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용감한 대한민국의 할머니

korman 2007. 8. 17. 23:25

내가 그 용감한 할머니를 발견한것은 라스베가스에서 전시회를 관람한 후 귀국을 위하여 LA 공항에서 수속을 밟던 2002년1월 22일 이었다. 9/11 사건으로 미국이 난리가 난 그 다음해 였다. 

비행편을 바로 연결하였다면 리스베가스에서 짐을 부칠때 대한항공으로 자동으로 옮겨지도록 하였겠지만 LA에서 잠시 볼일이 있어 낮에 LA에 도착하여 귀국편은 밤 비행기를 예약한터라 짐을 찾았었기 때문에 LA에서 귀국 수속을 할 때는 짐도 다시 부쳐야 했다.

9/11의 여파 때문에 보안 관계로 입국할때 지문찍고 국내선 갈아탈때도 불쌍하리만치, 치사하고 더럽게도 느껴 졌지만,  몸수색을 당하며 다녔던 미국이었는데 돌아올때도 쉬운것은 아니었다. 한밤의 LA공항은 동남아시아계의 여행객들이 많았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짐보따리는 산더미 같았다. 따라서 그 많은 사람들과 보따리들을 모두 검사하려니 공항로비는 완전히 625당시 피난가는 서울역 대합실 같았다. 

실로 어렵사리 짐을 부치고 보딩패스를 받고나니  거기에는 게이트로 가기위한 또하나의 긴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시큐리티를 통과할 수 있을까. 긴 한숨을 쉬며 그 끝없는 줄의 맨 뒤에서 서성이고 있을때 자그마한 키에 검은가방을 들고 검색대로 이어지는 긴  줄을 무시하고 혼자서 열심히 승무원들의 뒤를 따라 검색대 쪽으로 가는 우리나라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결국 그 할머니는 검색대에서 제지를 받았으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긴줄의 맨 앞으로 새치기 하여 당당하게 손짓 발짓으로 보안원들과 의사 소통을 하고 검색대를 통과 하였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나도 검색대를 통과하여 라운지쪽을 향하는데 문득 반대편을 바라보니 아까 그 할머니가 무빙벨트를 타고 게이트쪽으로 가시는 모습이 마구 뛰어 가는 모습인데 걸음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반대편 무빙벨트를 잘못타시고 쩔쩔매고 계신것이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에 얼른가서 부축하여 내려드리고 물었다.

'할머니 이거 반대로 타셨잖아요. 위험해요'
'글쎄말야. 늙은이가 뭘 알아야지. 고마워'
'할머니 어디가세요?'
'서울가'
'표하고 여권 가지고 계세요?'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안 가졌어'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검색대를 통과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누가 가졌어요?'
'우리 주인 양반이 다 가졌어'
'그럼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나도 몰라. 어떤 사람들이 휠체어에 할아버지를 태우고 가면서 나더러는 아까 그리로(검색대) 들어가라고 하였어'

뭐가 잘못되었다 싶어 할머니를 게이트에 모셔놓고 내가 올때까지 어디 가시지 말도록 신신 당부한 후에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한참을 헤맨 후에 검색대 안쪽에서 휠체어를 타고 미국인 봉사자와 같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다가가서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찾으세요?' 
'그리여. 그런데 이 할망구가 이리로 나온다고 하였는데 안와'
'혹시 키 조그맣고 검은 가방을 드신 할머니 아녜요?'
'그리여 맞아. 그런데 그 할망구를 봤소?'
'예 제가 비행기 타는데 모셔다 드렸어요'
'그럼 이 코큰 양반한테 말좀 해주슈'

미국인 봉사자는 당연히 할머니가 긴줄에서 기다렸다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까 할아버지를 휠체어로 천천히 모시고 나와서는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용감한 할머니는 새치기로 할아버지보다 일찍 검색대를 통과하였으니 길이 엇갈린것이다. 나는 그 미국인 봉사자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휠체어를 밀고 게이트로 갔다. 그때까지 할머니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맞죠?'

'그리여. 맞아. 어디서 찾았누. 고맙수'

그때 나는 아주 맑은 샘물과도 같은, 아주 따뜻한 햇빛과도 같은 두분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과연 대한민국의 할머니는 용감하구나 생각하며 나 또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라운지로 향할 수 있었다.
벌써 6년여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공항에만 가면 그때의 두 분이 생각난다. 아직 건강히 계시는지. 두 분도 가끔씩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계실까?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의 가족여행  (0) 2007.09.21
김밥인가 스시인가  (0) 2007.08.25
IN GOD WE TRUST  (0) 2007.08.17
너무한것 같아요  (0) 2007.08.05
한 번만 더 생각하면  (0) 2007.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