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태극기를 거는 마음

korman 2007. 10. 28. 21:09
 

태극기를 거는 마음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생활권에 큰 롯데마트가 새로 생겼다. 따라서 우리 동네 생활권에는 이마트도 있고 홈에버도 있기 때문에 큰 마트들이 다 있는 셈이다. 매일 배달되는 신문에는 신문 그 자체 보다는 이들이 끼워 넣는 전단지의 쪽수가 더 많게 느껴진다. 소비자로야 편리한 셈이지만 동네 조그마한 가계들과 재래시장은 걱정이 많을 듯 하다. 


롯데마트가 개장하고 며칠 자나 들러보았다. 새로 개장하여 물건을 정리한 것이나 친절함 등은 깔끔하였지만 직원들이 아직 훈련이 덜 되었던지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2층에 오르자 다른 마트와는 다르게 창문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이건 개점이 한참 지난 지금도 걸려있다.


어디에서건 어느 나라 사람이건 평소에 국가관이 희미한 사람일지라도 자국의 국기를 보면 자신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평소보다 조금은 더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곳 2층에 걸려있는 대형 태그기를 보면서 고객들은 국가에 대한 생각을 한순간이라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마케팅의 한 전략이겠지만 참 긍정적인 전략이라 평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2층은 각종 의류를 팔고 있는 곳이다. 태극기를 바라보며 올라선 2층 입구에는 여성용 바지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내 팻말이 참 가관이었다. “팬츠”. 언제 우리가 바지를 팬츠라 불렀던가.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이 팬티를 빤쯔라 부르시기는 한다. 하지만 바지를 가지고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다. 바지를 미국인들이 팬츠라 부르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지를 가리키는 점잖은 영어도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팻말에 우리말 바지는 없고 팬츠라니.


한걸음 더 나아가니 그곳의 팻말은 더 가관이다. “우븐바지”. 이는 또 무슨 말인가. 조금 전에는 팬츠였는데 이번에는 팬츠대신에 바지라 하였는데 우븐바지라니. 굳이 그 뜻을 헤아리면 직조된 천으로 만든 바지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럼 팬츠는 직조된 천으로 안 만들고 무슨 사출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인지. 내 생각이 뒤처져 있는 것인지 그들이 옳은 것인지. 그 다음 열에는 속옷을 파는 곳인데 여기는 언더웨어라 써 놓았다. 이제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건하나 제대로 사지 못하겠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점포를 열었을 때 이제 개점이나 개업 등 우리말은 쓰지 않는다. 모두가 오픈으로 통한다. 노인네들까지도. 따라서 지금 어린 사람들의 사전에는 개점이나 개업이란 우리말 단어는 등재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마트가 한국기업이라는데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 1,2위의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까르프 등이 이마트에 의하여 사라져 갔고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 유통업체들이 이마트를 그들의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해의 많은 중국 유통업체들이 이마트의 점포 디자인, 진열방법 및 동선을 그대로 복사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곳은 어떠한가. 이곳의 신발판매대의 팻말은 슈즈, 운동화 판매대에는 스니커즈라 표기되어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롯데마트나 이마트나 홈에버나 그곳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글에서 더 열거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국제적인 시대이고 글로벌 시대이고 특정 국가를 떠나서 그냥 지구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날이 쏟아지는 신조어 및 신기술용어 등으로 인하여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우리나라 말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종 팻말에 우리말과 제2외국어 및 제3외국어를 병행하여 기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그렇게 하여야 한다. 또한 국제 교류를 위하여 회사명이나 상품이름을 비롯하여 각종 고유명사에 외국 사람들이 부르기 쉽고 친근감을 느끼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도 흉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통상 예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우리말을 망가뜨리면서 외국어를 도입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행위가 국제적 사고라 생각할 수는 없다. 시대 변화에 따른 선진 사고라고 자위 하면서 우리말 표기를 바지에서 팬츠로 신발을 슈즈로 속옷을 언더웨어로 하고 운동화를 스니커즈로 하면서 우리말을 마구 훼손하는 것은 국제적 사고가 아닌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임을 왜 모를까. 국제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국의 말과 글 그리고 문화를 잘 보존하고 국제화 하는데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태극기를 걸어 자신들은 국가를 생각한다는 간접적 표현을 고객에게 심어 고객들이 애국적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얄팍한 전략 이전에 태극기를 거는 마음이라면 우리말과 우리글을 망가뜨리지 않고 제대로 표기 하는 것이 더 애국적인 기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7년 10월 스무여드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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