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겨울내복

korman 2008. 11. 7. 22:53

겨울내복

 

 

천정부지로 오르던 기름 값이 근래에 와서 좀 떨어지기는 하였으나

한창 오를 때의 반 토막 밖에 되지 않는 원유가 하락을 생각하면

국내의 기름 값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요지부동이다.

왜 더 내려가지 않느냐고 정유사에 물으면

달러에 대한 고환율 핑계를 대겠지만

그게 가장 큰 원이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에너지원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과소비국가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국민 모두가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부터도 컴퓨터를 습관적으로 아침에 켜 놓고

껐다가 다시 키는 게 귀찮아 한번 켜면 하루 일과가 끝날 때 까지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늘 틀어놔 두는 버릇이 있었다.

요새는 되도록 모니터라도 끄고 절전 모드를 사용하고 하지만

한번 든 버릇을 완전히 고치기에는 시간이 필요 할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기름 값이 한창 오르던 여름에

난방비라도 절약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해 오던 중앙난방을 버리고

세대마다 개별 보일러를 설치하기로 하고 공사를 진행하여

가을이 짙어가는 10월초에 대충 마무리가 되었고

지금은 각 세대가 알아서 난방과 온수를 사용하고 있다.

중앙난방을 할 때는 가운데 있는 집들은 덥다고 문 열어놓고

건물의 끝 쪽이나 저층 및 옥상에 인접한 집들은

추우니 보일러 더 때라고 하고......

내가 사는 곳의 중앙난방식은 난방비를 고루 나눠 내었기 때문에

춥다고 하는 세대에서도 사실 한 겨울에 반팔, 반바지 옷 입어가며

돈 더 낼 테니 보일러좀 팡팡 돌리라고 요구하곤 하였다.

 

 

단독보일러 설치는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에도

보일러 연통에서 난방을 생각게 하는 연기가 나는 집은

한 동에서 불과 두서너 집뿐이다.

이제는 각 세대가 사용하는 연료비를 다르게 지불해야 하고

사용하는 가스비도 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니

되도록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지도 18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겨울에 집안에서 긴 옷을 입은 기억이 없다.

그동안 그리 에너지를 낭비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 우리집에도 당장 변화가 생겼다.

비록 얇은 옷이기는 하여도 이 가을에 집안에서

반바지 반팔 차림이 살아진 것이다.

 

 

 

그동안 이곳저곳에 출장을 다니고 친척이나 친구 집엘 가서

집안에서도 스웨터를 입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부자나라에서 난방에 참 인색 하구나하는 생각과

우리도 그들을 본 받아야 한다고는 늘 생각하곤 하였지만

공동주택에서 공동부담이라는 개념 때문에

그것은 그저 생각에 그칠 뿐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쓴 만큼의 연료비를 내가 내야 하므로

옷을 제대로 입고 적절한 온도에 적응하는

순발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행이 우리집은 위층 아래층에서 어린 아이들이 있어

벌써부터 보일러 가동을 오래하는 관계로

지금 그 영향으로 늘 훈기가 돌아

아직은 긴 난방이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으며

한겨울에도 긴 시간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따뜻한 방바닥이 좋은 나이가 되었으니

이웃의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난방비 많이 안들이고

겨울을 나는 것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

 

 

 

 

 

 

 

지난겨울의 방송에는 내복을 입자는 대국민광고가 있었다.

올해에도 그 광고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해서 입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아니면 아직은 눈보라 치는 추위도 견딜만한 나이라 자위하며

건강하시네요! 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듣고자

그러나 길거리에 나서서는 시려오는 종아리에

뭘 좀 더 입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복 입기를 거부하던 나 스스로가

추위에 대한 허세나 위선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내복을 만지작거리는

씁쓸한 겨울을 맞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모님 세대가 들으시면 한 말씀하시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인천 앞 바다가 꽁꽁 얼 정도의 추위도 있었고

학창시절에도 학교에 가기 위하여 아침 일찍 버스에 오르면

뚫어진 바닥이나 창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몸으로 맞아야 했고

내복을 입었다 하여도 별로 보온성 없이 두껍기만 하여

교복이 작을 정도였고 또한 움직임이 둔하여 참 불편하였었다.

그때 여자들이 입는 내복은 왜 모두 빨간색 일색이었는지!

지금의 내복은 보온성도 뛰어나고 얇은 천이어서

입어도 별로 불편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리 절약한다 하여도 최소한의 난방은 하여야 할 것이고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이나 건물들이 모두 난방이 잘 되어있고

그 내복이라는 게 한번 입으면 벗어 던지기가 매우 어려우며

날씨 또한 예전 같이 무지막지하게 춥지 않으니

자존심으로 이 겨울도 한번 넘겨보자 하는 마음도 생긴다.

 

 

자존심이라는 핑계가 자만심이 되지 않기 바라지만

나오는 재채기를 어찌 막으랴.

이번 주에 비가 온 후에는 기온이 더 내려간다는데

내복생각은 뒤로 미루고

지금 나는 보일러의 예약난방 프로그램 스위치를 누른다.

 

2008년 11월 초사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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