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버리는 마음

korman 2009. 1. 18. 11:48

버리는 마음

 

큰아이의 방을 들여다보며 늘 공간이 좁다는 생각을 해왔다.

아이들 방에 놓여있던 책상과 의자, 책꽂이 등 가구들은

큰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때 샀던 것인데

학교 다닐 때는 그리 불편하게 느끼지 못하였지만

컴퓨터를 비롯하여 개인용 사물이 늘어남에 따라

이에 걸맞은 책상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각자 사회생활을 하는 관계로 스스로의 보따리가 커진 탓으로

이에 합당한 공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방이야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넓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구를 바꾸고 그 배치를 조정하여 공간을 확보하는 수밖에는 없는 터.

큰아이와 같이 이리저리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

침대를 옮기고 옷장을 정리하고

책상과 책꽂이를 컴퓨터에 맞게 새것으로 가져다 놓고 보니

이전과는 몰라보게 빈 공간이 확보 되었다.

집안 치장이라는 것이 일반 사업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어서

조그마한 생각과 노력 그리고 그에 걸맞은 돈이 투자되면

결과는 원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겠지만

생각과 노력에 늘 일치되지 않는 것은 돈이 아니겠는가.

 

 

작은아이방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는데

대학에 들어갈 때 정리하였어도 그리 큰 공간이 생기지는 않았다.

문제는 좁은 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인데

어릴 때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한국 가정의 사치성을 따라가는 게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치원, 초등학교 때 잠깐 두드리고 지금은 무용지물이 된 것을

방이 좁다고 하면서도 치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놔 들수록 값이 나간다면 모를까

그걸 처분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은 더 좋을 듯한데

누가 사용하지도 않는 것을 그대로 놔두겠다는 마누라의 고집에

피아노를 가르칠 때의 사치심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때도 나는 마누라와 늘 대립하고 있었다.

마누라의 고집을 꺾고 피아노를 치워야겠다는 나의 생각에서

젊은 날 피아노와 미술학원을 두고 대립하던 감정이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하였지만

작은 손상도 없는 멀쩡한 책상과 책꽂이를 버리려니

아이들의 어렸을 때 생각이 슬라이드가 되어 지나간다.

사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집의 책상에 앉을 시간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전전하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자체가 아이들을 늦게까지 놔주지 않는데다

자투리 시간도 사설 독서실이나 학원으로 내 몰리니

한집에 살면서도 아이들과 얼굴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같이 식사하는 시간조차 갖기 어렵다.

언젠가 TV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아버지가

아이 얼굴을 일주일 만에 봤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집에 책상이 있은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그걸 망가뜨릴 시간은 더더욱 없는 게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가구 같은 덩치가 큰 것을 버리자면

동사무소에서 많은 돈을 주고 딱지를 사다 붙여야 한다.

버리려 내 놓은 것을 운 좋게도

누가 쓰겠다고 가져가면 그 돈이 굳는다.

멀쩡한 것들이 하도 많이 버려지는 세상이어서

흠집은 없지만 오래된 책상하나 버리는 것이 대수는 아니지만

딱지를 사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갈 수 있도록

경비실에 우리집에서 내다 놓은 것임을 알리고

이틀 정도 지나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면 딱지를 사 오겠노라 하였다.

내 생각대로 그건 이틀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어디로 가 버렸다.

나는 딱지 값을 안들이고 가져간 사람은 사는 값을 안 들였다.

이런 것을 상부상조, 영어로 윈윈이라 해도 좋을까.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남이 쓰다가 필요 없어 내 놓은 물건들을

가족이 아니면 흔쾌히 가져다 쓰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온갖 잡동사니들을 보관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게 흠이다.

그래서 그런지 언젠가는 꼭 소용이 되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은 필요치 않으니 벌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자꾸 어딘가 보관할 곳을 찾는 나이든 부모를

아이들은 구질구질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버리고 필요하면 그때 또 사면 될 것을 하면서.....

아직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야 할 만큼

아이들의 생각에 관대할 수는 없지만

주거환경의 변화는 버리지 말아야할 것들을 문 밖으로 내몰고 있다.

 

2008년 12월 스무 사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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