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전철역 계단을 오르며

korman 2009. 2. 15. 18:37

전철역 계단을 오르며

 

어느 날인가 TV에서

종로의 탑골공원과 그 주변에 대하여

며칠간 방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노인들을 위한 저렴한 식당과 이발소, 그리고

그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과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 까지.

그곳은 내 어린시절과 다름 없었고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한 이발소에서 저렴한 요금으로 봉사하는 중년 여주인은

노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알고 있는 듯이

자식들 다 필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지나가던 한 젊은이는 탑골공원과 파고다공원이

다른 곳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난 일주일에 몇 번은 아침 10시경

거래처를 찾아가기 위하여 구로역에서 천안행 전철을 탄다.

어느 날이건 천안행 전철은 노인들이 많다.

전철이 온양까지 연장되면서 노인들이 더 늘었다고 한다.

집에서 손자, 손녀 재롱을 보며 혹은

다른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야 할 노인들이

그리하지 못하고 전철에 오르는 것이리라.

온양에는 노인을 위한 저렴한

온천 패키지 상품이 등장했다고 한다.

추운 계절이니 탑골공원 같은 곳에는 가지 못하지만

전철이나 독립박물관 같은 곳은 무임이고

거리가 길어서 시간 보내기 좋고

저렴한 비용으로 온천과 점심을 해결할 수 있으니

천안 쪽 전철을 많이 타시는 모양이다.

 

며칠 전 종로3가 지하철 입구 다방에서 약속이 있던 날

난 그가 불러준 지하철 출구 번호를 찾지 못하여

아니, 번호를 찾았으면서도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잠시 동안 멍하니 팻말만을 응시하여야 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전철에서 내려 위층으로 올라와

가로막고 있는 기계의 허락을 받고 나와

내가 가야할 출구 번호를 찾아가야 함에도

차에서 내려 위층으로 올라온 나는

출구 번호가 적힌 팻말을 바라보면서도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출구가 왜 기계 안쪽에 있을까 생각하였다.

 

평소에도 나는 종로 3가에서 차를 자주 갈아탄다.

따라서 날씨가 궂은 날이나 추운 날에는

탑골공원으로 가던 노인들이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늘 그곳은 노인들로 만원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처지였지만

그날은 출입기 안쪽에도 노인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노인들이 출입기 밖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 나는

위층으로 올라와 많은 노인들 틈을 헤집고 나가며

이들은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잠깐 동안의 인생사 생각에

출구 번호가 적힌 팻말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기계 밖으로 나온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내 나이가 아직은 중년이라 불리겠지만

노인이라 불리울 날도 멀지 않았음에

출구의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느려짐을 느끼며

앞서 TV에 나온 탑골공원 이발소 여주인의 말이

자꾸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난 내 부모님을 어찌 생각하고 살아왔는지.

내 자식들은 또 어찌 살아갈 건지.

 

거실 한쪽에 놓아둔 부모님의 흑백사진에

자꾸만 눈길이 머무는 하루였다.

 

2009년 2월 열닷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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