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전화 건너편 예절

korman 2011. 2. 13. 14:27

 

 

 전화 건너편의 예절

 

설 연휴가 끝나는 날 이른 아침, 거실의 TV에 눈과 귀가 머물고 있는 시각에 안방 잠자리 옆에 놔두었던 핸드폰이 여러 차례 울려댔다. TV 소리에 미처 그 울림을 듣지 못하다가 여러 차례 반복되는 소리를 듣고서야 방에 들어와 전화기를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휴일 끝 이른 아침에 누구일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는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대방은 아직 잠에 잠겨있는 듯한 목소리로 “응 김하사 난데” 한다. 그 음성이 귀에 익은 것도 아니고 김하사라는 말에 “전화를 잘못 하신 것 같습니다” 라는 대꾸를 하였다. 그러자 상대방은 매정하게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침대 머리에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나오는 독백이 “참 정초부터.....”.

평소에도 잘못 걸려오는 전화는 많이 있다. 그리고 잘못 걸었다고 알려주면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끊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받는 잘못 걸린 전화에서는 미안하다는 인사 보다는 그냥 뚝 끊어버리는 전화가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같은 날 오후 핸드폰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그냥 기분 좋은 신년 인사였다. 나도 전화기에 입력된 번호로 좀 성의는 부족한 듯싶지만 설날 인사를 위한 문자를 보냈던 관계로 이에 대한 답신이려니 하였는데 이 역시 모르는 번호였다. 그리고 누구라고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전화번호만이 액정에 그려졌다.

평소에 모임이나 다른 건으로 가끔씩 잘못 오는 문자는 있다. 이런 경우 나는 잘 못 보내신 것 같다는 회신을 보내 준다. 때에 따라서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예의 바른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건은 설날 인사인지라 잘못 보냈다고 답신을 보낼 수도 없고 전화를 걸어볼까도 생각하였지만 혹 내가 아는 사람이면 그 분의 전화번호도 내 전화기에 입력 시키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예의에 어긋나고, 내 문자를 받으신 분이 이름도 안 밝히고 다른 번호로 답신을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고 등등 많은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라도 번호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문자를 남겨두었다. 그런데 이 번호에서 오늘 인사성 문자가 이름도 없이 또 날아왔다.

아무리 좋은 인사라고 하지만 또한 전화기에 번호가 입력되어 있으면 전화가 걸려옴과 동시에 전화기 화면에 이름이 자동으로 뜬다고는 하지만 보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은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아는 사람인데 기억해 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들어 명함첩이며 입력된 번호를 다 뒤졌지만 비슷한 번호도 찾지 못하였다.

 

요즈음 핸드폰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번호 변경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가능하면 먼저 사용하던 번호와 끝의 네 자리는 같은 번호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번호가 바뀌면 방법은 다르지만 알아야 할 모든 사람에게 바뀐 번호를 통보한다. 요새는 자동화가 되어 자신이 일일이 통보하지 않아도 전화회사에 신청하면 상대편 전화기에 자동으로 바뀐 번호가 표시되게 하는 서비스도 있다. 설사 그렇지 못한 사람이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도 대개는 기존의 번호를 찾아보면 누군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받은 문자처럼 전혀 새로운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이 이름도 밝히지 않고 문자를 보내면 아무리 인사성이라도 좋게 받아드려지지는 않는다.

가끔씩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면 다른 번호로 전화가 연결될 때가 있다. 이 경우 번호가 바뀌었냐고 물으면 자신은 연락도 해 주지 않았으면서 엉뚱하게 나에게 묻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전화번호가 바뀐 거 몰랐냐고.

 

세월이 좋아 요새는 얼굴이 보이는 전화도 있고 전화로 메시지도 전하고 목소리도 남기고 문자로 대화도 하고 상대가 옆에 없어도 서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세상이 되었다. 전화기가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 할지 예상이 안될 만큼 많은 것들이 그 작은 물건에 담기고 있다. 하지만 잘못 걸은 전화를 그냥 뚝 끊어 버리고 이름도 안 밝힌 문자를 몇 번 받아보면 예전 핸드폰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가정에 전화가 없어 길거리 공중전화를 이용해야만 할 때와 비교하여 과연 우리 마음속에 담기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잘못 걸은 전화를 그냥 뚝 끊어버리고 이름도 없이 문자를 날리는 사람들에게 전화기가 진화하는 만큼 전화를 받는 얼굴 모르는 상대편의 기분도 헤아리는 마음의 진화가 올 수 있을까.

 

2011년 2월 열 사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