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왜X

korman 2011. 4. 3. 00:08

 

 

왜X

 

남의 나라로 이민을 가서 지금은 그 나라 사람이 된 친구가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을 때 일본 사람이 가끔 찾아 왔는데 사무실에 전화를 하면 여직원이 일본 손님이 와서 친구가 외출 하였다고 대답하곤 하였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개인 사무실에 여직원 하나였으므로 그저 스스럼없이 대해 주는 그녀에게 나는 짓궂게도 "일본 손님이 아니고 왜X"이라 말 하라고 하고는 복창을 강요하곤 하였다. 그 때마다 그녀는 머뭇거렸지만 웃으면서 왜X을 복창하였다.

 

5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해외에서 열리는 업무관련 전시회에 나가면 늘 만나던 일본인 한 사람이 서울에 왔다고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하여 그가 머물고 있던 이태원 근처의 한 호텔 식당에 마주 앉았다. 그는 우리 땅에 자주 오는 편으로 우리 음식을 아주 좋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한잔 하면서 약간은 거만한 자세로 (내가 그리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꺼낸 말은 한국 사람들은 왜 지나간 과거사에 그리 집착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과거 일본 강점기에 대한 앙금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신 같이 인식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당신들을 왜X 이라고 부른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저 웃음을 머금고 "과거사, 특히 잘못된 과거를 모르면 앞으로도 같은 잘못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과거에 우리가 어떤 것을 잘못 하여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는지 알려주기 위함이다"라는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민망스러웠던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 여기며 그렇게 내 마음속에 "왜X"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었지만 어쩌다 다녀오던 일본에서 그리고 우리 땅을 비롯하여 남의 땅에서도 자주 마주치던 그들에게서 내가 늘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기술력이나 국력에 앞서서 답답하리만치 남을 배려하고 대중에게 피해 주는 일을 하지 않으며 공중도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그들의 국민성이었다. 물론 일본인이라고 다 그럴까만 그리고 우리라고 그들보다 못할까만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동은 늘 나에게 우리가 대중에게 또는 공공장소에서 좀 과하다 싶은 융통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한편 간단히 목례나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늘 다른 인사법으로 나를 당황하게 하곤 하였다. 혹자는 일본인들의 그러한 행동이 타인에게 너무 무관심하여 사회적인 병폐를 만든다거나 겉과 속이 다른 것이라고 한다. 사실 서로 허리를 대여섯 번씩 굽히며 헤어짐의 오랜 시간을 갖는 그들을 대하며 나 자신도 매몰차게 등을 보일 수가 없어 같은 시간을 허비한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배려와 지킴에 대한 그들의 행동은 명실상부 그들과 같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여야 하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는 생각은 늘 떨쳐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그들이 지진과 쓰나미라는 커다란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쏟아놓은 방사능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세계인을 두렵게 하고 있다. 우리가 "융통성"이라는 그 말을 일본인들은 "유도리"라고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유도리"라고 하고 있다. 좀 답답한 사람에게 유도리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지진과 쓰나미가 쓸고 간 후에도 일본 사람들이 보여준 배려와 질서 의식은 전 세계인의 칭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부모형제의 시신 옆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크게 울지도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생각에 우리는 길이 막혀 있으면 하루 빨리 군대 헬기라도 동원하여 구호품을 나를 텐데 대형 선박의 헬기장을 제공하겠다는 민간기업의 제의를 자위대가 훈련한 곳이 아니라고 거절하고는 구호품을 쌓아 놓고 정작 그것이 필요한 이재민들에게는 전달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유사시의 매뉴얼도 좋지만 저리 융통성이 없는데 "유도리"라는 단어는 어찌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먼데 사는 친척보다는 가까이 사는 이웃이 더 낫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선뜻 그들을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 라고 칭하여 왔던 게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만 이웃나라의 그 어려운 일을 그냥 보고만 있기에는 우리의 심성이 그리 모질지 못한 관계로 참혹한 과거사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우선하여 돕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정신대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들 까지도 이웃을 보살피는데 동참하였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구호물품과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은 어떠한가. 모아 놓은 물품과 성금을 다 전달하지도 못하였는데 그들은 또 다시 독도 문제를 들고 나왔다. 아무리 융통성이 없다 한들, 이무리 정치적인 이슈가 필요하였다 한들, 아무리 자국인들의 눈과 귀를 돌릴 데가 필요 하였다 한들 지금 이 때에 우리에게 그리 하여야 하였을까. 그리고 이토히로부미의 몇 대손이라는 그들의 장관은 우리 대사의 면담 요청을 몇 번이나 거절하는가 하면 일본 공격 어쩌구 하는 방발을 쏟아내는 외교적 무례함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독도 문제와 이웃을 돕는 것은 별개 사항이라고 하지만 정강이라도 한번 차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왜X 이라는 말을 버리지 못한다.

 

2011년 3월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