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여인숙이란?

korman 2014. 2. 11. 18:40

 

 

 

 여인숙이란?

  

며칠 전 아침에 신문을 들치다, 혼자 웃었다기 보다는, 배우의 연기에 비교하자면 ‘웃음과 어이없음이 교차하는 묘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보는 조간신문에 며칠에 한 번씩 연재한 ‘한자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기획 기사를 읽다가 그것을 주장하는 사례에 과거부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단어와 단골 이유 때문이었다.

 

신문을 읽다보면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칼럼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내가 중고등 학교에 다닐 때에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한자를 배웠다. 대학에서도 교양국어시간이면 한자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랬다고 하더라도 한자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한자를 써보는 일이 없으니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수 있는 글자는 점점 줄어간다. 한글로 쓰고 한자를 누르면 각 글자는 물론이고 단어까지도 자동변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부족하면 사전이나 인터넷에서 찾으면 다 나온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 그리 한자를 찾아 헤매야 할 만큼 한자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다. 아무리 한자어가 70%라는 우리말이지만 전체 문장으로 각 한자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한자교육과 관련된 칼럼들은 교육범위가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초생활한자를 벗어나 몇 자까지 가르쳐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한자를 사용한 한자문화권에 있고 우리말의 대부분이 한자어이고 사람들이 한자를 몰라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맞춤법도 틀리며 한자를 알면 중국인과 말이 안 통하더라도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럼 이런 조건들을 다 충족시키려면 그 많은 한자 중에서 과연 몇 자까지 가르치고 알아야 할까?

 

1970년대 내가 대학 교양학부를 다닐 때 대학생들이 한자를 몰라 ‘여인숙’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대부분이 ‘여자들만 자는 곳’이라 대답하더라는, 그래서 그 당시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예를 들며 신문에 글을 쓴 분이 있었다. 교양국어 시간에 우리 교수님도 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당시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같은 대답을 하였다. 아마 다른 대학 학생들도 여인숙을 모르기보다는 모두 장난기 섞인 같은 마음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 뒤 강의실에 모여 신문의 그 글을 읽으며 한참을 웃은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그 분이 생각하는 여인숙의 한자를 읽기는 해도 쓰지는 못한다. 그런데 만일 그 여인숙을 ‘女人宿’이라 표기한다면 학생들의 대답도 되는 이야기 아닌가?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그 글자 조합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자교육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한자 무식쟁이의 억측이라고 무시할지 모르지만 그 분들도 일본사람들이 조합하여 만들었다는 한자단어, ‘명품’과 ‘야채’를 즐겨 쓰신다면 내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셔야 하지 않을까?

 

내가 대학을 벗어난지 40년이 흘렀다. 그간 한자교육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지만 그 문제의 대학생과 여인숙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번에도 이 문제는 연재기사 첫날에 등장하였다. 왜 그들은 여인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요새 학생들은 여인숙이 뭔지 정말 모를 수도 있다. 가끔 언덕진 골목길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거의 모두가 ‘모텔’로 바뀌어 있으니까. 합당한 단어라 하더라도 쓰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퇴출되고 잊혀 간다. 여인숙이 그러할진대 대학생들이 여인숙(旅人宿)에 대한 한자를 몰라 ‘여자들만 자는 곳’이라 대답한다는 예는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통상 쓰이는 여인숙에 대한 의미를 알더라도 문장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한자로 쓰고 그 의미를 묻는다면 각 글자가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한들 뭐가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한자어 모두를 한자로 표기한들 한자문화권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단어들도 아니지 않는가!

 

한자를 모르니 한글맞춤법이 틀린다는 예도 그만 하였으면 한다. 요새 방송의 자막을 보면 ‘되’와 ‘돼’, ‘데’와 ‘대’, ‘개’와 ‘게’ 같은 토씨들은 뉴스자막에서 까지도 잘못 표기되고 있으며 ‘좋아’ ‘괜찮아’ 같은 한자어가 아닌 단어들에도 받침을 몰라 틀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한자교육을 강조하시는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맞춤법은 우리의 국어에 대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의 정확성이지 한자를 모르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또 무식쟁이의 궤변이 될까? ‘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과학이다’라는 광고방송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침대는 가구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과학이다”라 대답하였다는데 방송자막에 된다는 표현 ‘그렇게 돼’를 ‘그렇게 되’로 잘못 표기한다면 아이들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은 “되‘가 맞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이들도 대학생들의 장난기처럼 대답하였을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느 기자가 상대에게 보낸 카톡 내용에 ’괜찮아‘가 ’괜차나‘로 쓰인 신문 사진을 보면서 이게 한자어는 아니고 기자가 맞춤법을 모를 리도 없는데 요새 아이들이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을 기자가 흉내 내었을 것이라 생각하여도 좋을지 혼선이 되었다.

 

중국말을 못해도 한자를 알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라 말 하는 것은 일면 수긍이 간다. 비록 전자사전의 도움을 받았지만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건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사전이 아니라 중국어 간체사전이었다. 내가 만난 중국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간체의 원래 글자, 번체를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과거에 번체교육을 받은 나이 든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신들은 간체밖에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니 간체교육을 별도로 시키지 않는 한 필담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또한 같은 한자로 표기 하여도 중국어와 우리는 어순이 달라 모두 우리와 같은 뜻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 주장 또한 100% 옳은 건 되지 못한다. 그리 주장하시는 분들이 과연 중국의 길거리에서 얼마만큼의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으되 출장길에 간체로 쓰여진 간판을 못 읽어 중국어 사전을 뒤져 번체를 확인하고는 문맹자처럼 느낀 나에게는 그리 공감되지는 않는 주장이다.

 

한자교육의 필요성에는 나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위 열거한 이유나 일반인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한자어나 사자성어의 예를 들어 중요성을 강조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나 개인적인 바람이다. 한자교육도 필요하지만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 국민들이 쉽게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한자에 박식하신 그 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뉴스 진행자가 조류독감 확산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이동금지명령이 발동되었습니다.“ 하면 될 것을 느닷없이 ”스틸스탠딩이 발동되었습니다.”라 말 하는 것을 들으며, 또한 내가 보는 신문에 비록 한자어지만 잘 쓰던 우리말, ‘생활’이 ‘라이프’로, ‘자동차’가 ‘카’로, ‘문화’가 ‘컬쳐’로 ‘의견’이 ‘오피니언’으로, ‘정전’이 ‘블랙아웃’으로, ‘수익창출원’이 ‘캐쉬카우’로,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리말이 외국어로 바뀌어져 표기되는 것을 보며 학생들에 대한 한자교육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잘 사용하던 우리말을 무분별하게 외국어로 바꾸는 식자들에게도 한자교육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4년 2월 11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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