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눈 내리는 날의 칙칙폭폭

korman 2012. 12. 7. 23:26

 

 

 

 

 

 눈 내리는 날의 칙칙폭폭

 

한창 꿈을 키우던 학창시절 보았던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에서

지금까지도 나에게 엘씨디판의 잔영처럼

남아있는 장면은

푸른 바다의 한 복판을 하얗게 가르며 나아가는 기선처럼

두 줄 철로를 두껍게 덮고있는 눈을 가르며

하얀 들판을 헤쳐 나가던 증기기관차의 모습이었다.

 

함박눈이 하늘을 가리던 날 저녁

이제는 잊어버릴 만 한 시간의 흐름이 있었음에도

그 활동사진 속의 증기기관차는

기우는 시간의 생각을 깨워

창밖의 하얀 눈 세상에서 내 마음속 평원을 달린다.

“칙칙폭폭”이라는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의 끝자락을 매달고.

 

이 저녁 설원을 헤치는 “칙칙폭폭”소리 다시 들으며

진하지 않는 아메리카나 커피 한잔은 어떨까 생각할 즈음

이제 막 말문이 터져 수다스러워 진 손녀가

읽어달라고 가져다주는 그림책 속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아이티 세상에

이 소리는 언제 변하려나 웃음 지으며

디지털속 빛바랜 아날로그 꿈을 발견한다.

고속열차 케이티엑스사진 옆에 쓰여진 “칙칙폭폭”을.

 

아이의 세월에서도 어른의 세월에서도

아직은 이 아날로그 소리를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텔레비전에 비친 섬진강을 달린다는 관광증기기관차는

아날로그 모양의 디지털인가 보다.

삐 소리가 나면 늘 하늘로 치오르던

진하고 매캐한 회색 연기와 하얀 수증기는

임진각에 멈추어 있는 검은 쇳덩어리가

휴전선을 뚫고 북으로 오를 때 하늘에 닿을 것인지

그게 우리 모두의 꿈인 듯싶다.

 

2011년 12월 5일

눈 많이 내리던 날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