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서대문 백련사 隆慶3년명 종

korman 2009. 3. 6. 14:11

자료발췌 2014년 1월 19일 현재

 

* 현재 백련사 사이트에서는 소개되지 않고 있음.

 

백련사 종-전체(白蓮寺 鐘) (탁본)

 

1569년
71.4×112.3cm

조선 초기에 왕실 발원으로 제작된 종들이 중국종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데 반해 백련사 융경3년명 종은 고려 후기 종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한 마리의 용과 음통으로 이루어진 용뉴와 평평한 천판에 입상대 등은 전통성을 강하게 띠고 있지만 상대에서 떨어진 연곽과 원형범자의 등장은 조선종의 특색이다. 용뉴의 용은 마치 구름을 헤치고 전진하려는 듯 머리가 앞을 향해 있고 발아래에는 구름이 서려있다. 몸체는 둥글게 틀어 종을 걸 수 있게 고리를 만들고 꼬리에 감싼 음통은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여의두如意頭 모양의 입상대와 가는 선의 격자무늬로 장식된 상대의 연판무늬는 전통종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 종인 안정사 종(1580년)과 태안사 종(1581)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백련사 융경3년명 종은 특이하게 연곽 사이에 보살상이 없고 연곽은 연꽃잎을 둘렀으며, 종복에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직사각형 꽃무늬 무늬로 장식하였다.
종신에는 희미하게 점자로 새긴 ?隆慶三年己巳…?, 즉 1569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일제시대에 종의 반출을 위해 막기 위해 새겼다는 융희원년隆熙元年(1907)은 또렷하여 한때 20세기에 주조한 종으로 오해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백련사 약사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직지사성보박물관 사이트 2014년 1월 19일 현재

http://www.jikjimuseum.org/remain/content.asp?pCode=01&pRgID=7&pRemID=388&pPageID=394&pPageCnt=10&pBlockID=1&pBlockCnt=1&pDir=

S&pSearch=name&pSearchStr=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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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 2009년 3월 6일 현재

 

서대문 백련사 隆慶3년명 종

 

 

 

 

 

  隆慶 3年 己巳(1569), 청동,
  총 높이 63.3cm, 종신 높이 52.5cm,
  용뉴 높이 8.6cm, 음통 높이 6.5cm,
  천판 지름 37.0cm, 상대 폭 4.7cm, 중대 폭 3.5cm,
  유곽대 폭 1.7cm, 유곽크기13.5 x 11.5cm,
  종입 지름 57.4cm, 종입 두께 3.7cm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백련사 약사전

  임진왜란 이전에 주성된 조선시대 有銘鍾은 12구에 불과한데 백련사에 소장된

  이  종이 알려져 다행이다.


  조선 초기에 왕실 발원으로 제작된 종들이 중국종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데 반해

  백련사 융경3년명 종은 단용뉴, 음통, 입상대, 상대, 유곽, 梵字, 그리고 중대 등

  비교적 고려 후기 종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당좌와 보살상은 없다.
  한 마리의 용과 음통으로 이루어진 용뉴와 평평한 천판에 입상대 등은 전통성을

  강하게 띠고 있지만 상대에서 떨어진 연곽과 원형범자의 등장은 조선종의

  특색이다.

  용뉴의 용은 마치 구름을 헤치고 전진하려는 듯 머리가 앞을 향해 있고 발아래에는

  구름이 서려있다. 단용은 입을 크게 벌리고 부리부리한 눈을 크게 뜨고 좌우로 뻗친

  귀와 사나운 뿔 및 발가락을 가졌으며, 머리 위의 억센 모발과 몸체의 비늘이 뚜렸

  하여 활기찬 모습이 고려종을 방불케 한다. 몸체는 둥글게 틀어 종을 걸 수 있게

  고리를 만들고, 꼬리에 감싼 음통은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음통이 용뉴보다 더

  낮은 것은 음통 상단이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삼산형 여의두(三山形 如意頭) 무늬로 된 입상대 아래로 가는 선의 격자무늬로 된 상대가 있다.
  상대는 18개의 직사각형으로 구획하고, 내부에 복연판을 1개씩 양각하였으며, 각 연판 안에는 X자형

  격자무늬와 4개의 구슬무늬를 장식하였고, 연판 외부에는 연주문을 돌렸다.   상대의 연판무늬는

  전통종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 종인 안정사 종(1580년)과 태안사 종(1581)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상대와 약간 떨어저서 직사각형의 유곽 4좌가 있다. 유곽대는 복엽연판을 돌리고, 유곽안의 6판연화

  로 된 유좌를 가진 9유는 반구형으로 융기되어 있다.
  당좌와 보살상은 생략되고, 범자를 새긴 圓座가 유곽과 교대로 배치되었다.

  하단에서 19cm 떨어진 중앙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직사각형 구획 안에 보상화문으로 장식한 특이한 모양의 중대가 있고, 하대는 없다.

  명문은 일제시대에 종의 반출을 위해 막기 위해 새겼다는 융희원년(隆熙元年 1907)은 또렷하여 한때

  20세기에 주조한 종으로 오해받기도 하였으나, 종의 형태가 조선 말기 양식이 아니고, 시대가 올라가

  는 것이 이상하여 종 전체를 세척하고 탁본한 결과 명문사이의 범자아래에서 희미하게 點字로 음각

  한 '隆慶三年己巳…', 즉 宣祖 2년(1569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종의 명문은 양각으로 된 경우가 많으나, 조선 전기종에서 이 종과 광흥사종만이 점자로

  음각되어 있다.  

 

자료출처 ;
한국의 범종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범종 이호관 지음 대원사
직지성보박물관
www.nohht.com.ne.kr
2009년 3월 9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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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 2007년 3월 27일 현재

 

隆慶 3年 己巳(1569), 청동,

전체높이 63.3cm, 종높이 52.5cm,

입지름 57.4cm,

서울 서대문구 백련사


조선 초기에 왕실 발원으로 제작된 종들이 중국종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데 반해 백련사 융경3년명 종은 고려 후기 종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한 마리의 용과 음통으로 이루어진 용뉴와 평평한 천판에 입상대 등은 전통성을 강하게 띠고 있지만 상대에서 떨어진 연곽과 원형범자의 등장은 조선종의 특색이다. 용뉴의 용은 마치 구름을 헤치고 전진하려는 듯 머리가 앞을 향해 있고 발아래에는 구름이 서려있다. 몸체는 둥글게 틀어 종을 걸 수 있게 고리를 만들고 꼬리에 감싼 음통은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여의두如意頭 모양의 입상대와 가는 선의 격자무늬로 장식된 상대의 연판무늬는 전통종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 종인 안정사 종(1580년)과 태안사 종(1581)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백련사 융경3년명 종은 특이하게 연곽 사이에 보살상이 없고 연곽
은 연꽃잎을 둘렀으며, 종복에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직사각형 꽃무늬 무늬로 장식하였다.
종신에는 희미하게 점자로 새긴 '隆慶三年己巳…', 즉 1569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일제시대에 종의 반출을 위해 막기 위해 새겼다는 융희원년隆熙元年(1907)은 또렷하여 한때 20세기에 주조한 종으로 오해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백련사 약사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2007년 3월 27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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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白蓮寺) 융경삼년명(隆慶三年銘) 범종(梵鍾)(2-62, 3-47)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서대문구(西大門區) 홍은(弘恩)3동(洞)

연 대(年 代) : 1569年(선조(宣祖) 2年, 융경(隆慶) 3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64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4.5cm, 유곽장(乳廓長); 13.5× 

11.5cm, 구경(口徑); 57cm, 종신고(鍾身高); 55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帶 

幅); 3.3cm 종구후(鍾口厚); 3.7cm, 용뉴고(龍鈕高); 6cm, 천판경(天板徑); 37cm 유곽 

폭(乳廓幅); 1.7cm, 당좌경(撞座徑); cm


 이 동종(銅鍾)은 백련사(白蓮寺) 낙사전(樂師殿) 내에 설치된 작은 종(鍾)으로 용두(龍頭)

는 단용(單龍)으로 처리하고 용린(龍鱗)과 용두(龍頭)는 갈퀴가 사실적이다. 용통(甬筒)을 

용의 꼬리가 감고 있으나 현재 용통의 상부(上部)는 결실되었다.

 동종(銅鍾)의 상대부분(上帶部分)에는 삼산형(三山形)의 여의두문(如意頭紋)이 입상(立狀)

으로 돌려져 있고, 상대(上帶)에는 장방형(長方形)으로 구획(區劃)한 내면(內面)에 일화(一

花)씩의 복연(覆蓮)으로 조각하고 이 복연판(覆蓮瓣) 내면(內面)에 주문(珠文)이 4주(珠)씩 

양각(陽刻)되어 있다. 그리고 복연판내(覆蓮瓣內)에는 사격문(斜格紋) 장식(裝飾)하고 있으

며, 종신(鍾身) 상부(上部) 4개소(個所)에는 장방형(長方形)의 유곽(乳廓)과 원좌내(圓座內)

의 범자(梵字)를 교대로 배치하고 있다. 유곽(乳廓) 주변도 도식화(圖式化)된 복엽연판(複葉

蓮瓣)으로 장식하고 6판(瓣)의 연화좌(蓮華座) 중앙에 돌기된 9유(乳)를 갖추고 있다.

 하대(下帶)는 종구(鍾口)에서 19cm 떨어진 종복부(鍾腹部) 가까이에 3.3cm 폭의 횡대(橫

帶)를 돌리고 있으나 이 문양(紋樣)에서도 일정한 구획(區劃)을 정(定)하고 각(各) 구획내

(區劃內)에는 보상화문(寶相華紋)을 장식했다.

 종신(鍾身)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보면, 두가지 명문이 있는데 하나는 ‘융경삼년기(隆慶

三年己) 사사월(巳四月) 일종(日鍾) 종(鍾)…’이고, 또하는 후각(後刻)한 명문인데 그 내용은

 高陽郡恩平面白蓮寺 大鍾(고양군은평면백련사 대종)

 當時住持金西翁 主張金翠雲(당시주지금서옹 주장금취운)

 朝鮮隆熙元年丁未(조선융희원년정미)

로 되어 있으나 이 종(鍾)의 형태(形態)나 양식(樣式)을로 보아 융경삼년(隆慶三年) 기사년

(己巳年) 선조(宣祖) 2年(1569)에 주조(鑄造)된 조선(朝鮮) 중기(中期) 범종(梵鍾)이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