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보름달 걸린 아침

korman 2009. 1. 18. 21:09

보름달 걸린 아침

 

아직 어두움이 벗겨지지 않고 있는 아침 7시,

여름철의 그 시각이면 해가 중천에 떠 있을 터인데

한겨울의 어두움은 같은 시각에도 여명조차 오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직장이라 7시 30분 아침 당직을 하여도

자동차로 그저 한 20여분 가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작은 아이의 출근길을 도와주려 나선 길인데

아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길거리는 한밤중이다.

 

인천 시내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아직 집을 나설 시각이 아닌지라

어두운 아침의 길거리는 휴일처럼 한산하다.

인천에도 출퇴근시간대에는

많이 복잡하고 길이 밀린다.

내가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올 때를 떠 올리면

그 때는 텅 빈 주차장을 바라보며

아파트 한 채라도 더 짓치 하였는데

지금은 공간이 모자라 밤늦게라도 들어오면

주차공간을 찾아 온 아파트를 몇 바퀴 돌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하기야 지금 한집에 자동차가 2~3대 있는 집도 허다하니까.

그래서 내가 사는 아파트도 세대당 1대를 초과하는 집에는

주차비를 물리느니 마느니 논쟁이 한창이다.

 

한가한 길거리 건널목 신호에서

빨간불에 멈추었다.

건너가는 사람들은 없지만 신호는

지켜져야 하는지라

그냥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가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뒤를 좇던 택시가 경적을 울린다.

길 건너는 행인들이 없으니 그냥 가라는 명령이다.

그렇다고 교통신호를 무시할까.

택시는 내 뒤에 바짝 붙어 정차하는 바람에

내가 비켜주지 않는 한 스스로 옆 차로로 옮기고 싶어도

그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거리도 아니고 2차선 정도의 보통 건널목의 시간은

길어야 2분 정도를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시간을 못 참아 그는 계속 경적을 울려댄다.

순간 나는 귀머거리가 된다.

 

뒷 창문을 통하여 바라본 택시의 지붕 위에는

“개인” 이라고 쓰인 파란 모자가 올려져 있다. 개인택시라는 의미이다.

학교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에게 수여하는 상장처럼

몇 년 동안 일반택시를 사고 없이 모범적으로 운전한 사람들에게

상품으로 수여하는 것이 개인택시면허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사람이 없는

건널목이라 하더라도

의도된 신호위반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호가 바뀌고 내가 조금 앞으로 나간 순간

그는 총알처럼 옆 차선으로 삐지고 나와

나를 추월하며 다시 한 번 경적을 울린다.

나의 고지식함을 비웃는 것이리라.

그리고는 내가 가는 차로로 다시 차선을 바꾸더니만

내 앞에서 브레이크를 몇 번 밟는다.

이건 내가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던데 대한 보복성 시비이다.

그러건 말건 자신의 그런 행위에 대하여 나의 응대가 없자

그는 휑하니 아침 공기를 가르며 어둠 속으로 살아져 갔다.

모범운전자의 상장에 신호 지키는 것은 포함이 안 되는 것이지.

                                          

작은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사거리

신호등 앞에 구청에서 설치한 기다란 전광판에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각종 시정광고와 공익광고 및

종합 안내가 초록색 다이오드 불빛이 되어

물 흐르듯 옆으로 계속 흘러간다.

정차하고 있는 운전자들에게

참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14년 아시안 게임의 주경기장은

새로 지어져야 한다는 호소문에 이어

영문으로 Green Parking 사업을 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영문 옆에는 영어를 모르는 시민을 위함인지

괄호 안에 씌어진 (녹색주차장 건설 사업)이라는

우리말 번역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외국인을 위한 사업도 아닌데

그냥 “녹색주차장건설사업”이라 하면 될 일을

굳이 사업 명을 영어로 표기하고 우리말 해석을 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영어에 Green Parking 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한지 모를 일이다.

 

 

언덕을 오르며 문득 올려다 본 서쪽 하늘에

보름달이 걸려있다.

음력으로 12월 보름쯤 된 모양이다.

달의 빛깔이 연한 회색을 띄고 있다.

동서로 놓여있는 도로를 20여분 달리자

여명이 벗어지며

자동차 뒤 창문으로 붉은 기운이 들어온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에

동쪽으로 오르는 태양의 준엄함에

주눅이 들었는지

서쪽에 걸린 보름달은 하얀빛으로 변하고.

그 하얀빛 틈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회색빛 그림자로 박혀있다.

세상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음양의 이치가 같은 선으로 이어지며

하늘은 어느덧 푸른색으로 바뀌어가고

푸른 하늘에서 음과 양이 같이 뿜어내는 아침의 기운은

모범적이지 못한 모범운전자에게나

영어를 사랑하는 녹색주차장건설사업 담당자에게도

희망찬 하루를 열어주고 있다.

나의 오늘 아침도 그들과 같이 그리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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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초아흐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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