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종(鐘) 때문에

korman 2009. 10. 9. 22:10

 

 

 

 

 

 

 종(鐘) 때문에

 

9월도 다 가는 날 블로그를 열었더니 모 방송국 아침 프로그램 작가라는 분이 방명록에 글과 전화번호를 남겼다. 내가 모으고 있는 “종”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니 연락을 좀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로 내 손전화번호를 보냈더니만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사연인즉 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 “종”을 수집하는 나를 대상으로 프로를 제작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사실 종에 대한 출연 제의는 작년에 다른 방송국에서도 있었으나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지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종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프로그램이라 출연제의를 한 작가에게 타인이 정으로 선물한 것을 공개된 장소에서 그 가치를 판단하다니 당신이 선물을 준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한마디 하고는 매몰차게 거절하였던 터라 이번에도 선뜻 마음이 내키는 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의 내용이 별난 취미를 소개하는 것이고 그 당시의 상황과는 성격이 다른지라 고려해 보자고 하였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당 PD가 카메라를 둘러메고는 스케치부터 하자고 찾아왔다. 그리고는 연휴가 끝나는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동안 촬영을 하자 하였다. 추석 다음날 누님 댁에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한 선약이 있었지만 수요일 아침에 방영 계획이 잡혀 그리 급하게 촬영을 하여야 한다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기로 하고 누님과 매형에게 양해를 구하였다.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챙길 겨를도 없이 작가와 PD가 초인종을 울리며 카메라를 현관으로 밀어 넣고는 지난밤에 밤새 구성한 것이라고 진행대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저 장식장속에 촘촘히 박혀만 있던 모든 종들을 그 구성에 따라 재배치하고 진열하고는 서둘러 촬영에 들어갔다. 카메라가 진열된 종을 한 바퀴 훑고 지나는 짧은 시간 틈틈이 나와 우리 식구들은 PD와의 인터뷰를 위하여 진행대본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어디 그게 살펴본 대로 되랴. 카메라를 가져다 대고 PD가 질문을 하면 그저 편안히 대답하면 될 것을 몇 차례 반복 촬영이 있은 후에야 한 장면 한 장면을 마치기 일쑤였다. 밖에서도 찍고 안에서도 찍고 이웃과 친척을 엑스트라로 동원하며 우리가 할 일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PD가 초청한 핸드벨(Hand bell) 전문가라는 분이 도착했다. 핸드벨은 여러 명이 옛 두부장수가 사용하던 종 모양의 크고 작은 종을 이용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내가 모은 종으로 그 음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모든 종이 같은 음을 가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타종망치와 음측정기까지 동원하여 모든 종을 두들기고 음을 측정하는 사이 유리와 자기로 된 종에서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음으로 동요 한곡 정도 연주할만한 종을 골라내었으나 금속으로 만든 종으로 한 옥타브를 골라내는 데는 여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측정기의 힘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던 여러 사람들의 귀까지 동원하여 늘 반음씩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두 세트의 악기(?)를 찾아내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어렵게 종을 수집한 나로서는 이렇게 연주할 만한 종을 찾는 일이 마냥 반갑고 신기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만두자고 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종을 다루는 그녀의 손길이 매우 거칠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여자가 아닌가.

 

금속 종은 위에 달린 끈만 조심한다면 그리 파손될 염려는 없다고 하지만 크리스털이나 자기로 된 종들은 조금만 거칠게 다루어도 금이 가거나 귀퉁이에 흠집이 생기게 된다. 집사람이 옆에서 나를 쿡쿡 찔러댔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흔들어 본 종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도 그녀는 내 심정을 눈치 채지 못하고 연주를 한답시고 유리판 위에 그것들을 마구 부딪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그 조마조마한 시간도 끝을 맺었다. 내가 수집한 종들은 악기로 만든 종들이 아니다. 따라서 그녀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음을 맞추어 보다가 잘 안되면 전문가적 견해를 밝히고 “한 100개정도 더 모은 다음에 다시 해 봅시다” 라든지 뭐 이런 농담 한마디 하고 끝을 맺어도 좋았을 것을 저녁 내내 그리 가슴을 졸이게 한 것이다. 그렇게 거칠게 종을 흔들어 대던 그녀는 가고 우리는 모든 종을 거실 바닥에 늘어놓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종의 숫자를 확인하며 늘어놓은 종 전체를 촬영하는 일로 일요일의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젊은 PD는 잠도 안 자는지 일요일 저녁 늦게까지 작업하고 돌아가서는 밤에 편집도 하였을 텐데 월요일 아침 일찍 다시 찾아왔다. 좀 미진한 부분을 다시 찍고는 우리 부부에게 인사동엘 가진다. 공예점을 돌아보며 종을 고르고 구입하는 장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사동 칼국수 집에서 맛있는 만두와 칼국수 한 대접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평소의 인사동 보다는 많게 느껴지는 인파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모든 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이틀 동안 참고 있었던 집사람이 PD에게 물었다. 출연료는 얼마나 주냐고. 그러나 PD의 대답은 불행하게도 매우 간단하였다. “없습니다.” “기념선물도 없나요?” “없습니다.” 그냥 시간이 좀 흐른 후에 DVD 한 장 보내 준다고 하였다. 이 무슨 경우 없는 일인가! 애초 그런 것을 묻지 않고 촬영을 허락한 내가 잘못이지만 묻지 않더라도 그냥 상식적으로 아주 조금 성의표시라도 할 거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참 황당한 대답이었다. 기념품도 없다니.

 

내가 출연한 프로는 출연자들이 혜택을 보는 프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다이어트 프로는 출연자들이 돈 안들이고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으며 다이어트를 할 수 있고 아이버릇을 고치는 프로는 참여 가정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아이의 버릇을 고칠 수 있으니 그 자체로 출연료를 대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방송국의 부탁에 의하여 장소 제공하고 소품제공하고 매일 종 한보따리씩 가지고 밖에 가서 치고 있는 푼수도 되고 이웃과 친지들도 엑스트라로 동원하고 어렵게 모은 종들의 파손 위험까지 감수하지 않았던가. 출연료는 고사하고 방송국에 놀러가도 공짜로 주는 기념품 하나 준비하지 않는 방송국의 태도가 영 못 마땅하여 출연료가 없는 것에 대한 사전 고지가 없었으니 방송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리하면 내 자식또래밖에 되지 않은 총각 PD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 편집이나 잘 하시라고 하고 인사동에서 헤어졌다. 그런 것도 제공하지 않고 그저 카메라만 들려 밖으로 내 모는 방송국 잘못이지 이 젊은 PD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이틀을 꼬박 촬영하고 그 많은 장면들 중에서 7~8분 분량을 편집해 내려니 PD의 마무리 작업이 힘들었겠지만 수요일 아침 방영된 장면에는 쉬는 날 어렵게 부탁하여 엑스트라로 동원된 조카는 그 모습도 없었으며 이웃의 목소리도 모두 잘려나갔다. 시간이 안 맞으면 내 모습을 조금 줄여서라도 그들에게 할애되었어야 할 시간이라 생각되어 이리 잘라버리려면 그 장면은 왜 요청하였으며 나는 그들을 왜 동원 하였을까 후회가 앞선다. 방송국에서는 지금 일반인을 TV에 출연시켜준 것은 가문의 영광을 안긴 것이거늘 어찌 서운함을 말할 수 있느냐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난 한번 다시 보자는 친척의 요구에 그 방송국 다시보기 코너에 500원을 지불하고서야 내가 출연한 프로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리 돈을 벌고 있었다. 변호사를 통하여 청구서를 보내면 어찌될까? 누가 내게 묻는다면 쌍수로 말리고 싶네, 이런 일은 소문을 많이 내야겠다....... 부질없는 생각에 오늘도 아파트 앞동 사이로 비쳐지는 붉은 저녁노을이 내 얼굴에 닿는다.

 

그대, 방송국 SㅂS여, 그렇게 영원하라!

 

2009년 10월 아흐렛날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짜꿀과 찬송가  (0) 2009.11.11
세계 각국 주재 우리나라 대사관 홈페이지 현지어는 어디로  (0) 2009.10.16
김치찌개  (0) 2009.09.12
매미소리  (0) 2009.08.31
고양이의 사랑  (0) 2009.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