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다민족 다문화

korman 2007. 9. 29. 20:09
 

다민족 다문화


지하철에서 어느 할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모시로 된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시고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느 지방의 양반댁 고택을 연상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기시는 분이었다. 할아버지께서 하신 학문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구학을 모르는 나에게는 참 대화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부터 역사 및 나라의 앞날에 이르기까지.


보통 노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모두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부터 자식들에 관한 자랑거리 그리고 손자손녀의 재롱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자식들의 험담을 늘어놓는 노인들도 간혹 계시지만 대부분은 자랑거리를 말씀하신다. 듣다보면 결국 자식들에 대한 서운한 면 또는 살아가시는 외로움 등이 묻어나지만 당신께서는 듣는 사람에게 그리 들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시는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그분들의 뒤를 따르게 될는지 모를 일이지만.

   

노인들은 대부분 대화가 부족하다. 시대의 변화라고는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과의 대화를 기피하기도 하지만 노인들만 따로 사시는 분들도 많거니와 집에서 자식들과 같이 사시는 분들도 대화의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밖에 나와 누군가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을 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신다. 이 문제에 관한한 서양이라고 다르지는 않게 보인다. 어찌 보면 생활 구조상 우리보다 더 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분들은 자식이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를 주는 것도 자랑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몇 해 전 출장길에 런던의 한 박물관에서 자투리 시간에 할머니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 자랑을 매정하게 끊고 일어날 수가 없어 약속시간에 늦을 뻔한 일이 기억난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는 입장이었지만 이야기가 흘러흘러 백의민족과 단일민족에 이르렀다. 이 부분에서 나는 그분의 의견에 이견을 달았다.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양반들이 입었던 각종 호화로운 색깔의 옷을 생각하면 일반 양민들은 물감을 구하기도 어렵고 또한 비싼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희색 혹은 흰색에 가까운 누런색을 입었을 뿐 의식적으로 우리 스스로 백의민족이라 칭할 만큼 흰색을 아끼고 좋아했다는 것에 대하여는 여러 학자들도 이견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역사적으로 북방에서는 이민족이 끊임없이 침범하고 있었고 몽골은 제주도까지 30년 이상을 지배하며 많은 몽골 공주들과 그 수행원들이 우리민족과 결혼 하였고 각종 전쟁과 난을 겪으면서 무수한 이국의 군대가 스치고 갔으며 무척이나 긴 기간들을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는데 과연 우리가 순수한 단일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겠느냐는 의견과 함께 지금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외국사람과 결혼을 하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의 대한 관념은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견을 말씀 드렸다. 그와 동시에 그분은 무척이나 노한 얼굴로 나라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질타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셨고 그분의 손에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나를 치실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등 전동차의 문이 열리자 얼른 자리를 떴다.


내 생각이 아니라도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일을 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도 있고 이미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도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고 곧 10%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런데도 외국인과 외국문화를 접하는 우리의 자세는 아직도 단일민족의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고 외국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무척 인색하게 보인다. 더구나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우면서도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개개인을 비교할 때 그들에 비하여 별로 나은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은 수가 외국에 나가 살고 있다. 어느 경로의 통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숫자 개념이 아니라 나라숫자로 따지면 한국인이 가 있는 나라가 중국의 그것보다도 더 많다고 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중앙이건 지방정부건 사기업이건 공기업이건 간에 모두가 세계로를 외친다. 영어공부를 위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족, 이문화에는 너그럽지 못하면서 북한이 주장하듯 우리민족끼리를 외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는 세계속의 한국인이 되라고 가르치면서도 단일민족국가임을 강조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뉴스에 의하면 이제는 거주의 목적으로 출국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나라에서 거주하기위하여 입국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면 이제 우리의 생각도 단일민족이나 단일문화 개념에서 다민족, 다문화의 일반적인 국가 및 국민 개념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중국이 한(漢)족을 중심으로 여러 소수민족들로 형성된 나라이듯이 이제는 우리나라도 한(韓)민족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유입된 이민족들이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외국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그 나라의 법이나 문화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인종차별이라고 몰아가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LA의 코리아타운을 두고 여기가 한국령이냐 한다고 한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미국인들은 그냥 한국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한국계 미국인이라 부른다. 민족을 떠나 한 사람의 미국시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코리아타운에서는 미국문화나 미국법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농촌으로 시집온 여인네들이겠지만, 우리를 어찌 생각할까? 그들 중에는 일반 외국인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거나 대기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도 우리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평등하게 대우받는 위치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나와 같은 민족만이 대한민국국민임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이 어느 날 결혼하겠다고 데려와 인사 시키는 상대가 이민족일 수도 있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거나 사용하는 말이 다르다고 서러움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으며 그들에게도 그들이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고 이제 더 이상 우리국민이라는 공동체가 한민족에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다른 민족과 다른 문화를 포용하고 같은 나라 국민으로 그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한민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7년 9월 스무아흐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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