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중앙박물관 소장 수종사 종

korman 2009. 3. 3. 23:12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33> 수종사종·해인사종

 

조선 왕실 여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다

 

이번 호에 소개할 두 점의 범종은 왕실의 권위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적 작품이라기보다 왕비와 같은 왕실 관련 여성들이 발원한 종이다. 그런 점에서 규모가 이전의 대형 종에 비해 축소되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 두 종은 종각과 같이 외부에 거는 목적이 아니라 실내 의식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이러한 왕실 발원 범종은 연맥이 끊긴다. 개인 발원의 범종이 주류를 이루어간다는 점에서 거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수대비 인혜왕비 발원 조성

규모 작아져 실내의식용 추정

왕실발원 범종 마지막에 해당

저자세로 천판에 붙은 용뉴

원 양식 기본으로 명 양식 수용

 

성화5년수종사명종

    성화오년수종사명종은 1469년 조성됐다. 높이 48.8㎝,

    구경 37.3㎝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수종사종(水鍾寺鐘)은 명문에 의하면 수빈한씨(粹嬪韓氏)와 정업원(淨業院) 주지(住持) 이씨(李氏)의 시주로 주성했다. 성화(成化) 5년(1469) 7월에 원찰인 수종사(水鐘寺)에 시납한 종임을 알 수 있다. 시주자인 수빈한씨(1437~1504)는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懿敬世子)의 빈으로, 세조 1년(1455) 수빈에 봉해졌다. 이후 1469년 11월에 수빈의 소생이었던 자을산군(者乙山君)이 성종(成宗)에 즉위하게 되자 의경세자를 덕종(德宗)으로 추존(推尊)하면서, 수빈은 인수대비(仁粹王妃)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 종이 만들어진 것은 예종이 죽기 4달 전인 7월이다. 이때는 아직 수빈이라는 지위에 머물러 있던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수빈한씨와 함께 시주자로 참여한 정업원 주지 이씨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업원이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내불당 형식의 비구니 전용 사찰인 점에서 정업원 주지 이씨도 왕실 관계의 여성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낙산사종(落山寺鐘)과 봉선사종(奉先寺鐘)에 비해서 크기가 매우 작으면서 완전히 다른 양식적 특징을 보인 것은 처음부터 이 종을 제작한 장인이 대형 종을 제작하였던 관장이 참여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전대의 전통형 종 모습을 많이 계승하였고 문양도 자유분방한 느낌이다.

 

우선 용뉴는 현재 상단부 이상이 부러져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상이 전통형 종을 따르고 있는 점에서 단룡(單龍)과 음통을 갖추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더불어 조선 전기에서 볼 수 없는 천판 한쪽에 구멍이 뚫린 것은 바로 음통과 연결된 부분이었다고 추정된다.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종구(鐘口) 쪽으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지는 모습이다. 불룩 솟아오른 천판 바깥쪽으로 고려 후기의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 형식을 계승한 여의두(如意頭) 형태를 높게 돌출시켜 장식하였다. 이 아래에 바로 붙어 상대처럼 꾸며진 연판문대는 사각의 연판 안에 당초무늬를 첨가한 모습이다.

 

종신의 상부에는 연곽과 연꽃봉우리가 생략된 대신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으로 보이는 굵은 글씨의 범자문을 양각 배치하였다. 이 아래의 종신 하부 쪽으로 마치 와당(瓦當)의 연판 무늬를 연상케 하는 두 줄의 원형 테두리 안에 작은 자방(子房)을 두고 그 주위에 8잎의 연화문를 장식한 당좌를 4곳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종구 부분에 하대를 만들어 그 안에 여러 겹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파도문대를 정연하게 시문하였다. 명문은 한쪽 당좌와 당좌 사이에 방형 구획처럼 자리 잡은 여백 면에 4행으로 새겼다. 입상연판문대와 연판문 상대, 하대와 당좌 등은 우리나라 전통형 종을 따르고 있지만 일반적인 전통형 종과 달리 연곽과 보살상이 생략된 점이 독특하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봉선사종과 낙산사종이 오히려 외래형인 중국 종의 모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비교해보면, 수종사명종은 조선 전기의 정통14년명(正統14年銘, 1447)종과 같은 전통형 범종과 외래형 종이 적절히 혼합되어 이후 혼합형 범종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수종사에는 이 범종 외에도 팔각 오층석탑 안에서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한 불상들이 발견된 바 있어 당시 왕실의 원찰(願刹)로서 많은 불사(佛事) 이루어졌던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후 16세기에 제작된 범종에서는 왕실 발원 범종과 같은 권력층의 시주자와 자세한 발원의 내용을 담은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사찰 관련의 범종을 제작하기 위해 사대부 보다 일반 대중들과 스님 신분의 시주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불교신문3403호/2018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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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소장 수종사 종

 

 

  

중앙박 수종사종

中央博 水鐘寺鐘

 

成化五年 己丑 (조선 睿宗 元年, 1469)
총 높이 48.5cm, 종신 높이 37.0cm,
종고리 폭 9.8cm, 종고리 높이 6.4cm,
천판 지름 24.0cm,
당좌 지름 6.5cm, 하대 폭 4.5cm,
종입 지름 37.5cm, 종입 두께 3.7cm
국립중앙박물관

1909년 5월 28일 일본인 鈴木次郞으로부터 당시돈 200원을 주고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종이다.
용뉴는 일부가 파손되어 없어졌는데, 6자를 등을 맞대에 모아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종견에는 아름다운 입상대가 돌려져 있으나 일부는 파손되었다.
상대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획하고 그 안에 당초문을 세로로 배열한 장식을 갖고 있으며, 하대는 물결무늬를 돌렸다.
상대폭이 하대폭보다 좁은 것이 일반적이나 이 종에서는 오히려 상대폭이 넓다.
상대와 당좌 사이의 약 20cm가량의 공간에 범자 12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당좌는 8엽 2중의 연화문으로 장식된 원형당좌로 4좌가 배치되어 있다.
종복에 주성년도를 밝히는 명문이 있다.
 成化五年七月日」 水鐘寺小鍾鑄成」 施主口嬪韓氏」 淨業院住寺口氏」 
성화 5년은 중국 明나라 憲宗의 년호로, 조선 睿宗 元年(世祖 14년, 1469)에 수종사 소종으로 주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전기 1400년대 종들은 쌍용뉴와 반구형 천판을 갖고 있는 한중혼합형식이 많으나, 이 종은 천판이 평평하고, 천판 가장자리에 입상대를 돌리고, 상대, 하대, 당좌 등 고려 후기종의 전통양식을 구비한 것으로 조선시대 종으로서는 대단히 희귀한 新例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종신에 돌린 범자문양식은 이 시대의 종으로서
낙산사종
(1469)에서도 볼 수 있다.
 
자료출처 ;
한국의 범종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www.nohht.com.ne.kr
년 1월 22일 현재 중아박물관 및 전국박물관에서 검색되지 않음.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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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소장(國立中央博物館所藏) 성화오년명(成化五年銘) 범종(梵鐘)(2-60)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연 대(年 代) : 1469年(세조(世祖) 14年, 성화(成化) 5年)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48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4cm, 유곽장(乳廓長); ×cm, 구경(口徑); 37.5cm, 종신고(鍾身高); 42.5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 폭(下帶幅); 4.5cm, 종구후(鍾口厚); 3.8cm, 용뉴고(龍鈕高); 6.5cm, 천판경(天板徑); 24cm, 유곽폭(乳廓幅); cm, 당좌경(撞座徑); 6.5cm 


1909년 5월 28일 일본인(日本人) 영목주차랑(鈴木銂次郞)으로부터 구입한 것인데 동종의 정상부(頂上部) 용뉴는 일반형식이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 6을 상대적으로 배치하여 놓은 듯한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상대(上帶)와 정상부(頂上部)와 연결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고려종(高麗鍾)에서 보이는 입상(立狀) 연화문(蓮華紋)과 비슷한 것을 장식하여 배치하고 있는데, 그 내부의 문양(紋樣)은 연속된 여의두문(如義頭紋) 형식(形式)으로 처리하였다. 상대(上帶)에는 일정한 구간(區間)으로 구분하고 그 내부(內部)에 당초문(唐草紋)과 유사한 문양을 양각(陽刻)하고 있고, 당좌(撞座)와 상대(上帶) 사이 20cm가량의 간격 내의 공간에는 범자(梵字) 12자(字)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 장식했다. 종복부(鍾腹部) 배치한 당좌(撞座)는 4개소(個所)이며 그 형태는 팔엽이중(八葉二重)으로 된 연화당좌(蓮華撞座)이다. 또한 종복(鍾覆)에는 ‘成化五年七月 日 水鍾寺…’(성화오년칠월 일 수종사…)라는 명문이 있어 제작 연대를 확실히 밝힐 수 있는데 성화(成化) 5年은 세조(世祖) 14年(1469)에 해당되는 범종(梵鍾)임을 알 수 있고 동종(銅鍾)의 하대(下帶)에는 파도문(波濤紋)으로 처리하고 있다. 명문(銘文)의 내용을 보면 成化五年七月 日(성화오년칠월 일) 水鍾寺小鐘鑄成(수종사소종주성) 施主粹嬪韓氏(시주수빈한씨) 淨業院住寺□氏(정업원주사□씨)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