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전남 구례 화엄사 강희육십일년명종 [華嚴寺康熙六十一年銘鐘]

korman 2008. 12. 19. 23:39

자료뱔췌일 2008년 12월 19일 현재

보완 2014년 1월 25일

 

* 2014년 1월 25일 현재 구례군과 화엄사 홈페이지에서는 소개되지 않고 있음.

 

전남 구례군 화엄사강희육십일년명종 [華嚴寺康熙六十一年銘鐘]

 

 

 

 구례 화엄사 강희61년명종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의 종. 높이 96.0cm. 1722년(경종 2) 제작.

유형 : 유물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성격 : 불구, 범종
  • 소장처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 제작시기·일시 : 1722년(경종 2)
  • 수량 : 1구
  • 크기(높이, 길이, 두께, 너비) : 높이 96.0㎝
  • 소유자 : 화엄사
  • 관리자 : 화엄사

 

[네이버 지식백과] 화엄사강희61년명종 [華嚴寺康熙六十一年銘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종.

 

내용 :

높이 96.0㎝. 1722년(경종 2) 제작. 이 종은 원래 화순의 유마사(維摩寺) 용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한국 전통종 양식을 따른 작품이지만 전대의 형식에서 많은 혼란을 가져온 듯 세부표현이 도식적이고 문양 또한 치졸하다.

마치 족제비나 고양이처럼 이상스럽게 변모된 한 마리의 용뉴(龍鈕) 뒤로는 대나무를 붙인 듯한 음통(音筒)이 솟아 있다. 불룩해진 천판(天板) 외연에는 두 줄의 돌기선이 주회되고, 그 아래의 종신 상부면에는 ‘唵(옴)’자 하나로만 구성된 원권(圓圈)의 범자문(梵字文)을 빙 둘러가며 시문하였다.

종신 중단의 유곽대(乳廓帶)는 2단으로 구획되어 내부에는 도식적인 사선문(斜線文)을 복잡하게 시문하였고, 유곽 안으로는 국화형의 화문좌(花文座) 위에 돌기된 종유(鐘乳)를 9개씩 장식하였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 배치된 1구씩의 보살입상은 경직된 자세와 천의(天衣), 도식적인 머리 위의 보관(寶冠) 등이 매우 서툴게 표현되어 해학적인 느낌마저 든다.

종구(鐘口)에서 조금 위로 올라온 하단부에는 또 하나의 융기선을 둘러 마치 하대(下帶)처럼 구획하였으나 문양은 표현되지 않았고, 이 융기선과 네 구의 보살상 아래의 여백면에는 불규칙한 방형의 양각(陽刻) 명문구(銘文區)를 별도로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불교미술대전(韓國佛敎美術大典) -불교공예(佛敎工藝)-』(한국색채문화사, 1994)
  • 「한국범종(韓國梵鐘)에 관한 연구(硏究) -조선조종(朝鮮朝鐘)의 특징(特徵)-」(염영하, 『범종』11, 1988)

보완 ㅣ 2014년 1월 25일 현재

[네이버 지식백과] 화엄사강희61년명종 [華嚴寺康熙六十一年銘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9024&cid=1631&categoryId=1631

 
기타 관련자료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5959&cid=3114&categoryId=3114

               (한국사전사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2014년 1월 2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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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화엄사 강희 육십일년명 종 원본보기
설명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의 종. 높이 96.0cm. 1722년(경종 2) 제작.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종. 높이 96.0cm. 1722년(경종 2) 제작. 이 종은 원래 화순의 유마사(維摩寺) 용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한국 전통종 양식을 따른 작품이지만 전대의 형식에서 많은 혼란을 가져온 듯 세부표현이 도식적이고 문양 또한 치졸하다.

종신 중단의 유곽대(乳廓帶)는 2단으로 구획되어 내부에는 도식적인 사선문(斜線文)을 복잡하게 시문하였고, 유곽 안으로는 국화형의 화문좌(花文座) 위에 돌기된 종유(鐘乳)를 9개씩 장식하였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 배치된 1구씩의 보살입상은 경직된 자세와 천의(天衣), 도식적인 머리 위의 보관(寶冠) 등이 매우 서툴게 표현되어 해학적인 느낌마저 든다.

종구(鐘口)에서 조금 위로 올라온 하단부에는 또 하나의 융기선을 둘러 마치 하대(下帶)처럼 구획하였으나 문양은 표현되지 않았고, 이 융기선과 네 구의 보살상 아래의 여백면에는 불규칙한 방형의 양각(陽刻) 명문구(銘文區)를 별도로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韓國梵鐘에 관한 硏究 -朝鮮朝鐘의 特徵-(廉永夏, 梵鐘 11, 1988)
≪참고문헌≫ 韓國佛敎美術大典-佛敎工藝-(한국색채문화사, 1994)

 

출처 : 네이트백과사전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i=285479 1401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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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일 2009년 5월 11일 현재

 

 

康熙61년 壬寅

(조선 景宗 2년, 1722)
총 높이 96.0cm,

종신 높이 70.0cm,
용뉴 폭 21.0cm,

용뉴 높이 13.6cm,
음통 지름 4.0cm,

음통 높이 18.0cm,
천판 지름 47.0cm,

범자 지름 6.5cm,
유곽크기 22.0 x 25.0cm,
종입 지름 66.4cm,

종입 두께 5.8cm
전남 구례 마산면 황전리 지리산 화엄사

 

종정에는 단용으로 된 용뉴와 뒤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음통을 갖고 있으나, 주조수법이 약식화되고 도식화된 형태다.

천판은 반구형이고 한줄로 굵은 선을 그어 종신과의 경계를 구분하였다.

상대는 지름 6.5cm의 원좌 안에 범자를 갖춘 13개의 범자문양대로 장식하였다.

4개소에 배치한 유곽은 독립되어 9개의 화좌유에 돌기된 유두를 갖고 있으며, 유곽대는 2중의 빗살무늬와 2조선으로 된 지문판을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찍었다.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을 갖추고 합장하고 서 있는 線彫의 보살입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유곽과 보살입싱 아래로 명문을 양주하고, 그 아래로 한줄의 융기된 굵은 선을 돌렸으며, 하대는 없다.

명문은
康熙六十一年」 壬寅三月日」 維摩寺改」 鑄.....」 綠化秩」 大施主 兼都」 片手 前別將」 金孝建」 大施主」 副片手」 朴白龍 供養主 順益」 別座振原」
강희 61년 임인은 조선 경종 2년(1722)에 해당되며, 그 해 3월에 유마사종을 다시 만들었고, 도편수 김효건, 부편수 박백용 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엄사에는 이 종 외에도 화엄사 고려소종(13~14세기), 화엄사 구 종루종(1691), 화엄사 대웅전 康熙60년명종(1721), 화엄사 9층암종(1728), 등이 있다.
 
자료출처 ;
한국의 범종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www.nohht.com.ne.kr
2009년 5월 11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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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완 : 2023년 1월 26일

사진 보완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원 연구지식포털 2023년 1월 26일 현재

https://portal.nrich.go.kr/kor/buddhistView.do?idx=160&sk=&st=&menuIdx=805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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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 국립문화재연구원

 

 

 

 

화엄사 대웅전(華嚴寺 大雄殿) 강희육십일년명(康熙六十一年銘) 범종(梵鍾)(2-95, 3-70)

 

소재지(所在地) : 전라남도(全羅南道) 구례면(求禮面)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12

연 대(年 代) : 1722年(경종(景宗) 2年, 강희(康熙) 61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93cm, 용통고(甬筒高); 14cm, 상대폭(上帶幅); cm, 

유곽장(乳廓長); 22×25cm, 구경(口徑); 65cm, 종신고(鍾身高); 76cm, 용통경(甬筒徑); 4cm, 

하대폭(下帶幅); cm 종구후(鍾口厚); 5.5cm, 용뉴고(龍鈕高); 11cm, 천판경(天板徑); 47cm, 

유곽폭(乳廓幅); cm, 당좌경(撞座徑); cm

 

 범종(梵鍾)의 정상(頂上)에는 단룡(單龍)에 용통(甬筒)을 갖춘 용뉴(龍鈕)를 갖추고 있으

나 주조수법(鑄造手法)이 약식화(略式化)되고 도식화(圖式化)된 형태이다.

 종정(鍾頂)의 천판(天板)은 반구형(半球形)이고 종신(鍾身)과 접하는 곳에는 1조(條)의 융

기된 태선(太線)을 돌려 처리하였다. 그 밑으로 상대(上帶)에 해당되는 곳에는 직경 6.5cm

의 원좌(圓座) 내(內)에 범자(梵字)를 갖춘 13개(個)의 범자(梵字) 문양대로 조식(彫飾)하여 

상대를 대신(代身)하고, 4개소에 배치한 유곽은 독립되어 9개(個)의 화좌유(花座乳)에 돌기

된 유두를 갖추고 있다. 유곽 문양도 엇비슷하게 사격문으로 처리한 문양대로 장식하였고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을 갖춘 선조(線彫)의 보살입상 4구(軀)를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유곽 밑으로 양주(陽鑄)된 명문(銘文)이 있어 주조 연대를 알 수 있고 하대(下帶)는 

없으나 그곳에 역시 1조의 융기태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명문(銘文)은

康熙六十一年 壬寅三月日(강희육십일년 임인삼월일)

 維摩寺改 鑄化主新削(유마사개 주화주신삭)

이라 되어 있어 원래는 유마사범종(維摩寺梵鍾)인데 강희(康熙) 61年 임인(壬寅) 3月, 1722年에 

개주(改鑄)된 조선시대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양식상 보아 당시 유행하던 통식(通式)의 동종이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