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종각 범종 (海印寺 鐘閣 梵鍾)
자료보완 : 2023년 1월 25일
문화재명 : 해인사 종각 범종 (海印寺 鐘閣 梵鍾)
지정사항 : 시도유형문화재
소재지 : 경상남도 협천군 가야면 치인리(慶尙南道 陜川郡 伽倻面 緇仁里)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의식법구
시대 : 조선 범종(朝鮮 梵鍾)
년대 : 조선(朝鮮) 후기(後期
요약정보
정상(頂上)은 반구형(半球形)에 일체쌍두형(一體雙頭形)의 용뉴(龍?)를 갖추고 있으며 상대(上帶)가 조식(彫飾)된 부분 가까이 1조(條)의 융기태선(太線)을 돌려 정부(頂部)와 종신 (鍾身)을 구분(區分)하였다. 폭(幅) 8cm의 상대(上帶)인 견대(肩帶)은 통식적(通式的)인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장 식되어 있고 4개소(個所)에 독립되게 배치한 유곽은 장방형(長方形)이고 유곽의 상단 부분에 는 원좌 내에 범자를 갖춘 3개의 원형 문양대를 각각(各各) 갖추고 있다. 유곽사이에 배치한 보살상 4구(軀)는 원형두광에 보관을 갖추고 있다. 유곽 문양도 엇비슷하게 처리 조식한 사 격집선문이고 유곽 내의 유두는 9유두인데, 8판연화좌에 자방(子房)이 돌기되어 있다. 종신 중앙에서 약간 밑으로 폭 4cm의 3조(條) 융기태선(太線)을 돌려 몸체를 상하(上下) 로 구분(區分)하였으며 이 융기태선(太線) 밑으로 6.3×13cm 크기의 8괘(掛)를 돌려 장식하 고 있을 뿐 하대(下帶)인 구연대(口緣帶)를 별도(別途)로 장식하고 있지 않다. 사찰측(寺刹側)에서 주조연대(鑄造年代)가 건륭(乾隆) 31년(年) 병무(丙戊)인 영조(英祖) 42년(年)(1766)에 주조되었는데 고종(高宗) 원년(元年)(1864) 갑자(甲子) 동치(同治) 3년에 다시 주조한 범종이라고 설명(說明)할 뿐 종신이나 어느곳에도 명기(銘記)된 기록(記錄)이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양식(樣式)과 형태(形態)로 보아 조선(朝鮮) 후기(後期)에 유행(流 行)하였던 양식(樣式)을 충분(充分)히 따르고 있다.
실측정보
총고(總高) ; 162cm, 용통고(甬筒高) ; cm, 상대폭(上帶幅) ; 8cm, 유곽장(乳廓長) ; 25.5×32.5cm, 구경(口徑) ; 111.5cm 종신고(鍾身高) ; 130cm, 용통경(甬筒徑) ; cm, 하대폭(下帶幅) ; cm, 종구후(鍾口厚) ; 8.5cm, 용뉴고(龍?高) ; 32.5cm 천판경(天板徑) ; 79cm, 유곽폭(乳廓幅) ; 3.2cm, 당좌경(撞座徑) ; cm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2023년 1월 25일 현재
https://portal.nrich.go.kr/kor/buddhistView.do?menuIdx=805&idx=40
高宗 元年 甲子(1864), 청동, 전체높이 165.8cm, 종높이 119.2cm, 입지름 111.8cm, 주종장 치운, 해인사성보박물관 이 종은 외형상 쌍룡의 용뉴에 둥글게 솟은 천판, 그리고 종복을 감싸는 융기된 횡대 등 조선 후기 종의 일반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문양에서는 다른 종에서 볼 수 없었던 표현들이 있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연곽이다. 빗살무늬의 연곽안에는 다른 종처럼 종과 횡으로 3열인 9개의 연꽃봉오리를 두고, 맨 밑에 활짝 핀 연꽃과 연잎이 새롭게 표현되었다. 9개의 연꽃봉오리가 위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맨 밑에 연꽃은 측면에서 본 것으로 위에 있는 작은 연꽃봉오리를 받치고 있는 듯하다. 연곽 위로는 ‘옴’자가 있는 원형범자를 중심으로 작은 원형범자가 좌우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연곽 사이에 자리한 보살상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합장을 하고 있다. 왼쪽 혹은 오른쪽을 향한 보살이 주종을 이루는 조 선시대 종 가운데 이처럼 정면을 바라보는 보살상은 대흥사 대웅전종(1703년)과 옥천사종(1776년)의 보살삼존상, 보살사종(조선 후기) 등에서만 볼 수 있다. 연곽과 보살상 외에도 횡대 아래에는 조선시대에 주성된 종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팔괘가 둘러져 있다. 2007년 8월 31일 현재 ==================================================================== 해인사 종각 범종 (海印寺 鐘閣 梵鍾)(2-129) 소 재 지(所在地) : 경상남도 협천군 가야면 치인리(慶尙南道 陜川郡 伽倻面 緇仁里) 년 도(年度) : 조선(朝鮮) 후기(後期)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測値) : 총고(總高) ; 162cm, 용통고(甬筒高) ; cm, 상대폭(上帶幅) ; 8cm, 유곽장(乳廓長) ; 25.5×32.5cm, 구경(口徑) ; 111.5cm 종신고(鍾身高) ; 130cm, 용통경(甬筒徑) ; cm, 하대폭(下帶幅) ; cm, 종구후(鍾口厚) ; 8.5cm, 용뉴고(龍鈕高) ; 32.5cm 천판경(天板徑) ; 79cm, 유곽폭(乳廓幅) ; 3.2cm, 당좌경(撞座徑) ; cm 정상(頂上)은 반구형(半球形)에 일체쌍두형(一體雙頭形)의 용뉴(龍鈕)를 갖추고 있으며 상대(上帶)가 조식(彫飾)된 부분 가까이 1조(條)의 융기태선(太線)을 돌려 정부(頂部)와 종신 (鍾身)을 구분(區分)하였다. 폭(幅) 8cm의 상대(上帶)인 견대(肩帶)은 통식적(通式的)인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장 식되어 있고 4개소(個所)에 독립되게 배치한 유곽은 장방형(長方形)이고 유곽의 상단 부분에 는 원좌 내에 범자를 갖춘 3개의 원형 문양대를 각각(各各) 갖추고 있다. 유곽사이에 배치한 보살상 4구(軀)는 원형두광에 보관을 갖추고 있다. 유곽 문양도 엇비슷하게 처리 조식한 사 격집선문이고 유곽 내의 유두는 9유두인데, 8판연화좌에 자방(子房)이 돌기되어 있다. 종신 중앙에서 약간 밑으로 폭 4cm의 3조(條) 융기태선(太線)을 돌려 몸체를 상하(上下) 로 구분(區分)하였으며 이 융기태선(太線) 밑으로 6.3×13cm 크기의 8괘(掛)를 돌려 장식하 고 있을 뿐 하대(下帶)인 구연대(口緣帶)를 별도(別途)로 장식하고 있지 않다. 사찰측(寺刹側)에서 주조연대(鑄造年代)가 건륭(乾隆) 31년(年) 병무(丙戊)인 영조(英祖) 42년(年)(1766)에 주조되었는데 고종(高宗) 원년(元年)(1864) 갑자(甲子) 동치(同治) 3년에 다시 주조한 범종이라고 설명(說明)할 뿐 종신이나 어느곳에도 명기(銘記)된 기록(記錄)이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양식(樣式)과 형태(形態)로 보아 조선(朝鮮) 후기(後期)에 유행(流 行)하였던 양식(樣式)을 충분(充分)히 따르고 있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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