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9월의 가족여행

korman 2007. 9. 21. 21:57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식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저녁, 휴가를 9월로 미루었다던 큰애가 9월 9일에서 며칠간 싱가포르를 경험하고 오겠다며 애비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때 몇 년 전 홍콩에 갈 기회를 만들어 주었는데 조류독감이 무섭다고 가지 않았던 작은애가 자신도 같은 기간에 휴가를 낼 수 있으니 홍콩으로 같이 가면 안되겠냐고 오빠를 조른다. 그러나 큰애는 이미 몇 해 전에 홍콩을 경험한지라 같이 가려면 싱가포르에 가자고 한다. 출장을 다니며 싱가포르 공항에서 비행기를 몇 번 갈아타기는 하였지만 시내로 들어갈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고 늘 이야기를 해 오던 차에 이번 휴가에 그곳에 가리라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웠다고 하였다.


큰아이가 대학 1학년에 입학하여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홍콩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아야 할 일이 생겼었다. 그 때 난 영어의 중요성도 느끼고 국제적 사고를 갖기를 바라면서 큰애를 동반하였고 혼자 돌아다닌 홍콩의 거리에서 다행이도 그는 영어의 필요성과 더불어 많은 것을 느꼈노라고 하였다. 그때의 영향이 있었을까. 그는 지금 직장 2년차로 수출을 담당하며 자신의 국제적 감각을 키워가고 있다.   


작은애가 계속 오빠를 조른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홍콩에 다녀왔고 내년에 같이 싱가포르에 가기로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이번에는 꼭 홍콩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갈 용기는 나지 않고 소주병이 두개나 비워지도록 오빠를 계속 조르고 있다. 마음 약한 오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비에게 술을 따르며 지원을 요청하더니 문득 엉뚱한 제의를 한다. 아빠가 홍콩행 비행기표 3장을 해결해 주고 동생이 쓰려던 경비에 자신이 좀 보태고 모자라는 것만 아빠가 보탠다면 많은 경비 들이지 않고 온 가족이 홍콩을 여행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 놓았다. 큰아이는 애비의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3인의 홍콩왕복은 되리라 계산한 것이다. 그리하면 자신은 홍콩을 들러 싱가포르에 가고 동생과 엄마, 아빠는 홍콩에서 돌아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술김에 솔깃한 생각이다 싶어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 마누라는 불만이다. 그녀는 비록 나의 일을 도와주러 갔었지만 이미 두 번이나 다녀온 곳이기 때문이며 내년에 일본을 가기로 한 마일리지이기 때문이다.


갑론을박을 거쳐 “9월의 가족여행”이란 제목을 달아 2박 3일의 짧은 여정으로 떠나보기로 하였다. 사실 아이들이 장성하면서, 비록 국내여행이라 하더라도, 가족이 모두 같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온 가족이 함께하는 해외나들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던가. 마누라와의 일본 여행도 좋겠지만 장성한 아이들과의 해외여행은 우리 부부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 되었다. 90년대 초반부터 매해 한번씩은 일 때문에 가야했던 홍콩.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혼자였고 이국의 정취를 여유 있게 즐겨야 하겠다는 것은 생각 뿐, 뛰어다니다 시피 급하게 다녀오곤 하던 그곳이 아니던가.

다른 식구들이야 이미 홍콩을 경험 하였으니 이번에는 작은애의 수준에 맞추어 계획을 짜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간의 경험을 살리고 인터넷을 뒤지고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하여 짧은 시간에 최소한의 경비와 시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올릴 수 있도록 계획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였다. 한편으로 나에게도 일없이 한량한 시간이 이렇게 갑자기 소주 한잔 먹다가 주어지는구나 생각하니 그저 의미 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번 여행으로 작은애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난 그 아이에게 또 무엇을 느끼게 하여 주어야 할까!


갑자기 선선해진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도착한 공항에서 향이 진한 커피 한잔을 마셨다.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하던 공항에서는 늘 찡한 마음이 생긴다. 가족과 함께하여도 우리 땅을 떠나는 마음이 그랬을까! 커피 한잔은 어디에서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만들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떠나는 시간은 비슷하여도 큰아이는 캐세이로 우리 셋은 대한항공으로 타는 비행기가 다른 관계로 홍콩에 도착하여 짐 찾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다른 게이트로 향했다.


세상은 참 편하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를 남의 나라에서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는 세상. 홍콩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큰애에게 전화를 하니 막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자국에서 흩어진 가족이 타국에서 상봉하는 시간이다. 이제 남의 나라에서도 어느 곳에 가던지 서로 헤어져도 못 만날 일은 없겠다.  


공항에서 $200짜리 옥토퍼스라 불리는 만능카드를 각자 한 장씩 샀다. 우리의 교통카드와 유사한 카드이다. 그러나 이 카드는 IT강국으로 자처하는 우리에게는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는 카드이다. 이 카드의 기술이 홍콩에서 개발된 것인지 아니면 수입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운영 면에서는 우리를 훨씬 앞질러 간다는 생각에 부러움이 앞선다. 공항에서, 지하철 정거장에서, 길거리에 널려있는 편의점에서 구입하는 이 카드 한 장으로 버스도 타고, 전차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공항특급열차도 타고, 배도 타고, 자판기에서 콜라도 빼 마시고 편의점에서 과자도 사고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도 먹고, 필요하면 충전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공항에서 카드에 남은 돈과 맡겨두었던 카드 보증금 되돌려받아오고. 그것도 복잡하거나 질문이 필요 없이 아주 쉽게.


우리나라의 교통카드시스템이 세계에서 최고인줄만 알고 있는 작은애가 놀라는 얼굴이다. 우리보다 활용도가 높으면서도 구매, 환불이 매우 자유로운 시스템. 각자의 영역을 벗어나 서로의 욕심을 버리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시스템을 통일한 사람들. 작은애의 놀라움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이들이 부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시스템을 만드는 홍콩의 기술이야 우리만 할까마는 기술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것의 활용과 운영에서 각 집단의 이기적 발상과 운영주체의 안일함으로 그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남의 기술을 빌어 활용의 극대화를 이룩하는 나라와 비교하여 무엇이 우위라 할 수 있을까. 작은애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는 지방에 상관없이 교통카드 한 장으로 다른 도시의 교통수단도 이용하고 기차도 타고, 고속도로도 달리고, 연안여객선도 타고 자판기 커피도 빼 마시고 햄버거도 사 먹을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기술로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텐데. 그러나 홍콩의 지하철을 달리는 우리나라 로템이 만든 전동차 안에서 아이들과 같이 자긍심이 느껴지는 순간을 갖기도 하였다.


역사의 불행을 떠나서 홍콩을 영국에 빌려주었던 중국은 그 불행으로 인하여 국가 발전에 크나큰 밑거름의 행운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의 이런 선진화 된 기술과 운영시스템 및 깨어있는 생각들이 중국 본토에 씌어진다면 중국은 지속적으로 무한한 도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지로 상해의 지하철 시스템은 홍콩의 그것을 그대로 복사하였다. 우리는 통일되지 못하는 각자의 아집으로 곰처럼 이득 없는 재주만 부리다가 더 이상 우리가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에 속하지 못하듯이 선도기술국가에서 저만치 밀려나는 것은 아닐 런지.  큰애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호텔로 가기전 공항에서 가까운 곳부터 먼저 살피기로 하고 공항내 가방보관소를 찾았다.


버스를 한참 달리고 대관령 같은 고개를 몇 구비 넘어 곡예운전이 있은 후에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부처님을 만나 뵈었다. 공항이 있는 란타우섬의 높은 산 맨 꼭대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홍콩의 모든 곳을 내려보고 계시는 모습이 가히 압권이다. 이곳에 오르는 스카이레일(케이블카)을 타고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바다를 기대 하였는데 운행이 정지된 관계로 아쉽게 버스를 이용하였다. 이 부처님은 여러 영화에 출연하신 까닭에 연예부처님이라 불리워도 좋을 듯싶다. 마누라가 동전 몇 닢을 시주함에 넣고는 합장을 한다. 우리식구 중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누라뿐이다. 현지인들이 다발로 피워놓은 향의 연기 때문에 주위는 최루탄이 터진 듯이 뿌옇고 눈이 따갑다. 서둘러 주위를 돌아보고 자리를 떴다.


물을 한 병 살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작은애를 앞세웠지만 부모와 오빠가 같이한 까닭에 혼자 영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말을 몇 마디 하다가 의사소통에 힘이 들면 곧 오빠나 아빠를 찾는다. 이 아이도 오빠처럼 이곳에서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까. 그저 애비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은애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니 학부형도 만나고 가끔 영어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고 한다. 문득 영어의 또 다른 면을 느끼게 하여주고 싶어 호텔 프론트 데스크로 같이 가서 호텔 직원에게 세이프티 박스를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호텔 직원은 박스라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고 내가 다시 복스라 발음하였을 때에 그 말을 알아들었다. 작은아이에게 미국발음에 목매달고 있는 우리 영어교육의 허상을 느끼게 하여주고 싶었는데 우리가 박스라고 발음하는 아주 쉬운 단어를 복스라고 발음하여야 더 잘 알아듣는 그들에게서 작은애는 아주 놀라는 눈치였다. 애비의 보충설명을 들으며 미국발음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을까.


아무리 한량한 가족여행이라도 기왕 돈 들여 홍콩에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서운할 것 같아 여행의 끝 무렵을 큰아이에게 부탁하고 알고 지내던 회사 두 군데를 찾았다. 당면한 일은 없었지만 나중을 위하여 같이 점심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큰아이는 싱가포르로 떠나고 우리는 밤비행기를 타고 새벽 5시경에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경험한 선진국 여러 나라의 공항을 비교하면 우리의 인천공항이 다른 공항에 비하여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공항 밖으로 나와 대중교통을 대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내국인도 물어물어 타야하는 버스, 의사소통도 어려운  외국인들이 이를 이용할 수 있을까. 월드컵때 택시마다 설치되었던 무료 통역시스템은 그때만 반짝하고 무용지물이 되었는지 아직 그 전화기를 설치하고 있는 택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역시 공익차원의 관리가 문제인 것 같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비행기가 도착한 관계로 역시 많은 사람들이 버스가 운행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에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으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첫차가 언제쯤 있는지 알고 싶어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마다 해당 버스의 기본적인 정보, 즉 첫차시간, 막차시간, 배차간격, 요금 등을 알려주는 안내스탠드가 한글과 영문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그곳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러한 안내판이 왜 이렇게 방치되는지는 모르겠으되 공항공사에서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것들이 아무것도 적혀지지 않은 상태로 이렇게 방치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돌아와 인천공항관리공단 홈페이지에 안내판관리에 대한 글을 올리고 짧은 9월의 가족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머리속에 또 다른 가족여행을 그리며....


2007년 9월 스무하룻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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