽과 커다란 위패형(位牌形) 장식이 생략되고 옥천사종과 양식상 거의 비슷한 김성원 고유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옥천사종에 비하여 그 크기는 커진 반면, 범자문은 오히려 도식적으로 표현되는 등 아직까지 완숙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韓國梵鐘에 관한 硏究 -朝鮮朝鐘의 特徵 -(廉永夏, 梵鐘 11, 1988)
≪참고문헌≫ 文化財圖錄(光州直轄市, 1990.5)
출처 : 엠파스백과 2007년 5월 1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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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元曉寺) 강희사십구년명(康熙四十九年銘) 범종(梵鍾)(2-89, 3-67) 


소재지(所在地) :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 북구(北區) 금곡동(金谷洞) 846

연 대(年 代) : 1710年(숙종(肅宗) 36年, 강희(康熙) 49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85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7cm, 

유곽장(乳廓長); 16×17cm, 구경(口徑); 63cm, 종신고(鍾身高); 71.5cm, 용통경(甬筒徑); cm, 

대폭(下帶幅); cm 종구후(鍾口厚); 6cm, 용뉴고(龍鈕高); 13.5cm, 천판경(天板徑); 42.5cm, 

유곽폭(乳廓幅); 2cm, 당좌경(撞座徑); cm


 동종(銅鍾)의 정상(頂上)에는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龍鈕)를 구비하고 있으며 정상

(頂上)의 형태는 중앙에 경(徑) 2cm정도의 원공을 갖춘 반구형(半球形)이다. 천판(天板)인 

종정부(鍾頂部)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1조(條)의 융기된 태선대(太線帶)를 돌려 구

분(區分)하고 그 밑으로 상대(上帶)로 보이는 위치에 경(徑) 7cm정도의 원좌에 범자(梵字)

를 갖춘 문양대(紋樣帶)를 돌려 장식하였다.

 종신(鍾身)에는 독립되게 떨어져 있는 유곽 4개(個)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있고, 유

곽문양은 사격문을 엇비슷하게 교대로 장식 처리하였고 화좌에 자방이 돌기된 9유두를 갖

추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과 보관을 갖춘 22cm 높이의 보살입상 4구(軀)를 

배치하였다. 이중 1구(軀)의 보살입상 바로 밑으로 ‘강희(康熙)四十九年경인(庚寅)四月日’ 

‘추월산만수사대종주성야(秋月山萬壽寺大鍾鑄成也)’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주조년대(鑄造年

代)를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여러 곳에도 양주(陽鑄)된 명문(銘文)과 후각(後刻)한 명문(銘

文) 등이 보인다.

 하대(下帶)는 이 당시의 범종 등에서 공통으로 보이듯 아무런 장식이 없다.

 강희(康熙) 49年 경인(庚寅)은 숙종(肅宗) 36年(1710)이며, 추월산(秋月山) 만수사대종(萬

壽寺大鍾)으로 주조(鑄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