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녁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것은 한 4년 전쯤인가 마나님을 보내신 내 술친구는 소주잔을 앞에 놓고 내게 한 이야기가 “가더니 안 왔어.”였다. 응급실에 가더니 당신 곁으로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나와 마주 앉으면 소주 3병은 비우던 그였는데 마나님 앞세우더니 몰라보게 수척해 지더니만 그도 3년여 전에 폐암인가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문병간 나에게 한 말이 “빨리 퇴원하고 한잔 합시다.” 다행이 몸을 잘 추스르고 퇴원을 한 그가 지난봄에는 점심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있었다. 한 병은 못하지만 한 잔은 반주로 할 수 있다며 굳이 말리는 나를 제지하고 소주 한 병을 시켜 놓더니만 그건 나를 위한 배려였을 뿐 잔은 안 비우고 병상에서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음인지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설렁탕에 말아 놓은 밥이 부르트는 것도 개의치 않고 나 혼자 소주 한 병을 다 비우는 동안 꺼내고 또 꺼내었다. 그리고 봄의 끝자락에서 안부를 묻는 나의 전화에 또다시 항암치료를 받고 있노라고 하였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한 가운데서 전화번호를 누르다 말고 혹시 받지 않으면 어찌하나 걱정스러워 넘겨버리고 그래도 소식은 알아야지 하는 마음에 8월이 다 가는 날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전화기가 꺼져있어 통화가 불가하다는 어느 아가씨의 친절한 그러나 까칠하게 들리는 대답 한 마디. “아! 이게 무슨 의미인가?” 다시 입원하였어도 전화는 받을 텐데..... 가을이 중턱에 들고 맥없는 나뭇잎이 바람에 날릴 때 그 때도 변함없이 그 친절한 아가씨는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만 할 뿐...... 혹시나 하여 눌러본 집전화 건너편에서는 신호음만이 되돌아 올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받지는 않지만 아직 해지되지 않은 그의 전화기가 있으니 그도 늘 나가는 구청 문화센터에 있겠지 그래서 조만간 소주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오겠지 그리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낮 신년 인사는 받으려나 걸어본 집전화 건너편에서 들리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 문병 갔을 때 안면이 있는 그의 며느님은 안부를 묻는 나에게 작년 7월 여름이 한창일 때 항암치료 중 마나님 곁으로 가셨다고 알려왔다. 본인이 가셨으니 이 술친구와는 인사 나눌 기회가 없었음이라. 사실 그는 나 보다 15년인가 인생 선배이다. 그러나 늘 나를 술친구라 불렀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언제나 손에 책이 쥐어져 있었고 그의 독서량에서 솟아나는 이야기는 정도를 넘는 주량에도 취하지 않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질척인다고 해야 맞는 듯한 겨울비를 바라보며 그와 나누던 세상살이 이야기에 이 저녁 또 한 잔의 소주가 생각난다. 2013년 1월 21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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